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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신호 Mar 03. 2024

나의 모쿠슈라, 밀리언 달러 베이비

2004년 개봉.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고등학생 시절, 지금은 기억마저 흐릿한 남도극장. 그곳에서 만났 헝그리 복서 록키 발보아. 스크린에 넘치는 남성미와 포기할 줄 모르는 류 복서의 성공담은 I can do it! 자체였. 이후 2편, 3편으로 이어진 록키 시리즈는 내 학창 시절과 함께 했. 지금도 주제가 <Gonna fly now> 들릴 때면 심장이 두근댄다.     


 여기 여성 복서가 등장하는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가 있다. 스크린을 비추던 빛은 멈췄지만 한동안 자리를 뜰 수 없게 하는 영화. “이 영화를 만날 수 있어서 난 행복했다.”라는 포스터 문장마저 가슴 저리게 하는 명작이다. 사유 흥미를 모두를 지켜낸 영화답게 아카데미 작품상을 비롯한 4관왕을 거머 줬다.  


 감독 크린트 이스티우드는 <밀리언 달러 베이비>를 가리켜, 사람들의 관계 맺기와 사랑하는 이의 삶과 죽음을 사유케 하는 영화하고 평했다. 영화는 스포츠 영웅의 성공담이 아닌, 한 인간이 맞닥뜨린 절망과 사랑에 대하여 말한다.     


      복싱의 신비한 점은 몸이 망가진 대도 계속 싸운다는 거지. 소중한 꿈 때문에 모든 걸 거는 거야.” 


 미주리 깡촌 출신 메기는 서른한 살의 늦깎이 여성 복서다. 메기는 자신을 지도해 달라며 프랭키에 매달리지만, 프랭키는 손사래를 칠 뿐이다. 프랭키는 23년 동안 미사에 빠지지 않은 아일랜드계 가톨릭 신자다. 이십 년째 딸에게 편지를 보내지만 반송물로 돌아올 뿐이다. 메기도 프랭키만큼이나 가족과 헛도는 외로운 존재다. 극 중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더 있다. 에디 스크랩, 그는 체육관 시설관리를 담당하고 있으며 영화는 에디의 시선으로 그려진다.      


 메기의 간절함에 흔들린 프랭키는 두 가지 조건을 걸면서 승낙한다. 자신 스스로 잘 보호할 것과 자신의 말에 토를 달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프랭키의 체계적인 훈련 속에 메기는 연일 ko 퍼레이드를 이어간다. 국내에 맞수가 없는 메기는 영국으로 건너가 챔피언에 오른다. 이날 이후 메기는 프랭키가 지어준 ‘모쿠슈라’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게일어인 ‘모쿠슈라’는 메기를 향한 프랭키의 마음이 담긴 단어.     


 그렇게 영화는 메기와 프랭키가 아버지와 딸이라는 부녀의 우정을 맺는 이야기로 전환된다. 얼핏 행복한 엔딩 스토리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성공적인 서사로 이어진 전반부를 지나면서 영화는 가슴이 아파오는 후반부로 질주한다.    


 메기는 성공의 정점에서 밀러언 달러가 걸린 푸른 곰과의 웰터급 결정전에 나선다. 푸른 곰은 잔인한 반칙의 여제였다. 메기는 종료와 함께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돌아서다가 푸른 곰에게 느닷없는 일격을 당한다. 결과는 메기의 추손상. 끔찍한 결과였다.      


 이때부터 영화는 사각링의 혈전과 관중의 환호는 사라진다. 대신 어두운 메기의 병실이 스크린을 채운다. 신경 손상. 신경이 살아있는 것은 고작 머리뿐. 팔과 다리를 움직일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 


  이쯤 해서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존엄사를 화두로 던진. 안락사라고 부른다는 스스로의 자살. 나는 오랜 시간 아버지의 장애의 삶을 가까이 지켜보았기에 비참함을 잘 알고 있다.


 어느 기자가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존엄사를 인정하냐’며 물었.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그 당사자가 되지 않고는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없다” 답했다. 정말 그렇다. 사지육신이 멀쩡한 이들은 종교를 들먹이며 쉽게 안 된다고 하겠지... 하지만 당신이 그런 상황이라면?     


 메기는 상태는 점점 악화일로다. 욕창에 걸린 한쪽 다리마저 잘라야 했다. 이쯤 되면 메기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짐작 된다. 프랭키도 메기의 뜻을 알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다며 고개를 떨군다. 천주교 신부에게 고민을 털어보아도 당신은 그일에 빠지라는 답만 돌아올 뿐이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가족의 의미룰 묻고 있. 프랭키는 유일한 혈육인 딸을 그리는 외로운 노인이. 메기의 처지는 더 딱하다. 링에서 얻어맞은 대가로 가난한 가족에게 집을 사주지만 오히려 보조금이 끊긴다는 비난만 들을 뿐이다.


 이 적반하장 가족은 누워있는 메기에게 몰려가 모든 재산을 엄마 명의로 돌리라며 회유한다. 심지어 팔을 움직일 수 없는 메기의 입에다 펜을 물려주면서. 충격을 받은 메기는 분노한 얼굴로 다들 나가라고 소리친다. 이 참담한 상황을 지켜보는 프랭키는 또다시 머리를 떨군다. 어두운 객석에서는 한숨 소리가 높아져 간다.     


 가족에게 필요한 것이 사랑일까? 아니다. 전혀 아니다. 혈육이란 그저 생물학적 인연을 맺게 된 관계일 . 사실 가까운 가족한테서 받은 상처는 타인보다 깊은 트라우마를 남긴다. 그러니 너를 사랑한다고 관습적으로 말하지 말자. 대신 존중이라는 예의가 필요하다. 자기 중심의 사랑은 폭력과 별반 다르지 않다.


  프랭키는 새벽에 급한 전화를 받는다. 메기가 혀를 깨문 것이다. 병원에 도착해 보니 메기의 얼굴은 피투성이. 처참함에 프랭키는 눈을 감는다.      


 


           “이젠 산소호흡기를 뗄 거야. 편히 잠들어” “모쿠슈라는 나의 사랑 나의 혈육이란 뜻이야.”


병실에 홀로 선 프랭키가 메기의 귀에 대고 고백하듯 말한다. 메기는 눈물을 글썽이며 잔잔한 미소를 짓는다. 그렇게 메기의 생명연장 장치는 프랭키의 손을 빌어 떨어진다. 어두운 공간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눈물은 나지만 마음이 따스해진다. 어두운 병실을 나서는 프랭키와 숨을 멈춘 메기. 이들은 아빠와 딸로 거듭난 것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그 누군가에게 밀러언 달러와 같은 인생일 것이다. 삶은 정답을 보여주지 않는다. 결국 지지고 볶으며 살다가 깨달을 수밖에. 인생은 한편의 영화. 나와 당신, 우리 모두는 자신이 주인공인 영화를 찍고 있다. 선택은 없다. 주어진 배역에 충실해야 할 뿐이다. 그 어느날 "컷! ok!"라고 그분이 외칠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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