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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왜 거기서 나와?

다시 네팔_06

by 김단단

"아버님께 인사하세요."

요양병원의 '집중치료실' 의 수간호사는 무례하지는 않지만 모니터에 다른 환자들의 차트에서 눈을 떼지 않을 정도로 매우 사무적이고 일상적으로 말했다.

이 곳은 '죽어나가는 사람' 이 오는 곳이니 당연할 수 있는데, 처음 당해본 자로선 무척이나 생경하고 당황스러웠다.

가장 먼저 도착한 나는 임종을 코앞에 둔 아빠의 얼굴을 그제야 쓰다듬고 보듬어 보고 "사랑한다." 라는 말도 했다.

그 외에도 "가서 편히 쉬세요. 이제는 아프지 않을 거예요. 알았죠?" 라고, 내 평안을 위해 다그치듯 말했고 아빠는 내 말에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거죽만 남은 얼굴에 틀니까지 빠진 아빠의 얼굴은 그야말로 '몰골' 이었고 50년이 지나서야 맘놓고 아빠의 얼굴을 부벼보았다. 그 때의 영양가 없고 수분기마저 없는 까칠한 아빠의 얼굴 촉감은 내 손과 얼굴에 아직까지 그대로 남아있다.

그렇게 아빠는 두 어 시간 숨을 잡고 있다 마지막에 몇 번을 꼴깍거리다 세상을 떠나셨다.


장례식이라는 의식은 상주에 대한 배려와 예의 같다. 그 시간만큼은 그렇게 슬프거나 괴롭지 않다. 정신이 없고 오히려 손님을 맞이하느라 사무적이고 일상적이 된다. 집중치료실의 그 간호사처럼 말이다.

그 후, 화장을 하고 단지 하나로 남은 아빠를 보고 잠깐 오열을 했지만 그건 아빠에 대한 마음보다는 인생에 대한 허무함이나 절망감이 더 크지 않았나 싶다.

의외로 아버지의 부재는 날 못견딜 만큼 괴롭히지 않았고 가끔 사무칠 때면 애써 아빠에 대한 안 좋은 기억들을 떠올리며 그 길을 돌아가곤 했다.

'아빠, 막내 외동딸인 나를 끔찍하게 아끼고 귀하게 키우지 않아주셔서 감사해요.
그래서 그나마 내가 아빠 간 후에도 살 만 해요.' 라고... 사춘기 소녀처럼 말이다.


네팔은 인도 옆 나라라서 그런지 요가 명상 센터가 많다.

요가와는 거리가 멀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체험으로 이삼 일 정도 지내볼까 하는 생각으로 구글맵을 검색하다 '싱잉볼 체험' 이 있는 곳을 발견했다.

거리에 싱잉볼 파는 상점도 많고 이것을 사가는 관광객도 많은 건 알았지만 거기에 대한 지식이나 관심은 거의 전무한 상태로 1일 체험에 참여 비용도 기부금 형식이라니 부담 없이 찾아갔다.

클래스에는 스위스에서 온 할머니 한 분과 나, 그렇게 둘이었고 한 서양남자가 리드를 했다.


난생 처음이고 여기에 대한 어떤 정보나 지식도 없다고 고백을 하니, 리더는 '오히려 더 좋아' 라고 했다.

편안하게 눈을 감고 눕고 세션이 시작되었다. 볼이 울리기 시작하자 오감이 굉장히 예민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한 때 불면증으로 오랜 시간 시달리던 나는 유튜브에서 '최면' 시도를 많이 해봤는데 딱 최면에 걸리는 그런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 속도는 매우 빠르고 깊었다.

그리고 온 몸에 어떤 에너지가 흐르는 듯한데... 아마도 무당들이 방울 흔들거나 북치고 장구치면 신이 들리는 게 이런 느낌일까 싶었다.

그렇게 당황스러운 순간, 리더의 말 중 하나가 귀에 꽂혔다.

"connect your ancestors."

그 때 조명처럼 내 머리 위에 번쩍하고 '아빠' 가 나타났다.

아빠였다. 정말 아빠... 그런데 젊은 아빠였다.

나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고 있었고 계속해서 미소 지으려 '노력' 하고 있었다.

아빠는 생전 잘 웃지 않는 분이었다.

내 의식 속에서는 '아빠가 미소를 짓는다' 라고 하는데 그 얼굴이 잘 상상이 가지 않아, 애썼던 기억도 난다.

이렇게 '뜻밖에','Unexpectedly' 아빠를 만나자 반가움과 그리움에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아빠는 나를 지켜줄 거라고 했고, "괜찮아. 다 괜찮아." 라는 말만 반복해서 했다.

뒤로는 굉장히 밝은 광채가 있었고 텔레토비의 햇님처럼 '아빠의 얼굴' 만 보였다. 그것도 젊은...


그 뒤로는 아빠가 어떻게 사라졌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한 시간의 세션이었는데 뒤로 갈수록 '무의식' 에서 '의식' 의 세계로 넘어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잠깐 잠깐 잠이 들었던 것도 같고 '프로포폴' 을 맞을 때, '의식과 무의식' 을 오가는... 아주 비슷한 기분이었다.

(그래서 난 그 와중에 이재용 사장을 생각했다. 부하들아, 싱잉볼 배워 사장님 편히 모셔라.)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잠재된 내 의식 속에서 나온 것이겠지만 이상하게 '육식' 에 대한 거리낌과 죄책감이 들었다.

내 몸이 디톡스, 정화되는 기분이랄까...

한 시간이 어떻게 간 지 모르게 끝이 났다.

나의 체험을 간단하게 리더에게 전하니 그 역시 매우 기쁘다고 답해주었다.

센터를 나오자마자 진정이 필요했고 한 카페에 들어가 나는 또 못 다 한 울음을 마저 쏟아냈다.

문득 세상을 떠나기 전, 아빠의 그 거친 얼굴 가죽의 촉감과 피골이 상접한 그 모습이 역력히 떠올랐기 때문이다.

요양병원에 모신 후회, 한, 죄책감... 아빠가 겪었을 모멸감, 외로움, 배신감...


아빠는 떠난 줄 알았는데 떠난 게 아니었다.

괜찮은 줄 알았는데 이렇게 슬플 일이 남아있는 거 보면, 죽음이 끝이 아닌가보다.

이것만 기억하기로 했다. 아빠는 "괜찮아" 라고 했으니까 난 괜찮을 거다.

(영어로도 했던 거 같아. You're OK라고...)

아무 일 없이, 아니 어떤 일이 일어나도 흔들리거나 꺾이지 않고 괜찮을 것이다.

아빠, 사랑해요. 감사해요.


그나저나 여기 네팔에는 '신이 사는 것' 이 분명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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