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eyoung Lee Sep 30. 2019

창조력의 다섯 코드

데일 카네기 독서클럽에 드리는 글 

# 들어가기 

데일 카네기 독서클럽 회원님들과 포항지역의 문화시민 여러분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데일 카네기는 저에게도 많은 영감과 가르침을 준 분입니다. 수줍음이 많고 자신감이 없는 청년시절에도 저에게 조언을 준 분은 데일 카네기였고, 인생을 좀 살아본 지금에도 여전히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것은 그분이 과연 탁월한 인생의 스승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제가 그분에 더욱 탄복했던 것은 링컨의 일생을 소개한 책에서였습니다.  평전 하면 작가 OOO가 떠오르지만 이분이 쓴 링컨의 평전은 가슴 저미는 그 무엇 있어 어떤 소설가가 창조한 인물보다 더 창조적이었습니다.  특히 링컨이 미인가 큰소리 학교에서 15세에 겨우 알파벳을 배우는 이야기와 읍내에서 만난 첫사랑, 그리고 그 첫사랑의 급작스런 죽음, 실연의 아픔으로 무덤가에 가서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마침내 우울증에 빠진 일, 죽은 애인의  오빠와 같이 웅영하던 고물상에 어느 날 운명처럼 들어온 헌법전집에 이끌려 시작한 변호사 독학.. 이런 운명의 흐름을 보면서 인생을 다시 생각하게 했습니다.  아브라함 링컨의 일생은 과연 절망과 슬픔을 배경으로 목숨을 건 도전의 일생이었습니다. 그렇게도 인생이 되는구나.. 이런 깊은 깨달음은 오늘날 너무나 쉽게 생을 던지는 젊은이에게 꼭 들려줘야 할 모범이라 생각되었습니다. 


저는 깊은 슬픔과 일생을 따라다닌 우울 증속에서 공공의 선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은 한 시골 젊은이의 인생을 들여다보면서 떠오른 단 하나의 단어가 있었습니다. 바로 "창조력"입니다. 마치 들꽃의 씨가 하늘을 날아 진창에 떨어졌어도 싻을 튀우고 밟히고 밟혔지만 마침내 꽃을 피우는 질긴 생명력을 주는 창조력 같은 것입니다.  창조력은 위대한 결과로 남보다 앞서가는 얄팍한 술책이 아니고 한 사람의 존재를 지탱하는 생명의 근원 같은 힘입니다. 어떤 절망 속에서도 창조력이 있는 사람은 살아나고 일어섭니다.  이제 창조력의 깊은 세계로 여러분을 인도하기 위해 디지털 버튼을 눌러 문을 열겠습니다.  버튼의 비밀 번호는 IIIII입니다. I를 다섯 번 누르면 됩니다. 


# 첫 번째 코드 I,  상상력(Imagination) 

링컨은 큰소리 학교에 가서 알파벳을 배웠습니다. 책을 큰소리로 읽어야 하는 이 학교의 선생님은 지구가 평평하다는 것을 믿는 이상한 종교를 포교하러 시골까지 온 분이었습니다. 학생들이 작은 소리로 책을 읽으면 마구 때려 학생들의 책 읽는 소리가 1마일 밖에서도 쩌렁쩌렁 들렸다고 합니다. 링컨은 읍내 고물상에서 책 다섯권을 사서 개인 서가를 만들었습니다. 천로역정, 아라비안 나이트 이런 책들입니다. 거기서 멋진 구절이 나오면 나무판에 숯으로 배껴쓰고는 숲에 가서 큰소리로 읽었습니다. 숲 속의 나무들이 청중입니다. 그는 황홀한 가운데 연설을 했습니다.  애인을 만나 데이트를 할 때면 외워두었던 시를 큰소리로 강둑에서 외웠습니다. 그 애인이 그 시를 좋아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링컨은 시를 외으며 시의 상상의 세계에 빠졌습니다. 


상상력은 듣는 것 읽는 것에서 자라납니다.  신앙인들의 믿음은 상상력을 필요로 합니다. 어떻게 보면 신자들은 상상력이 탁월한 사람들입니다. 보이지 않는 신을 믿는 것이 그것이죠..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합니다. 믿음의 대가 바울 사도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라고 말했습니다. 과연 믿음의 대가 답습니다.  바라는 것은 아직 이루어진 것이 아닌데 그것이 마치 이루어진 것이 되는 것,  보지 못하는 것은 없는 것인데 그것이 증거가 되는 것.. 그것은 바로 보지 못한 것을 본 사람이란 말입니다. "본 자" 이것을 "증인'이라고 합니다.  상상력은 이미지를 생각으로 떠 울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미지 중에는 이제까지 없던 그 어떤 것일 수 있고, 그것은 완전히 새로운 창조물일 것입니다. 


우리는 상상으로 이미지를 창조할 수 있습니다.  상상력은 모든 분야에 요구되는 창조력의 원천입니다. 문학인들은 문학적 상상을 합니다. 분수처럼 쏟아지는 푸른 종소리라는 공감각적인 표현이 시작의 방법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이러한 청각을 시각화하는 것이야말로 상상의 전형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예술인들의 상상은 어떠합니까?  추상화를 그리는 피카소의 상상을 바라보며 우리는 경탄을 합니다. 예술의 상상은 바로 상상을 현실화하는 이미지의 실체화의 작업입니다.  과학자들도 상상을 합니다. 원자를 찾아내던 과학자는 원자의 구조를 생각합니다. 톰슨은 원자가 중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러더포드는 금박을 알파 입자로 때려 그 산란을 보면서 원자는 중심에 양성자가 있고 주변에 전자가 돈다고 생각합니다. 보어는 그 전자가 양성자로 달려들지 않는 것은 달이 지구 주위를 돌듯, 전자가 일존의 파동으로 넘실대며 전자 주위에 있다는 이미지를 제시합니다. 원자모형들은 과학자들이 원자를 상상한 이미지들입니다. 오늘날의 우주에 대한 상상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대인들은 신을 상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리스 문학의 정수인 신화와 영웅 이야기는 위대함에 대한 상상의 결과입니다. 


# 두 번째 코드 I,  영감(Inspiration)

링컨은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동시에 그는 연설문을 작성하는데 온 힘을 기울였습니다. 연설문을 작성하는 과정에 그는 어떤 영감의 번득임을 체험합니다. 그는 사실 키가 너무 크고 안 맞는 바지를 입어 종아리가 드러날 정도였습니다. 더욱이 정치 연설자로서는 아주 흠이 될 가늘고 높은 테너의 목소리를 갖고 있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매우 비호감이 목소리였다는 사실은 오늘날 그의 저서를 읽는 사람들은 감지 못할 일이지요.. 만일 오늘날처럼 TV토론을 한다면 링컨은 목소리 하나로도 탈락이 확실시됩니다.  그러나 그는 영감 어린 연설문을 작성했고 신문은 연설의 전문을 실어 날랐기에 그는 대통령의 자리에 까지 오를 수 있었습니다. 영감은 글에 인 사이트를 담아줍니다. 인 사이트에 사람들은 감동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저마나 한개씩 거문고가 들어 있습니다. 이 거문고는 오직 인사이트에 반응합니다. 마음속의 거문고 흉금을 울린 글은 영감에서 비롯됩니다. 


영감은 모든 사람들에게 있지만 이를 개발하고 사용하는 사람과 그저 묵혀두는 사람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신을 믿는 사람들은 신의 계시를 믿습니다.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잠재의식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의식활동을 넘어선 어떤 의식의 출현, 이것을 종종 영감이라고 표현합니다.  영감은 창조력의 원천입니다.  


영감의 출현을 위해서는 느리게 사는 삶이 필수입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많은 창작을 한 사람이지만 영감을 기다릴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는 영감이 올 때까지 무수히 선을 긋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무기를 개발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적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다빈치는 들에 나가 석류 열매를 그립니다. 한없이 석류 열매를 그리다가 문득 수류탄의 이미지가 머리에 터집니다. 그는 석류에서 석류알 대신 쇠구슬을 넣고 그 사이에 폭약을 채워 수류탄을 만들고 이것을 바로 사용합니다. 


영감은 조용함을 필요로 합니다.  커피를 너무 마셔 잠 못 이루는 밤은 영감이 오기에 딱 좋은 밤입니다. 수학자 프앙카레는 어느 날 커피 과잉으로 잠 못 이루다가 푸쿠시안이라는 함수를 발견합니다. 이 발견을 완전히 잊었지만 그는 군대에 징집된 어느 날에도 문득 떠오르고 제대 후에도 어느 날 문득 그 문제의 솔류션을 찾습니다. 프앙카레는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잠재의식이 의식보다 더 똑똑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잠재의식이 활동하도록 수학 연구는 하루에 4시간만 하는 기이한 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그는 위대한 수학자로 오늘날까지 칭송받고 있습니다. 


신앙인들은 기도와 예배로 신과의 교감을 합니다. 찬송이나 독경도 이에 해당합니다. 동시에 노동을 함으로 몸에 영성이 깃들도록 합니다. 기도와 노동은 수도원의 중요한 덕목입니다.  일반인들은 명상을 합니다. 유발 하라리나 베르베르 베르나르 같은 서양인 조차 명상을 통한 마음 챙김을 하는 것을 보면 이들이 이러한 종교적 의식 속에 영감을 깨워내는 비결이 있음을 체험하는 증거입니다.  


영감력을 키우는 것은 자신의 의식에  빈 곳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 빈 곳을 신에게 혹은 잠재의식에 할애하는 것이 필수입니다.  치밀한 판단력의 소유자들은 판단을 잠시 내려놓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여행을 하거나 숲에 들어가 휴식을 취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하이젠베르크가 양자역학의 방정식을 만들던 날도 이렇게 해변 마을의 작은 여인숙에서 쉬면서 이루어졌습니다.  


# 셋째 코드 I,  융합 발명(Integrative invention) 

링컨은 노예해방이라는 엄청난 이슈로 남과 북으로 갈린 미국을 융합해서 오늘날의 미국을 발명했습니다. 미국이란 나라는 오늘날 모든 국가의 표준이 되고 있어 당연해 보이지, 사실 이전의 왕정에서 이리로 오는 일은 정말 엄청난 노력과 피 흘림의 결과입니다. 로크와 같은 선각자들이 국가에 대한 성찰을 하면서 국가는 국민의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만일 국가가 이와 같은 역할을 못할 때 시민은 국가에 대해 저항할 권리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 생각은 미국의 독립전쟁의 기초가 됩니다. 영국이 우리의 국가인가에 대한 성찰은 과도한 세금과 착취 앞에 시민군의 궐기를 일으켰고, 정예 영국 군인에 맞서 용감히 목숨을 바치는 시민군의 모습은 이들을 측면 지원하던 프랑스 군인들에게 감동을 줍니다. 미국의 독립전쟁은 결국 유럽으로 튀어 프랑스 대혁명의 불씨가 됩니다. 독립선언을 하고 나서 미국이 오늘날의 미국이 되어오는 과정에 가장 큰 분수령은 노예제도를 놓고 첨에 하게 대립된 남북전쟁입니다.  링컨은 남북을 융합하여 마침내 미국을 발명합니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합니다. 발명의 아버지는 에디슨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전구를 발명하는데 수없는 시행착오를 일으켰고, 미침 내 전구를 발명했습니다. 그는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이라고 할 정도로 발명의 노고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알려주었습니다. 이러한 발명의 스토리는 발명은 생활 속에 불편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합니다.  발명을 평생에 한두 개를 하려고 하면 이것은 좋은 지침이 됩니다. 


그러나 만일 어떤 사람이 발명을 수백 개를 하고 싶다고 하면 이언 방식으로 가능할까요?   대량 발명을 위해서는 특수한 방법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융합 발명입니다. 

손정의 씨는 제일교포로 일본 최고의 거부가 된 사람입니다. 그는 아마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와 같은 이름에 함께할 사람이라고 보입니다.  그는 거부가 되고자 하는 꿈을 꿨습니다. 그래서 하루에 한 가지씩 발명을 하기로 했습니다. 일 년이면 365개를 발명하는 것이죠.. 그러나 그의 결심은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처음 며칠은 발명이 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발명을 해야 할 필요들을 찾는 일이 쉽지 않고 생각한 것은 이미 발명된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손정의 씨는 완전히 방법을 바꿉니다. 그느 카드를 여러 장 마련해서는 카드에 단어를 썼습니다. 그리고 카드를 섞은 다음 매일 카드 세장을 펼쳤습니다. 그러면 세 개의 단어가 나옵니다. 이 단어 세 개를 융합하여 발명을 하는 것입니다. 연필과 지우개와 칼이 나오면 연필 끝에 지우개를 달고 연필 덮개에 칼을 붙이는 그런 식입니다. 그는 이런 방식으로 사전을 단말기에 붙여 전자사전을 발명하고 이것을 팔아 첫 사업 자금을 마련합니다. 


창의 융합의 시대라고 합니다. 많은 분들이 융합은 그저 섞는 것이라 하지만 융합에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융합에서 세 가지 이상을 섞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이것은 자체로 복잡게가 되어 스스로 모순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융합의 목적에 따라 어떤 요소는 배재하는 선택의 기술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지난 이십여 년간 융합교육을 실천해 왔습니다. 막섞기는 최악의 교육입니다. 교육은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치지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안 가르쳐도 스스로 알 수 있게 하는 교육을 하면 융합을 할 여지가 생깁니다. 



# 넷째 코드 I,  혁신 (Innovation) 

링컨은 혁신을 위한 여정을 시작하는 순간 한 발의 총탄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혁신의 다음 타자들을 세워주는 한 알의 밀알이 됩니다. 혁신은 이렇게 죽음도 동반합니다. 혁신가는 죽음의 골짜기를 넘어가는 사람들입니다. 그 과정에 죽기도 하고 살아서 이름을 남기기도 합니다. 


차마고도라는 길이 있습니다. 비타민으로 생명을 살려주는 차와 고산지대에서 자란 말을 바꾸기 위해 만들어진 길입니다. 깎아지른 절벽에 간신히 말이 지나갈 길을 따라 마방들은 움직입니다. 문제는 계곡을 건너는 것입니다. 마방들은 계곡과 계곡 사이에 놓인 쇠줄에 말을 달아매고 넘어갑니다. 목숨을 거는 죽음의 계곡 건너기입니다.  이 두려움을 넘어서는 용기는 혁신가들의 필수요소입니다. 동시에 넘어설 방도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도록 필요한 지원을 하는 후원자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혁신의 삼요소입니다. 아이디어, 모험가, 후원자입니다.  대부분 아이디어는 이미 존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아이디어 앞에 놓인 죽음의 골짜기를 건널 용기 있는 모험가가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만으로는 안됩니다. 그 모험을 지원할 후원자가 필요합니다. 


지구가 둥글다는 아이디어는 그리스 시대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도로 가는 길이 아프리카의  희망봉을 지나서 가야 하는 것만이라는 생각을 떨쳐내고 대서양을 가로질러 갈 생각을 한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콜럼버스는 이 위험천만한 모험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그를 후원할 후원자를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포르투갈에 제안서를 냈지만 거절당합니다. 마침내 에스파냐의 여왕의 후원을 받고 그는 대서양을 항해합니다. 그는 인도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아메리카 대륙으로 가는 길을 유럽에 알려줍니다. 이 혁신의 최대 수혜자는 에스파냐의 여왕이었습니다. 혁신가는 혁신으로 명성을 얻지만 혁신가를 후원하여 성공할 경우 그 이익은 후원자들이 몫이 됩니다. 


혁신은 죽음의 골짜기를 넘어가는 기업가 정신을 요구합니다. 기업가 정신이란 말은 잘못 번역된 말입니다. 앙트로프러너(entrepreneur)는 틈새라는 뜻의 entre와 잡는 사람이란 뜻의 preneur의 합성어입니다. 한마디로 차마고도의 마방처럼 절벽과 절벽의 틈새를 잡아 연결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죽음의 골짜기를 넘어가는 새로운 길을 내는 사람들입니다.  선구자라고 해야 할까요?  


그러나 종종 우리는 혁신을 구조조정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가죽을 찢어내고 새 가죽을 돋게 하는 일,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하여 갱생하는 것을 의미하는 말로 혁신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작은 혁신을 넘어 진정한 혁신은 세상에 널려있는 수많은 골짜기를 연결하여 새길을 내는 것에 있습니다. 


# 다섯째 코드 I,  융합 (Itegration) 

링컨의 리더십은 융합의 리더십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자신을 반대하고 모욕하는 사람들 조차 세워서 함께 일했습니다. 그의 외모를 비아냥 거리고, 그가 족보 없는 독학자 출신이란 것을 모욕당해도 그는 이것을 감당하고 품었습니다. 그는 이런 말을 사실 어릴 적부터 무수히 들었기에 이런 상황에 어떻게 해야 할지를 많이 생각해 둔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그에게 수많은 일화가 탄생한 것입니다.  그가 얼마나 모욕에 분을 참지 못해 뜬 눈으로 밤을 새웠겠습니까? 그러나 그 긴 고민의 끝에는 상대방을 품어 그가 스스로 뉘우치게 만드는 것, 보는 이들이 링컨을 동정하고 더욱 강력히 지지하게 하는 가련 모드의 정치력이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링컨의 부인은 역사상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악처였습니다. 명에 욕에 가득한 부인은 백악관의 침실에서 링컨을 내쫓아 백악관 복도의 의자에서 대통령이 잠자게 만들기도 할 정도고, 말할 수 없는 모욕적 언사를 했지만 링컨은 이 모든 일을 묵묵히 견디었습니다. 그는 과연 인테그리티의 끝판왕입니다. 부인에게 맞는 미국 대통령은 참 아이러니합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그 부인을 존중하고 섬겼습니다. 


인테그리티는 사실 창조력을 갖춘 사람들이 간과하기 쉬운 요소입니다. 천재끼가 있다는 사람들의 경우  종종 괴팍하거나 자기 멋대로 하는 것으로 오해받기 십상입니다. 그것은 이들의 사고방식이 기존의 관념을 뛰어넘는 것이어서 관념의 벽을 견디지 못하는 과정에 상대방에 대한 조소나 짐짓 무시하는 태도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천재들이 박명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사회는 천재들을 칭찬하지만 동시에 조롱하고 제거하는 것이 일상입니다. 그렇게 잘났어? 얼마나 잘났는지 보자. 그런데 그것뿐이야? 역시 아니군.. 천재는 무슨 천재.. 이런 식으로 비웃습니다. 수많은 천재기가 잇는 사람들이 비참하게 사라진 것은 이런 까닭입니다. 우리는 사회가 천재를 용이하는 그런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주장일 뿐 실상은 시기와 질투의 대상일 뿐입니다. 


그래서 인테그리티는 창조력을 사회와 융합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그것은 창조의 본질이 창조를 위한 창조 혹은 남보다 잘남을 드러내기 위한 창조가 아니라 링컨이 지켰던 고매한 인격처럼 사회 속에 인정받고 협력하는  그런 태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창조 인성


혹자는 이런 표현을 씁니다. 창조 인성은 매우 중요한 덕목이고, 이것을 개발하는 것은 모든 창조력을 키우는 사람들이 잊어서는 안 되는 덕목입니다. 이것은 창조의 궁극적 가차에 대한 감각을 포함합니다. 이것이 인류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인류를 해치는 것인지에 대한 인식도 중요합니다. 이익이 생긴다고 마구 달려드는 것이 아니라 창조력을 꼭 필요한 곳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무술 유단자가 길거리에서 함부로 주먹을 휘두르면 안 되듯이 창조력의 유단자들은 함부로 아무 곳에서나 자신의 창조력을 발휘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창조 인성교육은 가장 낙후된 부분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젊음의 회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