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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 째 방문이세요?

다시 네팔_프롤로그

by 김단단

오십이 넘어서까지 살다보면 거기다 여행을 자주 다니다보면... 흔치 않은 여행지라도, 그게 몇 년 도였는지, 몇 살 때였는지가 가물거리기 마련이다.

네팔도 그 중 하나로 당시 친구와 주고 받은 메일함을 뒤져보니 세상에나, 무려 2006년 1월!!

10년도 아니고 근 20여 년 전이다!

그 때도 아무 생각, 계획 없이 인도와 네팔을 여행하고 온 친구가 '포카라 천국' 을 전도하길래 노트북과 간단한 등산복, 등산화만 사 신고 비행기를 탔다.

그러고 약 두 달을 포카라에서 지냈다. 아니, 살았다.

그 때는 '한달살기' 라는 말도 생소했고 두 달을 장기 거주하는 자는 드물었기에 나는 포카라 일대의 나름 유명인 '킴(KIM)' 이었다.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현지 사람들과 어울렸고 그들의 집에 초대 받아 달밧을 먹고 김치 찌개 요리를 해주기도 했다.

매일 아침 집 앞을 나오면 눈 앞에 마차푸차레가 펼쳐져 있는데, 볼 때마다 믿기지가 않았다.

요즘 말로 '실화냐?' 소리가 절로 나오는 비현실적 풍경이었던 것이다.

또 하나 내 눈에 신기했던 것은 일차선 도로에 작은 마을, 오며 가며 마주치는 사람이 그 사람이 그 사람인데 네팔인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치는 친구나 지인들에게 격한 포옹이나 악수, 환한 미소로 인사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친절함과 선함은 말할 것도 없었으므로, 난 그것이 참 불가사의하고 신비하기까지 했다.

이토록 가난하고 삶이 불편한데 어떻게 저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리고 내가 내린 결론은 바로 '이곳에는 신이 산다' 라는 것이었다.


우리나라도 지리산과 같은 소위 '기도발' 이 세다는 영험하고 신성한 곳이 있다.

안나푸르나의 비현실적인 절경, 그리고 더욱 비현실적인 네팔 사람들의 마음을 느끼며 이것은 도저히 이성과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신의 영역' 이라는 생각에 이른 것이다.

그리고 나의 가치관과 세계관 특히 소비 습관은 그때부터 많이 달라졌다.

안나푸르나를 트레킹하며 그 좁고 험한 길을 가스와 짐을 싣고 나르던 당나귀들, 생수병과 생필품을 머리에 이고 지고 나르던 짐꾼들을 보면 물꼭지를 틀어놓고 양치를 한다거나 사방팔방 전기를 켜놓는다거나 필요이상으로 휴지를 쓴다는 일은 취향이나 습관의 문제가 아닌 '이기와 오만' 이라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그리고 생각이 복잡해지거나 마음이 뒤틀려 짓이겨질 때면 네팔의 산을 떠올리고 그들의 미소를 떠올렸다.

그러면 삶은 다시 단순해지고 겸허해졌다. 아니, 그랬던 것 같다. 얼마 간은...

소위 말해 '약발' 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pexels-marina-zvada-844583049-19877792.jpg 인생도 고, 동생도 고

흥미로웠던 것 중 하나가 네팔 사람들이 여행자인 내게 늘 내게 묻는 질문이
"네팔에 몇 번 째 오는 거야?" 라는 것이었다.

'네팔에 한번도 안 온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오는 사람은 없다' 라는 것이다.

두 달 살기를 마칠 즈음 그 말에 전적으로 동감했고 나 역시 당연히 이곳을 다시 올 것이라 확신했다.

네팔은 있지도 않은 '나의 친정이자 고향 같은 곳' 이었다.

그러나 세월은 무정하게도 빠르고 거칠게 지나갔고 세상은 넓고 가보고 싶은 곳은 많았다.

그렇게 네팔은 '다음에, 다음에' 라고 미뤄지고 이렇게 이 십 여 년이 흘렀다.

그리고 나는 얼마 후, 네팔에 간다.

다시는 그런 산에 오를 일이 없을 것 같아 그 때 산 등산복이나 겨울 용품을 다 버렸는데, 이제와 당근을 뒤지느라 눈이 빠질 것 같다. 웬만한 건 가서 사거나 빌려야지, 한 번의 경험치를 써먹어보려 해도 준비할 것이 만만치 않다.

천성은 어디 못가고, 그래도 또 '대강' 준비해서 '훌쩍' 떠날 것이다.

이십 여년 만에 찾아가는 고향집, 다른 곳과는 달리 설레고 기대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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