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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포포 매거진 Mar 06. 2024

애매한 인간

프랑스 방구석 통신


나는 애매한 인간이다. 여러가지 애매한 면들이 있지만, 오늘은 나의 애매한 재능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나는 자신의 작업을 적극적으로 알릴 줄 알고 다소간의 재능이 필수인 예술 분야에서 밥벌이를 하고 싶었다. 몇 년간 그 분야에서 일하며 밥을 잘 벌어먹으려면 1)대단한 재능+변변찮은 사회능력 2)적당한 재능+대단한 사회능력이 필요하다고 느꼈는데, 나는 이 두가지에서 벗어난 애매한 인간, 적당한 재능+변변찮은 사회능력을 지닌 사람이었다. 나의 창작물은 어디서든 작게나마 인정을 받았다. 그러니까 교수님이 시나리오나 논문을 인정해준다던지, 학교에서 열리는 영화제에 뽑혔다던지, 일기라고 썼는데 잘 썼으니 책으로 써보라는 이야기를 들어보곤 했다. 그런데 거기까지였다. 



범위를 넓혀 더 큰 영화제에 출품을 하거나, 공모전에 도전하면 잘 된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내 창작물들을 여기저기 알리려고 노력했냐. 그것도 아니다. 게으르고 겁 많은 나는 서너개의 공모만 해보고 이내 포기했고, 아는 감독님이나 PD님에게 시나리오를 건네는 일은 얼굴이 뜨거워서 하지 못했다. 내 재능과 사회능력은 딱 동네에서 놀기 좋은 애매한 상태였다. 동네에서 놀기 좋은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동네에서 놀아도 재미있게 놀면 그만이니 말이다. 다만 그렇게 애매하면 이 분야에서 밥벌이가 어렵다는 점이 문제였다. 프리랜서라는 직업 특성상 자신을 알리고, 계속해서 프로젝트를 만드는 부지런함과 강단이 있어야했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애매한 나를 확실한 나로 만들어보겠다고 발버둥 치다가 육아를 핑계로 집구석 아줌마가 된지 몇 년. 우연히 같은 학교를 다녔던 후배의 기사를 읽었다. 많지 않은 여성 감독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영화도 호평을 받고 있었다. 졸업하고 거의 십년만에 사람들이 돈을 내고 보는 영화를 만들고 호평을 받은건데, 거기에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있었을지 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상상했다. 이 친구처럼 했다면 어땠을까. 그러니까, 결혼 하지 않고, 아이도 낳지 않고 계속 일을 파고들었다면? 가난하고 구질구질해도, 나를 알리는 일이 미치도록 부끄러워도 견디고 견뎌서 계속했다면? 나의 애매한 재능도 확실한 재능이 되었을까? 적어도 지금과 같은 패배감은 느끼지 않았을까?


그러다가 생각을 접었다.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미 나는 나의 선택을 했고, 선택에 따른 길을 가고 있다. 지금에 와서 결혼을 무르고 아이들을 떠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나는 신이 존재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세상과 만물을 움직이게 하는 어떤 힘은 있지 않나 생각할 때가 있다. 그것은 운명과는 또 다른 것이다. 여하튼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는 말. 나는 그 말을 조금 믿는다. 나는 어쩌면 신문이나 잡지에 나올 인물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어쩌면 포포포 뉴스레터에 열심히 글을 쓸 인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감독이 안 된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모르지. 나이 오십에 뭘 하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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