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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하지 않는다

단상_05

by 김단단

며칠 전, 애정하고 아끼는 후배 작가의 첫 방송이 있었다.

드라마를 한번, 그것도 메이저 매체에서 온에어 한다는 것이 얼마나 지난하고 힘겨운지, 또한 기적과도 같은 행운까지 따라주어야 한다는 걸 잘 아는 작가들은 지인들의 첫 방송에 꽃이나 케이크 등의 축하 선물을 보내곤 한다.

부산 여행 중이었던 나는 후배의 작업실 주소를 수소문 했지만 이미 철수했다는 소식에 조금은 성의 없어 보이는 카톡 선물하기로 마음을 전했다.

워낙에 필력이 좋은데다 성실하기까지 하니,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출발부터 긍정적이다.

마음이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축축한 습기와 그림자가 드리우는 걸 느꼈다.

'난 지금 뭘 하고 있지? 이러고 있어도 되는 걸까?'

일년이 넘게 '글쓰기 말고' 하고 싶은 거 다 하다가 한마디로 현타가 온 것이다.


그러다 우연히 하미나님의 '탁월하지 않기' https://www.khan.co.kr/article/202504292040005 라는 사설을 보고 눈물을 펑펑 쏟았다.


어렸을 때 나는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돈도 많이 벌고 싶었고 유명해져보고도 싶었고 사업도 크게 해보고 싶었다. 학자금 대출을 다 갚고 저축액도 얼마간 쌓이자 물욕은 급격히 줄었다. 책을 내며 얼마간 독자가 생기자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도 사라졌다. 결핍을 어느 정도 해소하고 나서야 내가 원했던 것이 돈이나 명성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원했던 것은 모멸감을 느끼지 않는 것이었다.
한 명의 인간으로서 존중받는 것이었다.


사춘기 때부터 무심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감히' 입 밖에 내지도 못하다 어쩌다 드라마 작가로 업을 삼게 되었다.

글 좀 쓴다는 칭찬도 받았고, 나는 아마 천재일 거라는 착각인 척하는 확신도 있었지만 그건 벤치에 앉아있을 때의 여유일 뿐... 소위 난다, 긴다하는 이들이 모인 메인 경기에 출전해보니 이건 전쟁, 그 자체였다.

너무나 치열한 경쟁 속에서 폭력과 상스러움이 일상이 되어버린 곳, 시청률이라는 수치로 난도질 수준의 평가를 받아야 하는 곳, 선택받지 못하면 스스로를 미워하고 괴롭혀야 하는 곳, 아끼는 친구와 선후배가 성공하면 마음이 조급하고 불안해져야 하는 곳, 결과가 좋으면 세상 그 누구보다 존경과 대우를 받지만 반대로 한번 삐끗하면 굴욕과 멸시를 각오해야 하는 곳...

어떻게든 다른 수가 없어 버티고는 있었지만 작년부터 나는 지쳐가고 있었다.

그런 와중 저 글에 마음이 베일 수 밖에...

물론 글 쓰는 게 정말 재미있을 때도 있고, 방송을 하면 그 흥분과 짜릿함 또 따라오는 보상이 얼마나 큰 지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는 인간은 맞지 않는구나!

저 글에서처럼 나는 '모멸감을 느끼지 않고, 한 명의 인간으로서 존중 받는' 사람이길 원하는구나!

... 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은 것이다.


이제는 누군가의 빛나는 재능을 보면 뒤에 숨은 짙은 그림자가 동시에 그려진다. 감탄하다가도 안쓰러워진다. 재능은 대체로 한 개인의 생존법으로서 개발되므로. 나는 수업을 듣다가 몰래 상상한다.
뛰어난 누군가를 추켜세우지 않는다면. 그럴 필요가 없다면.
누구든 존재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면.
개와 고양이가, 자갈과 모래가, 봄비와 라일락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처럼.


한번씩 드라마가 국내는 물론 해외를 그야말로 '핵폭탄' 처럼 강타하곤 한다.

그럴 때면 주변에서 내가 드라마 작가라는 이유만으로 '그거 봤어? 왜 안봤어?' 라며 따져 묻기까지 한다. 거기다 일장 연설로 칭찬을 늘어놓기도 한다.

물론 작가로서가 아닌 한 개인으로서 어떤 작품에 심취하거나 존경을 보낼 만큼 감동과 삶의 위안을 받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 편으로는 그렇게 열광하는 드라마가 나오는 것에 그닥 유쾌한 기분은 들지 않는다.

'저게 맞는 걸까? 나는 틀린 걸까? 나는 안되는 걸까?' 라는 못난 생각에 빠져드는 사람이 나 혼자는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비단 방송 바닥에서, 작가로서가 아니라 저자의 글처럼 학창 시절 역시 남들이 받는 칭찬에 주눅 들고 내 존재를 부정하는 열등감에 빠질 수 밖에 없었던 내가 안쓰럽고 애처로워 눈물이 났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되도록 칭찬하지 않으려 한다.

다만 마음으로 응원하고 기뻐할 뿐...

또한 누가 뭐래도 길가에 핀 들꽃처럼, 바람에 나뒹구는 낙엽처럼...

그렇게 나 자신을 추켜세우지도, 깔아뭉개지도 않고 살아가려 애 쓸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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