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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카페를 고르는 기준

20년 차 카페쟁이의 카페에 대한 생각

by 두어썸머

나는 카페쟁이다.


집 주변에 있는 카페를 몇 년에 걸쳐 하나씩 다 가보고 마음에 드는 곳을 골라 여러 번 방문하고 있다.


생겼다가도 갑자기 사라지는 카페들이 많아서 그런 카페들을 볼 때마다 ‘나의 카페’도 사라져 버리는 게 아닐까 걱정이 들지만 고심해서 고르고 고른 ‘나의 카페’들은 대부분 아직 사라지지 않고 조용히 남아있다.


20대 초반부터 카페를 찾아다녔으니 카페쟁이가 된 지 어언 20년이다. 그러니 어느 정도 ‘카페 손님 전문가’라는 호칭을 써도 되지 않을까 싶다. 커피 전문가는 아니고 카페 방문을 정기적으로 하는 ‘전문 손님’ 정도로. 그렇다면 ‘카페장이’라고 해야겠지만 그러면 너무 전문적이니 가볍게 ‘쟁이’로 칭하겠다.


무수한 세월을 거치며 커피 취향도 조금씩 바뀌듯 카페 취향도 바뀌었다. 나의 취향이 바뀌는 건지 카페의 유행이 바뀌는 건지 유행에 따라 내 취향이 바뀌는 건지 그 순서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지금의 나는 대체로 너무 작은 규모나 대형카페는 선호하지 않는다. ‘적당한’ 사이즈의 카페가 좋다. (하지만 모든 면에서 적당하기란 참 어려운 것이라는 걸 살아갈수록 느낀다)


테이블은 5~10개 정도, 베이커리가 맛있으면 좋지만 대체로 커피만 마시는 편이니 커피가 맛있을 것, 자주가도 아는 척하지 않는 딱 그 정도의 선을 지켜주는 곳, 손님들도 과하게 시끄럽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 독서실 같은 분위기는 아닌 백색소음 정도의 소음, 깨끗한 화장실, 쾌적한 실내, 화이트 또는 원목인테리어로 꾸민 밝고 단정한 분위기, 흘려듣기 딱 좋은 배경음악, 원하면 언제나 마실 수 있는 물이 비치되어 있거나 흔쾌히 제공해 주는 곳 그리고 납득할만한 합리적인 가격.


의외로 이 모든 조건에 부합하는 카페는 드물다. 카페의 위치에 따라 고객의 성향이 두드러지는데, 어떤 카페는 목소리 큰 사람들의 단골 아지트가 되어 매우 시끄럽거나 모든 게 마음에 드는데 테이블이나 의자가 불편하다거나 화장실이 없거나 와이파이가 안 되거나 부담스럽게 아는 척하는 인싸 사장님이라던가…. 그리고 규모에 비해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이라던가 가격은 싸지만 맛도 저렴한 커피라던가 ….


하나만 마음에 들지 않아도 어쩐지 발길을 끊어버린다. 마치 결혼상대를 찾듯이 말이다. 어릴 땐 하나만 마음에 들어도 괜찮았는데 나이 들수록 ‘하나만 마음에 들지 않아도’ 마음을 주지 않듯이 말이다. 어차피 세상에 사람은 많고 카페도 많으니까 라는 생각으로.


그렇게 나만의 기준으로 찾은 극소수의 카페들은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고 동네에 터를 잘 잡고 있다. 아마도 나와 같은 ‘전문 손님’의 합격을 받아서겠지 라는 생각이 들어서 괜히 뿌듯해진다.


의외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점은 ‘거리’이다. 은근히 멀어도 괜찮은 카페로 향하는 발걸음은 즐겁다. 위치가 이상해도, 맛집의 줄이 끊임없듯이 카페도 마찬가지다. 그런 카페는 아마 등산을 조금 한다고 해도 가게 될 것이다. 좀 걷는 것도 건강에 좋으니까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내가 카페를 창업하게 된다면 모든 점들이 다 중요해져서 아마 결국엔 시작도 못하겠지만…


우후죽순 생겨나는 카페들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게 ‘카페쟁이’로써 아쉽기 때문에 새로운 카페에 방문하게 되면 애정 어린 마음으로 대하려고 노력해 보지만 대부분은 불합격한다. 재방문하지 못한 카페들이 많아질수록 내 기준은 차곡차곡 더 높아지는 기분이다.


내가 찜한 카페들이라도 오래오래 살아남아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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