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은 예술에 관대하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다양한 형태로 향유된다는 점이 특별하다.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이자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현재 상주 음악가로 활동하고 있는 베를린 필하모니를 중심으로 꽃피는 클래식음악 씬은 베를린의 여러 얼굴 중 하나일 뿐이다. 테크노 음악의 세계 수도라고 불릴 만큼 테크노 클럽이 많고 전자음악 DJ들의 활동무대가 널려있으며, 취미가 DJ인 사람은 베를린 길거리에 차고 널렸다. 그중에서도 이번 글에서는 세계적 명성을 얻지 못한, 혹은 얻기 전의 단계에 있는 음악 수공업자들의 모습을 소개하고 싶다.
왼쪽: 소프라노와 마리오네뜨 인형, 오른쪽: 라이브 재즈바 Donau 115
베를린 노이쾰른의 재즈바 Donau 115에서는 주말마다 라이브 재즈 공연이 열리는데, 소름 돋을 정도로 멋진 인디 밴드들의 음악을 코앞에서 만나 볼 수 있다. 음악도 정말 좋지만 나는 이곳의 쿨하고 릴랙스한 분위기를 좋아한다. 무대와 객석 사이에는 높이 차이가 없고 입장료도 따로 없다. 공연이 시작되고 시간이 조금 지나면 바텐더가 관객들 중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호리병 하나를 주는데, 그러면 관객들이 각자 양심껏 혹은 능력껏 관람료를 병에다 넣고 옆사람에게 전달하는 식으로 공연 비용이 마련된다. 유럽 대도시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이런 모습, 귀엽기까지 하다. 핵심은 이렇게 입장 통제가 허술한 것 치고는 공연의 질이 아주 높다는 점이다.
어느 작은 공연장에 탱고 콘서트를 보러 갔을 때도 베를린이라서 가능할 법한 일이 있었다. 나와 친구들은 공연장 건물에 들어가 콘서트홀을 찾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건물의 한쪽은 카페였고 위층은 전시관으로, 탱고 콘서트가 어디서 열리는지를 안내해 주는 표시나 안내문구 하나 없었다. 대형 콘서트장이 아닌 만큼 박스오피스 같은 것도 따로 없었고 말이다. 그런데 복도 한편에 테이블과 작은 금고가 놓여있는 것이 보였다. 잠시 후 누군가가 어느 문을 통해 나와 우리를 맞이했다. 그는 공연의 주인공, 탱고 가수 본인이었다. 우리가 인터넷으로 표를 예매한 것을 확인하고 그는 우리를 안으로 들여보내 주었다. 아마도 금고는 현장에서 표를 사려는 사람들을 위해 준비된 것 같았고, 현장 티켓 판매를 맡아 줄 사람을 고용할 여건이 안 되어 가수가 직접 1인 다역으로 콘서트를 꾸린 것 같았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 꼭 자본이나 큰 에이전시가 없더라도 어떻게든 관객을 만날 수 있는 통로를 찾을 수 있는 여건이 음악의 다양성을 지키는데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탱고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BTS나 테일러 스위프트의 음악을 듣는 사람의 수보다 훨씬 적을 것이다. 그럼에도 소규모 소자본으로 음악가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 있다는 사실은 베를린이 가지고 있는 다이내믹한 에너지의 중요한 원천이 된다. 이곳에선 비주류와 주류의 경계가 불분명하다. 주류를 향한 대중의 열광도 우리나라만큼 절대적이지 않고, 주류가 되고자 하는 비주류의 열망도 그리 처절하지 않아 보인다. 꼭 주류, 세계일류가 되지 않더라도 나름의 존엄을 가지며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베를린의 버스커들이 만들어내는 일상 속의 예술 체험이다. 꽤 오래전, 바이올린을 전공하는 베를리너와 데이트를 한 적이 있다. (마지막 만남이 된) 두 번째 데이트에서 그는 자신의 버스킹 현장에서 만날 것을 제안했다. 어느 여름 오후, 베를린의 북적이는 한 번화가에서 그는 뛰어난 바이올린 실력으로 클래식 곡들을 연주했고, 나는 그의 맞은편 바닥에 앉아 그를 지켜보았다. 지나가던 회사원, 관광객, 학생, 어르신 등 다양한 얼굴의 사람들이 그의 음악에 호응해 그의 발치에 놓인 바이올린 케이스에 작은 성의 표시를 했다. 중간중간에 동영상을 촬영하거나 호기심을 가지고 그에게 말을 거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 시간 조금 넘는 시간이 흘렀고 마침내 연주를 마친 그는 나와 함께 근처 펍으로 가서 맥주와 작은 요리를 시켰다. 마지막에 바이올린 케이스에서 그날 번 동전 더미 가운데 한 줌을 꺼내 계산하던 그의 모습이 나는 너무 재미있었다. 그는 실로 짧은 시간에 꽤 많은 돈을 벌었다. 나는 그때 베를린의 길거리 음악이 갖는 위상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곳에서 길거리 음악이란 누군가의 노고의 산물이자, 의외의 장소에서 의외의 순간에 듣는 이에게 감동을 전해주는 예술 한 조각으로 귀하게 여겨진다는 인상을 받았다.
버스킹은 길거리뿐만 아니라 공원이나 전철 안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데, 장르도 다양하고 연주자들의 연령대도 다양하다. 버스킹 연주자 하면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기타를 맨 젊은 사람들을 떠올리겠지만 베를린에서는 그런 고정관념이 생길 틈이 없다. 종이컵을 모금함 삼아 손에 쥔 채로 지하철에 올라타자마자 무반주로 대뜸 노래를 시작하는 중년 여성도 있고, 돈벌이보다는 숙제를 하는 모양으로 공원에서 합주를 하는 10대 현악단도 있고, 작은 재즈 밴드를 만나는 경우도 있으며, 기타나 바이올린 뿐만아니라 아코디언, 하모니카등등 악기도 다양하다. 별다를 것 없는 도시의 풍경이 누군가가 연주하는 생음악 덕분에 색다르게 보이는 것은 정말 멋진 경험이다.
한편, 앞서 소개한 데이트남의 경우는 생계를 위해 거리로 몰린 경우가 아닌 데다 젊고 멀끔해 보이니 사람들이 말도 걸어주는 등 신상이 좋은 편이다. 그러나 가끔은 왠지 모를 절박함이 느껴지는 거리의 음악가들이 있다. 베를린에서 이민자가 많은 동네 중 하나인 헤어만 광장 근처에 산 적이 있는데 이곳에서 종종 보이던 할머니가 그랬다. 이 광장은 큰 사거리 가운데 마련된 공간으로, 시장이 들어서기도 하고 반대쪽엔 맞은편엔 백화점이 있어 늘 사람들로 북적인다. 또 광장 사면을 차도가 에워싸고 있어 시끄럽고 교통이 혼잡해서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은 '어서 여기를 벗어나야겠다'는 표정으로 걸어간다는 인상을 받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난리통 속에 바이올린 선율이 울려 퍼진다면?
당시 헤어만 광장에 가면 조그마한 체구의 이민자 출신으로 보이는 할머니가 머리에 보자기를 둘러쓰고 자기만큼 나이 들어 보이는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있었다. 아무래도 체력 문제인지 할머니는 어느 건물 앞계단에 걸터 앉은 채로 바이올린을 연주했고 내가 지나갈 때마다 곡은 ‘베사메무쵸’였다.어떤 사연으로 이곳에서 음악을 하고 있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더 나은 일자리를 찾아, 학업을 위해, 혹은 내전을 피해 고국을 뒤로하고 베를린에 온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은 어느 자그마한 노년 음악가의 연주에 귀 기울일 마음의 여유가 없어 보였다.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할머니가 연주하는 베사메무쵸의 멜로디는 구슬프면서 비현실적이기까지 했다.
이렇게 예술이 가진 색깔의 스펙트럼이끝없이 펼쳐지는 곳이 베를린이다.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는 버스커들을 보면 나는 얼마 안 되더라도 꼭 팁을 주려고 한다. 이런 음악은 우리 동네, 내 출퇴근길과 일상 동선에서 더 자주 듣고 싶으니 다시 와주십사 하는 의미가 전달되길 바라며. 지금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언젠가 베를린을 여행한다면 도시 곳곳에 숨은 음악의 정취를 꼭 찾아보시기를 바란다. 그리고 정말 멋진 뮤지션이 있다면 그가 더 힘내서 더 오랫동안 음악할 수 있도록 작은 팁도 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