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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해 달라고 하지 마세요.

가볍게 던지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말

by 두어썸머

점점 나이 들수록 쉽게 하지 못하게 되는 말들이 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추천해 주세요. “이다.


추천(推薦)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대상을 책임지고 소개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추천이라는 단어에는 ‘책임’ 진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어릴 땐 선뜻 추천해 주고 추천받는 일이 어렵지 않았는데 각자의 취향과 성격이 짙어지는 나이가 되면 추천이 쉽지 않다. 특히 취향이 담긴 것에 대한 추천은 정말 어렵다. 나는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누군가에겐 전혀 괜찮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어쩌면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그전엔 추천 이후의 일들에 대해선 고려하지 않았던 적이 많았는데, 이제는 나의 추천에 대한 책임을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추천으로만 끝날 수 없는 사회적 책임감을 느낀달까.


대표적인 추천의 예가 ‘여행지’이다. “괜찮은 여행지 좀 추천해 주세요.”만큼 난감한 추천이 또 있을까. 얼마 전에 가족들과 오키나와에 다녀왔는데 정말 좋아서 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지인은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곳이라고 했다. 같은 여행지라고 해도 아주 상반된 감정과 경험을 하는 게 바로 여행이라서 추천하는 게 매우 힘들다.

여행의 떠나기 전의 마음가짐, 같이 가는 사람, 여행지에서 경험한 뜻밖의 일들, 신체적 컨디션, 소소한 불쾌함, 즐거움, 당혹스러움, 황홀함 이 모든 것들의 평균치가 여행지에 대한 인상이다. 좋은 인상을 남긴 여행지는 언제까지나 좋은 인상으로 남아서 다음에 또 가게 되더라도 좋은 마음으로 여행을 시작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았던 곳은 시작부터 마음가짐 자체가 달라진다. 그러므로 여행지를 추천해 달라고 함부로 이야기를 꺼낼 수 없다.


책이나 영화도 마찬가지. 경험하는 사람의 그 당시의 상태, 취향, 몰입정도 등이 매우 다르기 때문에 쉽게 추천하거나 추천을 요구하기 어렵다. 무언가를 쉽게 고르기 힘든 사람들을 위한다는 핑계로 ‘베스트셀러’라는 상업적 표식으로 이목을 이끄는데 개인적으로 내가 경험한 대부분의 좋은 것들은 베스트셀러에 없었다. 나는 남들보다 모두가 좋다고 하는 것에 대한 반감이 커서 그럴 수도 있다. 그래서 가능한 뭐든 유행을 피하려고 한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그렇게 나만의 색을 잃지 않고 덧칠해서 입혀나가며 어른이 되고 있다. 추천받지 않고 추천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조금은 책임에서 가벼워지려는 마음이 내포되어 그렇다고 솔직하게 인정해야겠다. 책임에서 좀 더 가벼워지고 싶은 그런 마음 때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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