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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르온 Sep 22. 2023

어느덧, 4년

이미 다 잊었을 너에게

 그래, 그날 이후로 벌써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어. 너는 어떻게 지내? 




 나는 뭐, 사람 인생이 그렇듯 바랐던 대로 살고 있지는 못해. 어렸을 때 상상했던 어른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긴 하지만 내 길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아 다행이야. 


 너는 원하던 대로 치대에 입학했는지 궁금하다. 무사히 학교 졸업했다면 이미 입학했거나 꽤 괜찮은 학교에 다니고 있겠지? 난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대학에 입학하긴 했지만, 학교 재단이 좋아서 전액 장학금 받고 다니고 있어. 사실 이번 1학년 1학기에는 성적 최우등생 표창장도 받았어 하하. 예전처럼 인간관계에 힘들이지 않으니까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더라. 물론 이성관계도 포함해서 말이야. 그렇다고 외톨이처럼 있는 건 아니야.  뭐든지 적당히, 꾸준히 하니까 팀플 경진대회 2등도 해보고 마음 맞는 동기랑 친해져서 외롭진 않아. 




 있잖아, 나는 그날 이후로 달과 비, 이 두 가지가 세상 그 무엇보다 싫어졌었어. 달만 보면 네가 기숙사에서 찍었다며 나에게 보내줬던 달이 계속 떠오르거든. 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비만 오면 울적했고 또 그 기분에 너에게 고백했던 날도 장대비가 내리는 날이었지. 입학 전만 해도 좋아했던 그것들이 싫어지니까, 그리고 그 이유가 너라는 것 때문에 살짝 비참해지더라. 최근까지도 하늘에 달이 뜨면 의식하게 되고 빗소리가 들리면 창문을 닫았었어. 작년에 재수할 때가 가장 심했어. 하루종일 도서관에 틀어박혀서 수능문제만 풀고 아침 일찍 나갔다가 저녁 늦게 집에 돌아오는, 전형적인 재수생의 모습이었지만 난 특히 견디기 힘들었어. 왜냐고 묻는다면, 사는 게 지쳤다고 말해줄 수 있겠네. 


 그때는 정말 그랬어. 나는 학창 시절의 추억이라고 회상할 만한 게 전혀 없거든. 중학생 때는 엄마가 고등학교 입시 때문에 친구 관계에 간섭을 많이 하셔서 즐겁게 놀아본 적도 없고 고등학교에 들어와서는 뭐... 그건 너도 잘 알지? 아니다 너는 내가 1학년이었을 때만 봤으니까 그 이후는 잘 모르겠네.  굳이 말해주자면 고2 때가 내 인생의 가장 암흑기였어. 전학 왔던 1학년 2학기땐 반 친구들이 착해서 잘 지냈지만 2학년 올라온 후에는 일부러 모든 관계를 끊으려고 했던 거 같아. 공부는 공부대로 안 하고 인간관계는 엉망이니 즐거울 리가 없지. 처음 전학 왔을 때는 선생님들이 날 다 알아보시면서 한 마디씩 하셨는데 2학년 1학기 지나니까 아무도 관심을 안 보이시더라고. 성적이 기대했던 것보다 낮으니까 그랬겠지. 그래도 고3 때 좋은 담임선생님 만나서 정신 차리고 정시 준비하고 이렇게 대학다운 대학에 입학하게 됐어. 




 너에겐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아. 자주 울기도 했고. 그날 이후로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렇겠지. 지금까지는 이런 말들이 떠오를 때마다 휘발시켜 버렸는데 앞으로는 이곳에 글로 남기려고 해. 가끔 네 생각 때문에 내 마음속 심연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들 때, 글로 적으니까 조금은 나아져서 말이야. 어쭙잖은 추억팔이 그런 걸 하고 싶은 건 아니니 알아줬으면 해. 너는 강한 아이니까 만약 이 글들을 보게 되더라도 그냥 지나쳐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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