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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보람 Nov 04. 2020

음대생이 되었다

- 서른 다섯, 비전공자 아줌마의 피아노 대학원 도전기 (1) 입시

                                                                                                                                                                                                                                                                                                                            

지아가 울었다. 최대한 조심조심 조용조용 준비한다고 했는데도 빈 옆자리가 허전했는지, 화장실 불이 새어 들어왔는지, 잠이 덜 깬채로 울면서 안방에서 나와 화장실 문앞까지 엉금엉금 기어온다. 


오늘은 대학원 입시 시험을 보러 가는 날이다. 어릴 땐 엄마가 피아노 좀더 해보자고 학원 더 다니라고 그렇게 쫓아다니며 얘기해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었는데, 언젠가 어릴 때 엄마가 무언가 큰 결심을 한 얼굴로 네가 원한다면 피아노 전공도 시켜줄 수 있다고 말했을때 0.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나는 안할건데? 하고 대답하며 엄마를 허탈하게 만들었는데. 무슨 바람이 불어 30대 중반이 되어서 하던 일을 그만두고 출산 육아에 지쳐 아무 힘도 내지 못하던 때 다시 피아노를 시작했다. 



아이를 낳고 나와 잠시라도 떨어지면 온 힘을 다해 그 조그만 몸이 터질 것처럼 울어대던 아이를 놓고 바깥에 나갈 용기 없이 겨울, 봄,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려던 어느 날. 밤에 잠이 안와 거실에 혼자 앉아 창밖의 불빛들을 물끄러미 보다가 .. 내가 혹시라도 저 불빛 속으로 떨어져 죽기라도 한다면 우리 아가는 내가 죽은 걸 알까? 며칠 울다가 말겠지? 우리 엄마는 엄청 슬퍼하겠지. 엄마는 며칠 울다가 따라 죽을지도 몰라. 하는 생각을 하며 괜히 울다가... 갑자기 정신이 들어 어머,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나 생각보다 상태가 심각하구나. 이렇게 계속 살다간 정말 언젠가는 죽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고는 뭐에 홀린듯이 컴퓨터를 켜고 피아노 입시 학원을 검색하다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서 어제 밤에 적어둔 피아노 학원 전화번호를 보며 망설이다가 그래, 지금 아니면 또 언제 해보겠어 하는 마음으로 용기를 내어 전화를 걸었고 그날 저녁에 피아노학원 원장님께 1회 레슨을 받아보고 상담을 받기로 했다. 


중학생 쯤으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치는 힘있고 묵직한 쇼팽의 대양을 들으며 상담을 기다리는 그 시간이 어찌나 떨리던지. 내가 있으면 안 될 자리에 온 것 같고, 어린 애들 사이에서 30대 아줌마가, 나는 저렇게 빠르고 힘있는 소리는 못 낼텐데, 어젯 밤에 괜히 잠도 안자고 쓸데없는 생각이나 해서 내가 미친 짓을 했구나. 이게 무슨 일이야. 별 생각을 다 하다가 그랜드피아노에 앉았고, 임신 하고 태교처럼 취미처럼 연습했던 모차르트 소나타와 베토벤 소나타를 1곡씩 연주했었다. 연습 한번 없이 몇 달만에 치는 곡들이라, 그리고 너무나 긴장해서 자꾸 틀리고 엉망이었던 곡을 끝까지 다 들어보시더니 원장님은 굉장히 긴장한 것 같은데 긴장 풀구요. 안 배웠잖아요. 그렇죠? 이제 배울거니까 괜찮아요. 라고 말씀해주셨다. (뭐 그 외 현실을 자각하게 했던 여러가지 말씀들도 있었지만 용기가 나는 말들만 기억하도록 한다. ㅋㅋㅋ)



그렇게 기존에 했던 곡들을 약 3주 정도 하며 기본기를 다시 다지고, 학사 편입을 목표로 9월 중순쯤 실기곡을 골라 처음 쳐보게 되었다. 원장님과 선생님 두 분께 레슨을 받았고 원장님은 전체적으로 음악의 큰 줄기를 알려주고 표현하는 법 등을 알려주는 방식이었다면 선생님은 세세하게 하나하나 꼼꼼히 봐주시는 스타일이었는데 특히 시간이 지날수록 선생님 레슨에서 멘붕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동안 취미였지만 그래도 꾸준히 피아노를 쳐오면서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문제들에 대해 지적당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건 내가 이미 습관으로 굳어져 고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지적을 당하면 당할수록 아, 나 그동안 피아노 헛쳤구나 하는 생각에 자괴감까지 들 정도였다. 


원래 목표는 1월에 자유곡 2곡으로 실기를 보는 학사편입이었지만 11월에 대학원 전기 모집이 시작 되어서 고3때부터 공부는 잘 못 했지만 나에게 유리한 입시 요강을 잘 찾아내 담임과 상의도 없이 배짱지원 턱턱 하던 경험을 살려 비전공자도 응시할 수 있는 음악 대학원 몇 곳에, 학원과 상의없이 내맘대로, 밑져야 본전이니까 하는 마음으로 정말 기대 하나도 없이 원서를 넣었다. 혹시라도 황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듯이 어디라도 합격하면 좋은거고 만약에 다 떨어지더라도 편입 시험 전에 실기 경험 쌓는다고 생각하면 되는 거니까. 


대학원 세 곳을 시험 봤는데, 처음 시험 보러 간 곳에서는 정말 쥐구멍에 숨고 싶을 정도로 너무 망쳤다. 일단 웅장한 홀에 무대 한가운대 놓여있는 스타인웨이에 앉는 것 자체가 생각보다 너무 부담스러운 일이었고, 내 앞사람의 실기 소리가 너무 크게 들리는 것 또한 스트레스였다. 이미 기가 죽을대로 죽어버린 나는 소리 다 빠지고 손 다 꼬이고 엉망으로 쳐서 내 이런 소리를 들으려고 앉아있는 심사위원들에게 죄송할 정도였다. 두번째 세번째 학교는 일단 사람이 너무 많이 왔다. 게다가 대부분 내가 생각한 것보다 너무 다들 어렸고, 다들 너무 전공자들이었다. 그래도 한군데 시험 보고 온 경험이 있어서인지 기가 죽기는 커녕 그래, 너네는 음대생들이니까. 나는 비전공자야. 전공자인 너희들 속에서 애도 낳은 아줌마가 와서 시험을 보는 자체가 대단한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피아노에 앉아서도 첫 날처럼 떨지 않았고, 완벽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치고 와서 후회는 없었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 세군데 모두 다 떨어질 것을 대비해 한곳을 더 지원하고 대학교 편입 요강을 폭풍 검색함;;;)


그리고 정말 생각지도 못 했는데 너무나 감사하게도 지난 주에 한 곳에서 합격 소식을 들었다. 믿어지지 않는 소식이라 혹시라도 행정착오로 합격통보가 잘 못 된 거면 어쩌나 내심 불안해하고 있는데 등록 할 건지를 묻는 조교의 전화가 왔고, 나를 실기 제자로 추천한 교수님이 계시다는 너무나 감사한 소식도 들었다. 




오늘은 세군데 입시를 모두 마치고 다 떨어질까봐 불안한 마음에 추가로 지원한 학교의 시험 날이다. 새벽 같이 일어나 학원에 가서 한 시간 정도 손을 풀고 연습을 하고 가는 길인데, 집에서 나오기 전에 지아가 깨서 엄마랑 떨어지지 않으려고 계속 매달리고 계속 울어서 마음이 안좋다.                                                 



                                                                                                                                                                                                                                                                                                                                                                                                                                                                                                        

가을이 시작하고도 유난히도 더웠던 날씨였는데 아기띠에 안고 버스타고 지하철타고 학원에 데려갔을때 혼자 놀다가 피아노 의자에 매달려 징징대다가 간신히 잠들었다가 또 깨서 울다가를 반복해 결국 업고 안고 피아노 연습을 했던 그 시간들. 남편이 퇴근하면 저녁도 안 차려주고 아기 맡기고 바쁘게 나와 아기가 잠든 후에야 들어가던 그 시간들.


실기를 마치고 온 날 겁이 많아 아직까지도 손을 안떼고 혼자 잘 서지도 않으려는 지아가 스스로 두 다리에 힘을 주고 힘겹게 일어나서 손뼉을 짝짝짝 치는데 엄마 너무 수고했어요. 내가 응원해줄게요. 하는 것 같아서 눈물이 왈칵 나던 그 시간. 그 시간들을 함께 견뎌주고 늘 응원해주고 용기를 주던 남편과 지아가 있어서 잘 할 수 있었다. 


오늘 실기도 보러가기전에 이렇게 긴 글을 쓰느라, 게다가 지아의 울음소리가 귓가에서 떠나지 않아 쓰게된 글이라 이미 감정이 너무 흔들려서 잘 하고 올 수나 있으려나 싶지만. 그래도 우는 아기 떼어놓고 온 미안한 마음을 가득 담아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해야 겠다. 이미 한 군데 붙어놨으니 긴장하지 말고, 편안한 마음으로.                                                






지아야, 엄마 잘 하고 올게.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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