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업과 일을 병행하는 유학생의 학기 중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일주일에 이틀 반 정도 일하고 그 외 평일 시간은 학교 수업으로 채워지는 것이 나의 학기 중 스케줄인데 여기에 더해 수업을 제대로 따라가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과제를 소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주말 중 하루는 꼭 컴퓨터공학과 과제를 위해 비워둔다. 또 철학과에서 읽어야 할 철학서들은 지하철에서, 침대에서, 카페에서 등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틈날 때마다 읽어 해치운다. 학기 중에는 공부시간과 여가시간의 구분이 정확히 없고 그냥 공부가 일상이 된다. 제2외국어로 공부하느라 더욱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도 크게 작용하고 말이다. 그래서 한 학기가 끝나고 방학이 시작되면, 물론 일은 계속해야 하지만 학교 공부로부터 잠시나마 해방되었다는 짜릿함이 크다. 내 유학생활의 꽃, 학생이라서 가장 좋은 점은 단연 방학이다.
1,2학기 때는 한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겸하고 있었으나 기나긴 코로나 록다운으로 인해 실제 일한 기간은 거의 방학기간과 겹쳐서 비교적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런데 3학기(한국으로 치면 2학년 1학기) 시작 직전에 한식당을 그만두고 소프트웨어 개발팀에서 일하게 되면서 학업과 일의 병행이 버거워졌다. 학교 공부도 쉽지 않은데 처음 해보는 백엔드 개발까지 배우려니,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모르는 것 투성이에 늘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내 모습에 크게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러나 정말 다행이었던 건 우리 팀에서 내 사수였던 닉이 늘 여유 있는 마인드를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나는 개발 경험도 없었고 코딩 천재도 아니었기에 배워야 할 게 아주 많다는 압박감이 컸고 우리 팀의 시스템은 알면 알수록 거대하고 복잡해서 자신감도 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닉은 '네 본분은 학업이니까 일이 학교 공부에 지장 주지 않도록 해'라든가 '업무 시간 이외에는 일과 관련된 것들 찾아보려고도 하지 말아'와 같은 조언을 해주었다. 이런 말이 후배를 위로하는 차원에서 던지는 빈말이 아니라 회사가 '일하는 대학생'에게 실제로 가지는 기대치라는 것이 시간이 지날수록 서서히 느껴졌다.(정식 풀타임 개발자에 비해 학생에게는 적은 보수를 주는 대신 학생이라는 신분을 고려해 주고 적은 기대치를 가진다고 할 수 있겠다.) 나는 혹시 내가 '열정'이 부족한 모습을 보이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다가도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여기는 한국이 아니야, 되새기면서.
학업 스트레스도 나름의 대처 요령을 찾았는데, 엉뚱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바로 수업 땡땡이치기다. 처음 두 학기 때까지만 해도 나는 수업을 빼먹으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출석체크를 하는 수업도 없는데 말이다. 그러나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가끔은 내려놔도 된다는 걸 깨달았다. 정말 바쁜 한 주를 보낸 탓에 수업 전까지 필수로 읽어야 할 텍스트를 반도 못 읽었을 때는 차라리 이 수업은 빠지는 게 나았다. 특히 철학과 수업의 경우 내가 관심 있는 내용이나 철학자가 아니면 굳이 수업을 듣지 않아도 학점 받는 데 크게 지장이 없다. 물론 개인적인 취향이나 역량에 상관없이 학교에서 제공하는 교육 서비스를 최대한 누리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고, 관심 없는 주제라도 일단 들어보면서 새로운 관점을 발견하는 등 의외의 계기를 통해 관심영역을 확장해 가면 더 좋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철학과에서는 학기를 마친 후 수업과 관련된 주제를 직접 선정해서 글(하우스아르바이트)을 쓰는 것이 기말 시험이기 때문에 꼭 모든 것을 완벽히 이해할 필요가 없다(그럴 수 없기도 하고). 학기말 과제에는 가진 지식을 모두 끌어 쓰려하기보다는 작은 주제를 깊게 파고드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독일 대학에서 출석 체크가 거의 없다는 것은 그만큼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자기 시간을 관리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점을 이용해 학기 초 첫날만 얼굴을 비치고 그 이후로는 단 한 번도 출석하지 않는 학생들이 많다. 강의를 들었건 독학을 했건 어찌 됐든 시험만 잘 치면 패스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강의와 세미나에 참석하지 않음으로써 잃는 경험과 지적 자극들은 그냥 장기적인 자기 손해인 것이다. 다양한 수업 종류 중에서 선배가 연습문제 풀이를 도와주는 형태의 '튜토리얼'이 있는데, 한 번은 아파서 튜토리얼을 빠지겠다고 강사인 선배에게 메일을 보냈더니 '쾌유를 바라. 하지만 결석한다고 굳이 안 알려줘도 돼'라는 답장이 돌아온 적도 있다. 또 한국에 가느라 2주간 학교를 빼먹어야 했던 얼마 전의 경우, 이런 사정이 있어 2주 세미나를 빠져야 하는데, 제출해야 하는 대체 과제가 있으면 알려달라고 교수님에게 메일을 보냈더니 이 메일은 아예 무시당했다. 여러모로 우리 학교에서는 출석 관리 자체를 지나친 마이크로매니지먼트 또는 일일이 관리하려면 페이퍼워크만 많아지고 소득은 별로 없는 탁상행정 정도로 여기는 것 같다.
독일의 대학생은 풀타임으로 일할 수 없기 때문에 학생 신분인 동안 내 월 수입은 간신히 생활비 충당할 수준을 넘어설 수 없다. 통장 잔고를 보면 빨리 졸업해서 돈 벌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세 번째 여름방학을 보내며 생각이 또 바뀌었다. 7월 말부터 10월 중순까지 여름방학 동안 나는 일주일에 3일 일하고 4일을 쉬었는데, 평일 낮에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고, 집 앞 마트가 아니라 좀 멀리 떨어진 시장까지 나가 장도 보고, 미술관에서 주말보다 훨씬 쾌적하게 전시를 감상하는 이런 일상이 너무나 소중하게 다가왔다. 남은 학점을 채우기 위해 수업을 왕창 몰아서 들으면 졸업이 빨라지겠지만 풀타임 직장인의 일상을 그렇게 빨리 가지고 싶은지 모르겠다. 반면 학기당 수업을 적게 들으면서 학점을 천천히 따면 학기 중에도 평일에 자유시간이 많아지고 또 졸업 전까지 방학도 더 가질 수 있다. 누가 들으면 정말 비효율적인 개똥논리라고 비웃을 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한국에서는 학생에게는 열공이, 직장인에게는 열일이 인생 최우선 과제로 주어진다. 칼퇴나 휴가는 열일이라는 미덕을 훼손하는 괘씸한 행동이고 휴직이나 퇴사, 잦은 이직 역시 열일하는 삶의 모드에 어긋나는 바람직하지 못한 선택이다. 특히 '열심히'라는 말 뒤에는 '잘'이라는 속뜻까지 들어있다.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이유로 어린아이들을 영어유치원에 보내고 선행학습을 시키는 학원에 뺑뺑이 돌리는 이런 관행이 사회 전체가 범하는 아동학대에 가깝지 않은지 심각하게 반성해보아야 한다. 영어를 잘하면, 성적이 조금이라도 오르면 아이의 미래에 나쁠 것이 없으니까, 하는 논리로 자녀를 어린 나이에 경쟁사회에 입문시키는 어른들은 미래는 둘째치고 당장 아이들의 현재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 이런 학원에서는 반드시 아이에게 뭐가 부족하다느니 어느 부분이 뒤쳐진다느니 하는 평가 시스템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부족한 부분을 메꾸기 위해 부모는 또 다른 학원이나 과외를 찾는 식으로, 성과가 나타날 때까지 아이를 못살게 구는데 이런 괴롭힘이 부모의 경제력을 입증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고 아이를 위한 ‘서포트’라고 불리기도 하는 걸 보면 암담하다. 이렇게 배움과 성과 창출이라는 과제를 풀타임 잡 수준으로 떠안은 채 자란 아이는 커서 여가시간에 뭘 해야 할지도 모르고, 일을 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에서는 아무 의미도 찾을 수 없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독일 사람들은 우선 학창 시절에 방과 후 학원에 다니지 않았다는 점에서 일과 중 긴 자유시간을 보내는 나름의 방법을 일찍이 발견하는 것 같다. 물론 요즘엔 국적과 세대를 불문하고 스마트폰이나 넷플릭스로 별 의미 없이 휴식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많지만, 일상에서 얼마만큼의 자유시간이 있어야 한다는 기준이 독일에서는 우리나라보다 높다. 게다가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많은 나라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 때부터 휴가와 여행을 연중 중요한 이벤트로 여겨온 문화가 있어 일과 휴식을 대하는 자세가 한국인과 사뭇 다르다. 반도인 우리나라와 달리 국경이 거의 트여있는 유럽 대륙의 특성상 외국으로 여행 가기가 쉽다는 사실도 있지만, 여행에서 얻고자 하는 목적과 여행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 보인다. 유럽인들은 여행에서 '최대한 많은 걸 봐야지'하고 달려들기보다는 일상에서 벗어났다는 그 상태 자체를 즐기는 내공이 있는 것 같다. 또 커피를 마시며, 식사를 하며 가족 또는 친구와 긴긴 대화를 나누는 것이 여행의 주요 일정인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독일인들은 말이 정말 많다.)
5박 7일 동유럽 여행 패키지로 3개국을 돌아다니는 한국식 여행은 독일인 혹은 유럽인들에게 극기훈련에 가까워 보일 것 같다. 여행이라는 행위가 왜 '한번 유럽까지 비행기 타고 간 김에 여러 나라를 둘러보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논리를 좇아야 하는 걸까. 하루의 대부분을 관광버스에서 보내며 도착한 관광지에서 두세 시간의 자유시간을 얻는 패키지 관광 상품을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이나 이해할 수가 없다. 도시 한 두 군데에서 깊이 있는 가이드 해설을 들으며 많은 자유시간을 가지고, 또 그 동네 로컬들은 어떻게 사는지 구경할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여행이 체력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더 나을 것 같은데 말이다. 이런 면을 보면서 나는 한국인들이 어떤 결과를 위해 긴 시간을 감내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결과물이 성과든 성적이든 '내가 가본 해외 여행지 리스트'이든.
인내심과 강한 멘탈은 어떤 위기 상황에는 꼭 필요한 덕목이지만, 인생 전체를 되돌아봤을 때 '뭐만 보고 달려왔더니 지금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을 가지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여가시간에조차 이런 인내심을 발휘해 효율성을 달성하려 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면 지금과 현재라는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시간이 미래의 결과물을 위한 비료처럼 갈아 넣어진다는 사실을 다들 외면하는 듯하다. 결과적으로 모두가 모든 영역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니 직장에서든 학교에서든 웬만큼 열심히 해서는 티도 안 나고, 그래서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악순환이 반복된다.
혼자 또 함께인 주말의 공원 풍경
공원에서 춤추는 할머니들
또 독일에서는 아파서 출근할 수 없을 때 메신저에 메시지 하나만 남기면 되는데(독일의 직장인은 보통 최대 3일까지 진단서 없이 병가를 쓸 수 있다), 아무도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캐묻지 않고 그러려니 하는 문화도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한국의 직장인들은 어떻게 그렇게 아프지도 않고 꼬박꼬박 출근할까 놀라울 정도다. 사실은 '출근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안 좋은 상태'의 기준이 다른 것이다. 독일 문화에서는 아픈 몸을 이끌고 일터에 나타난 사람은 바보다. 아플 때 쉬는 것은 자기 몸을 보호할 권리이자 의무이기 때문이다. 특히 직장에서는 어떤 과제를 수행해냈는지의 여부를 사후에 따질 뿐, 충성이나 애사심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니 열일과 같은 표현을 덕담처럼 쓰는 일도 없다.
내가 지금 누리는 시간의 사치는 단지 이곳이 독일이라서가 아니라 내가 독일의 대학생이라서 얻는 것이다. 사실 우리 팀원들과 얘기해 보니 워라밸에 큰 불만은 없어 보였지만 자유시간이 많고 성과 압박이 적었던 대학교 시절이 그립다고들 한다. 언젠가는 졸업을 해야 하니, 지금과 같은 일상이 독일이라고 해서 영원히 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졸업 후 취업을 하더라도 업무시간이 유연한 환경에서 일에 잠식되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 그게 가능해지기 전까지는 덜컥 노동시장에 나를 내놓고 싶지 않다.
나는 열일하고 싶지 않고, 열심히 살고 싶지 않다. '열심히'라는 단어가 보장해 주는(척하는) 화려한 커리어나 돈과 명예보다는 자유시간이 소중하고 평일 오후의 햇살이 주말의 그것보다 더 달콤하기 때문이다. 그 대가로 긴 시간 가난하게 살 전망이다. 그냥 이렇게 적당히 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