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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건반검은건반 May 01. 2024

시험 치는 날, 아이에게 전해질 편지 쓰기

엄마에게 주어진 선생님의 숙제

둘째는 중학교 2학년이다.

2학년 첫 시험을 앞두고, 학부모 톡방에서 담임선생님의 메시지를 받게 되었다.

드디어, 나도  이 편지를 쓰게 되었구나! 


작년에 친구가 고등학생이 되어 첫 시험을 치르는 아이를 위해 메시지를 보내달라는 선생님의 요청을 받았고, 친구는 "시험 잘 쳐"라는 말을 쓰지 않고 편지를 썼다고 했다.

그저 네 인생에서 과속방지턱 정도라는 말로 시험을 표현했다는데

나는 시험을 치르는 아이에게 어떻게 그렇게 담담하게 편지를 쓸 수 있는지 대단하다고 했다.

아이는 그날 아침 편지를 받고 뭉클했다고 하며

다른 친구들은 파이팅! 정도의 메시지를 받았는데 친구의 아이는 선생님께서 엄마의 편지를 코팅을 해 주셨다고 했다


그때, 나도 편지를 쓰게 된다면 시험 잘 치라는 말을 하지 않아야겠다, 생각했는데 중학교 2학년인 둘째에게 그 편지를 쓰게 되었다.

내 친구처럼 "시험 잘 쳐!"라는 말은 쓰지 않겠다며 편지를 쓰는데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친구에게 '네가 쓴 편지(정답지)를 보내봐라'하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고민고민해서 쓰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딸, 예린에게


시험을 앞두고도 긴장도 안 하고 걱정도 안 한다며

"엄마, 춤춰도 돼?" "유튜브 봐도 돼?' 한다며

엄마는 "시험 앞두고 공부 욕심도 없냐"며 잔소리를 했지만

사실은 예린이가 긍정적이고 밝게 자라는 것 같아서 고마웠단다.


학교 생활 열심히 하고

학원도 가고, 친구들 하고도 좋은 시간 보내고

교회도 열심히 가며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도

시험기간 동안 열심히 달려와 준 우리 딸이 참 고맙다.


그냥 건강하게만 자라줘도 감사한 우리 딸인데,

친구와 가족에게 배려하는 모습으로 자라줘서

그것만 해도 엄마는 너무 감사한데,

시험 기간에도 예린이가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니

엄마는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


이제 열심히 했으니까 결과는 감사히 받아들이자.

함께 했던 엄마도 즐거운 시간이었어

함께 공부하다가 쉬자고 나가서 흑당 버블티를 사 먹는 시간도 행복했고

엄마가 잘 모르는 태양계를

예린이가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가르쳐 주셨다며 설명해 준 그 시간도 즐거웠어.

엄마에게는 너와 함께 한 시간 모두가 귀하고 소중한 추억이란다.


예린이가 인생을 살면서 많은 시험을 만나겠지만,

잘 치는 시험도 있을 거고 못 치는 시험도 있을 거야.

어쩌면 흘러가는 냇물에 부딪치는 바위 정도밖에 되지 않을

그 시험 결과들에 예린이가 크게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어.


끝까지 가는 게 중요한 거야.

흘러가는 게 너무 힘들 때는 엄마에게 손을 내밀렴.

얼마든지 손잡아주고 함께 가줄게

잘 치는 시험, 못 치는 시험, 이 모두 다

우리 딸이 바위를 만나도 좌절하지 않을 힘을 키워 줄거라 엄마는 믿어.

시험 기간 동안 정말 애썼어.


엄마가 인생은 버티기라고 이야기 한 적 있지?

오늘 하루도 열심히 시험 속에서 버티고 오렴.

엄마가 집에 오면 너무 애썼다고 꼭 안아줄게

사랑한다. 우리 딸!

엄마는 예린이가 엄마 딸이라서 정말 행복해.



다 써서 선생님께 보냈더니 이런 답장을 주셨다.

다행이다. 잘 썼나 보다.



드디어 시험날


시험 치고 둘째가 집에 왔길래

반응이 궁금해서

(매우 감동했을 거라 예상하고)

"선생님께서 엄마 편지 주셨어?"

하고 물어보니까


"주셨는데 엄마가 다른 엄마들보다 제일 길게 적었더라. "

하는 것이었다.


감동받은 표정은 아니어서

"감동 안 받았어?" 하니까

"엄마가 맨날 해주던 말이잖아"

라는 거다.


"다른 친구들은 반응이 어땠는데?"

하고 아이에게 물어보니

"누구누구 엄마는

시험 잘 쳐, 우리 딸을 믿어! 파이팅!

이라고 적어 주셨는데 나도 뭉클하더라"

라는 거였다.


엄마도 그렇게 적고 싶었는데

그 말 안 적기가 얼마나 힘들었는데, 싶어서 웃음이 나왔다.


이 편지적기 숙제는 딸에게 보다

나를 위한 숙제였다.


그래, 아이가 아니라 아이의 시험을 앞둔 엄마의 마음이 다져지는 시간이었다.

특히 청소년기에는 과정이 중요하고 결과에 흔들려서는 오래가지 못하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편지를 썼다.

그리고

자신이 엄마로서 아이에게 어떤 마음이었나, 돌아보는 값진 시간이었다.


그래서 우리 아이의 시험 성적은?


음ㆍㆍㆍ

결과는 안 중요하다 말해 버렸기

무조건 잘했다고 해 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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