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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young Lee Oct 05. 2019

상상과 표현 사이: 시뮬라이숑

과학자들의 환상 

시뮬레이션은 대상을 방정식이나 물리법칙으로 이해한 다음 이것에 근거해서 실제 일어나는 일을 추측하는 연구방법 중에 하나입니다.  복잡한 자연현상을 관측하면서 과학자들은 법칙을 알아냅니다. 그 법칙의 유용성은 예측능력인데, 그 예측을 하는 행위에 시뮬레이션은 중요한 도구가 됩니다.  


과학이 이렇게 발전했지만 어린이들이 부르는 노래 가사 " 태극기가 바람에 흩날립니다"라는 구절을 시뮬레이션하는 것도 제대로 못한다는 사실은 흥미롭습니다. 유체를 기술하는 방정식은 고도로 비선형적이고 복잡하고 유체와 변형 가능한 페브릭과의 상호작용을 완전히 기술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현재 갖고 있는 방정식을 갖고 슈퍼컴퓨터를 돌려가며 바람에 흔들리는 태극기를 시뮬레이션합니다. 


시물레이션의 결과는 이미지로 만들어지고 이것을 시간 순서로 덧입으면 한 편의 동영상이 만들어집니다. 우리 가 동적 시뮬레이션 영상을 보고 있으면 정말 태극기가 바람에 사실적으로 흔들린다고 보입니다. 그리고 이런 정도로도 사람들은 만족하고, 이런 시뮬레이션이 쓰일 곳은 영화를 비롯해서 많이 존재합니다.  시뮬레이션 기술은 수많은 군인들이 때거리로 전투하는 장면을 만들기도 하고 쓰나미가 몰려서 도시를 덮치는 장면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현실과 유사하나 현실일 수는 없는 것을 우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소비합니다. 


우리의 선험적 인지인 시간 공간 물질에 대한 인식을 구축하는 물리법칙에 입각하여 실제처럼 보이는 시뮬레이션의 힘은 그 정확도에 따라 실제 실험을 대체합니다.  로렌스 리버모아 국립연구소를 방문하여 연구자들과 토론한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이들은 레이저를 이용한 핵융합 원자로를 개발 중이었습니다. 이들이 만드는 핵융합 연료는 지름이 1 밀리미터 정도 되는 아주 작은 금박 안에 중수소와 삼중수소를 가둔 연료에 막강한 레이저 빔을 쏘는 일이었습니다.  그 작은 금박 구슬에 가해지는 레이저를 만들기 위해 축구장 두 개를 합친 크기의 레이저 발진 장치를 갖고 있었습니다. 손가락에 보석반지로 하나 차려고 해도 손발이 오글거리는  고가의 사파이어 보석으로 대문짝만한 렌즈를 무수히 설치하여 빛을 휘고 고르고 증폭하는데 그만한 공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핵융합원자로의 핵연료 (Wikipedia)


이 거대한 레이저 증폭장치는 연구실 한편에 있는 조그만 컴퓨터의 화면에 영상으로 축소되어 각 단계마다 센서의 계측 값을 고려한 시뮬레이션 영상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핵융합의 순간에 임계치를 돌파시키기 위한 온갖 아이디어를 짜냅니다.  수없는 실패로 미국 의회는 예산을 삭감하고 연구소장을 평연구원으로 강등시키는 형벌을 내렸고 요코하마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에선 비 오는 날 방사능을 걱정하며 우리는 이들이 레이저의 빛의 스펙트럼 모양을 높은 구두굽처럼 해서 상당한 진전을 얻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그 모든 것은 시뮬레이션 영상으로 우리의 눈을 파고들었고 우리는 마치 레이저의 한 톨의 빛이 된냥 1밀리미터의 금구슬 안으로 여행을 했습니다. 


폭발의 순간(Wikipedia)


시뮬레이션은 이제 실제를 USB에 담거나 인터넷으로 언제든지 꺼내볼 수 있으며, 우리의 상상을 자극합니다. 우리는 시뮬레이션의 그림에서 작은 개미처럼 변해서 미세한 부분을 탐험하기도 하고 거인이 되어 모든 것을 손바닥 안에서 들여다보는 존재가 됩니다. 


요즘 과학자들의 학술대회는 정해진 시간에 발표를 마치는 사람들이 숫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것은 파워포인트의 해독입니다. 예전에 OHP를 사용할 때는 시간을 봐가며 슬라이드를 알아서 빼버릴 수가 있는데 이제는 준비한 모든 것을 보여줘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리고 더 문제는 시뮬레이션을 점점 사실로 받아들이는 과학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누구보다 현상의 실체를 잡아야 할 과학자들도 시뮬레이션의 위력으로 시뮬레이션의 결과를 이해하고 감탄하는 상황으로 빠져든다는 것은 이제 상상이 현실을 넘어서는 세계, 혹은 상상과 현실이 함께 공존하는 세계가 되고 있습니다. 




나는 상상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는 말은 아마 데카르트를 몹시 언짢게 할 것입니다. 그는 적어도 참이 아닌 명제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철학적 결단으로 근대를 열었던 선구자였으니까요..  그러나 오늘날 데카르트 씨가 살아간다면 어쩌면 그는 누구보다도 시뮬라르크와 시뮬라이숑을 즐기고 탐구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들뢰즈(위키피디아)

여기서 약간 죄송한 마음이 드는 것은 들뢰즈라는 사람의 이름을 끝까지 말하지 않으려 했다는  시뮬라이숑적 추측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사실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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