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_03
해외 배낭 여행 첫 세대인 '라떼는' 여행 준비라 하면 으레 '론니 플래닛' 을 뒤지고 복사하고 프린트 해 들고 다니는 것이 일상이자 낭만이었다.
요즘은 스마트폰 하나면 온라인은 물론 오프라인에서까지 가능한 지도와 A 부터 Z까지 살아있는 여행 정보가 가득한 '카페' 덕에 돈과 시간만 있으면 오늘 당장에라도 세계 오지 마을도 여행이 가능한 세상이 되었다.
그리고 그런 여행 카페에 항상 있는 게시판 중 하나가 '동행자 구함' 이다.
나는 여행의 가장 큰 매력과 가치가 '익명성' 에 있다 생각하는 일인이기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곳이다.
물론 혼자 떠나지만 늘 혼자는 아니었다. 아니, 혼자이기 때문에 늘 누군가, 특히 현지인들과 함께 할 수 있었고 거기에 '익명성' 까지 더해져 소중하고 값진 경험과 인연들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부터, 아마도 기력이 떨어지고나서부터일까?
가끔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여도 괜찮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맛있는 요리를 일인분만 시키는 것도 아쉽고 혼자 독박 쓰는 숙소비도 아까울 뿐더러 멋진 풍경을 감탄하거나 재밌는 일이 벌어졌을 때, 공유할 사람이 없다는 게 좀 아쉬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네팔 여행을 앞두고 카페를 들락거리면서도 '동행자 구합니다' 는 내 영역은 아니라 생각했다.
하지만 만사가 귀찮아진 나는 히말라야 트레킹을 앞두고 얄팍한 꾀가 났다.
준비하고 공부해야 할 것들은 그야말로 '산더미' 같은데 동행자가 있다면 뭔가 부족해도 채워지지 않을까?
한마디로 적당히 묻어가고 싶은 생각으로 게시판을 기웃거리기 사작한 것이다.
그러다 적당한 시기, 코스, 인원 등의 팀을 찾았고 역시나 빠트릴 뻔한 준비물과 팁들이 공유되었다.
이제 합류하겠다는 의사만 전하면 되는데 그 때부터 수많은 '면면' 이 뇌리를 때려박으며 내 뒷덜미를 잡아당겼다.
말이 많으면? 식탐이 있으면? 주사가 있으면? 걸음이 너무 빠르면? 너무 느리면?
매사에 불평불만이 많으면? 웃음소리가 듣기 싫으면? 숨소리가 거칠면? 입냄새가 나면?
안그래도 고산병 때문에 산소가 부족할텐데 너무 잘생겨서 숨이 멎으면?
그 입냄새 나는 누군가가 내게 인공호흡을 하면?
...면? ...면? ...면?
"에라이, 혼자 가고 말지."
결국 난 동행을 포기하기로 했다.
얼마 전, 그 게시판에 누군가 나와 비슷한 생각을 올려놓았더라.
요는 누군가와, 그것도 알지도 못하는 이와 함께 한다는 건 '희생과 봉사정신' 을 갖지 않으면 어려운 것이며 열에 아홉은 편리함보단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니 "웬만하면 혼자 가라" 라는 것이었다.
또한 거기에 달린 수많은 댓글들 대부분이 동행자와의 불쾌하거나 불미스러웠던 '간증들' 로 본글을 공감하고 지지하는 내용이었다.
의외의 동질감에 난 매우 반가웠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
초등학교 사회 시간부터 배운 게 '인간은 사회적 동물' 이라는 거고, 수많은 종교와 철학에서도 '함께 살아가야한다' 라고 강조하고 심지어 달리기조차도 함께 뛰면 효과가 업이 된다니, 소외감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는데 말이다.
그러고 보면 인간은 참 모순적 존재이고, 인생은 고달픈 것이다.
함께여야 하고 함께 하고 싶은데 함께 하면 고난과 역경이 뒤따르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동행자는 분명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찾기가 '조금 많이' 어려워서 그렇지...
그러니 만약 당신 옆에 동행자가 있다면 무조건 잘해주라. 그만큼 소중한 존재일테니...
만약 없다면 당신은 '혼자서도 자알~' 지내는, 일명 '고독력' 이 있는 사람이니, 이 '단순, 적막' 을 즐기라 하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