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던 수석이 눈에 아른거려 쓰디쓴 무력감에 잠을 뒤척이게 만든 영화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
단순히 색을 흑백으로 변경하여 리마스터링 한 것이 아닌 컬러였을 때는 잘 보이지 않던 것들이 흑백으로 단순화될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에 대해 말하고 싶다.
영화 기생충에서는 기택(송강호)이 단연코 눈에 띈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디언 모자, 상기된 얼굴, 후줄근해 보이는 컬러의 셔츠, 햇빛이 눈부신 듯 찡그린 미간과 눈가, 붉게 충혈된 눈동자. 조금은 맹하지만 착한 그가 햇빛에 눈이 도는 모습은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떠오르게 한다. 모든 인간에게 평등하게 나누어져야 할 햇빛조차 지하방에 사는 하층민에게는 와닿지 않는다.
그렇기에 눈부신 태양 아래 홀로 서있는 기택은 모든 것이 부조리하게 느껴진, 햇빛이 지나치게 눈부셨을 분노한 뫼르소 일지도 모르겠다.
돌이킬 수 없음에도 박사장에게 사과하는 기택.
봉준호의 영화에 나오는 모든 주인공들이 그러하듯 그는 본질적으로는 좋은 사람이다. 하지만 개인의 본질과 관계없이 환경과 세상이 좋은 사람을 악인으로 충분히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영화를 통해 봉준호는 내내 이야기한다.
언젠가 들었던 세상에서 감출 수 없는 것 세 가지 가난, 사랑, 기침...
감추고 싶었지만 너무나 티나는 가난의 냄새를 자꾸 불편하게 상기시키는 것이 이 영화의 잔인한 점이자 슬픔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가난은 그저 가족에게 처음에는 불편하고 거슬리는 것이었지만 어느샌가 영화 속 세 가족이 파국을 맞을 만큼 가난의 절망과 수치는 덩치를 키운다
컬러판에 비해 기생충 흑백판에서는 여러 컬러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것들을 보게 해준다 컬러판에서는 스쳐 지나갔던 빛과 물처럼 반사되는 것들이 유독 눈에 띈다. 역설적이지만 빛은 어둠 속에서 존재감을 발휘하며 좀 더 극명해진 비극적 명암대비를 보여준다.
기택의 반지하를 떠돌아다니는 먼지 입자는 카메라 렌즈에 내려앉아 햇빛을 받으면 보케로 표현된다. 그들의 집에서 채광이 들어오는 유일한 곳은 사람들이 발만이 보이는 작은 창으로, 어느 곳을 가도 햇빛이 머무르는 부잣집과는 참으로 대조되었기에 빈부격차를 일조량을 통해 단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아들 기우가 선물 받은 흰색의 띠를 가진 검은색의 수석은 흑백에서 유난히 더 반짝인다.
수석은 기우의 희망이다.
당장은 아무런 도움도 안 되고 무겁기만 하지만 갖고 있지 않으면 본인이 견딜 수 없는 막연한 희망 말이다.
가난한 자에게 희망의 무게는 녹록지 않다.
이미 현실에 물든 부모는 이해 못할,
영악한 여동생은 포기해버린 그 희망의 증표인 수석
그렇기에 아직 순수한 기우는 놓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가족 중 기우는 유일하게 '무언가가'되고 싶다는 욕망과 희망, 미래를 이야기하는 자이기도 하다.
물난리에 수석을 챙긴 기우가 바보같이 보일지라도 남들 눈에는 아무짝에 쓸모없을 돌덩이가 그가 그렇게나 원하고, 지키고 싶었던 것이었음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서 나는 가슴 한쪽이 지끈거렸다.
엉망이 된 상황으로 인해 소중한 수석을 다른 수단으로 사용해야 함을 그는 알고 있었다.
본인의 희망만을 쫓는 이기적인 면모를 갖추지도, 그렇다고 여동생처럼 현실만을 쫓지도 못하는 영화 속 기우는 그는 곧 이별해야 할 그의 희망(수석)을 꼭 끌어안는다.
왜 수석을 가져왔냐는 가족의 질문에
라고 말하며 애써 기택을 외면하는 기우의 눈 끝에는 눈물이 반짝인다.
분수에 맞지 않기에 버려야 할 희망인 반짝이는 수석, 그의 눈 끝에 맺힌 눈물의 반짝임은 참으로 눈부시다.
기우가 끌어안고 다닌 돌은 그의 마음 한편에 늘 도사리고 있던 부담감, 막연한 희망이자 결코 버리고 싶지 않았던 무언가였음을 생각하니 결국 전혀 다른 용도로 쓰이게 된 그놈의 수석이 내내 눈에 아른대서 영화를 본 밤 나는 내내 뒤척이는 밤을 보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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