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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다영 Oct 05. 2022

어색함 따위


  몇 달 전의 일이다. 나와 회사 동료와 상사 한 명이 엘리베이터에 함께 타게 되었다. 그 상사는 나와 다른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이로, 일주일에 한두 번 사무실이나 복도에서 간간이 마주칠 뿐 사적으로 대화를 나눠본 적은 없는 사람이다. 몇 년간 한 회사에 다니며 얼굴을 보고 지냈으니 회사 밖에서 만나도 알아볼 수야 있겠지만, 굳이 다가가서 알은척을 하지는 않을 것 같은 사이다. 그날도 엘리베이터 안에서 서로 가벼운 인사를 주고받았을 뿐 별다른 일은 없었다, 고 나는 기억했다.

  

  얼마 전 그날 엘리베이터에 함께 탔던 동료와 저녁을 먹는 중이었다. 동료는 내게 어쩜 상사가 말하는데 한마디도 안 하느냐고 물었다. 그날 상사가 나인지 그 동료에게인지 둘 다에게인지 아니면 혼잣말인지 모를 어떤 말을 했다고 한다. 마침 동료는 휴대폰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중이었고 내가 답을 하겠거니 싶어 마음을 놓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한참을 기다려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기에 나를 보았더니 그저 멍하게 엘리베이터의 층수 표시만을 보고 있더란다. 동료는 아차 싶어 무슨 말이라도 하려 했는데, 이미 그럴 타이밍을 놓쳤다는 것을 깨닫고 그만두었다고 한다. 엘리베이터가 일 층에 도착하기까지 얼마나 어색했는지 모른다며 동료는 웃었다.

  그날 상사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업무와 관련된 이야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도 나는 상사의 말을 듣기는 했을 것이다. 다만 그 말에 딱히 내 대답이 필요하지는 않겠다고 판단하고는 곧바로 머릿속에서 밀어냈을 것이다.


  회사에서 나는 대체로 무심하고 냉랭한 사람으로 지낸다. 맡은 일은 몸이 축나기 직전까지 착실히 하지만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말이나 행동은 하지 않으려고 주의한다. 상대에게 충고나 훈계 등 싫은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서 애초에 그런 말을 할 여지를 주지 않으려고 더 성심껏 일한다. 업무 중에 상사나 동료가 쓸데없는 한담을 꺼내기 시작하면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고, 점심시간에도 늘 도시락을 싸와서 혼자 먹는다. 특별한 때가 아니면 전체 회식도 하지 않기 때문에 업무 외적으로는 동료들과 교류할 일이 극히 드문 편이다. 회사에서 나는 그저 제 몫을 하는 사람으로 보이길 원한다. 딱히 착하거나 순하거나 선하거나 친절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고 해서 근무 시간 내내 모두의 말을 무시하며 아무 표정 없이 앉아만 있는 건 아니다. 내가 원하는 나의 이미지를 정립했다고 해도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원하지 않는 말이나 행동을 해야 할 때가 있다. 나의 지위는 여러모로 한참 아래에 있으므로 별수 없는 일이다. 어떤 날은 적어도 웃기지 않은 일에 웃지는 말아야지 자존심을 부려보지만, 보통은 한 시간 내에 실패로 돌아간다. 어색한 상황에서 웃지 않고 버티기란 왜 이렇게 어려운지. 웃음이라기보다는 웃는 얼굴 흉내에 가까운 표정과 ‘하항’ 혹은 ‘허항’하는 모자란 소리가 자동으로 나온다. 그런 순간에 느껴지는 무력감이나 굴욕감은 사실 어색함보다 훨씬 더 불편한 감정이다.


  예전에는 어른이 말하면 관심 없는 이야기여도 꾹 참고 가만히 들었다. 되도록 참하고 다정한 사람으로 보이기를 바라며 할 말을 골랐고, 마땅히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으면 실없이 웃기라도 했다. 긴 침묵으로 인해 어색해지는 상황이 싫어서 아무 말이나 했고, 상대의 말에 동의하지도 않으면서 맞장구를 치거나, 하나도 재미없지만 상대가 웃으니 따라 웃기도 했다. 둘 사이에 흐르는 어색한 기류를 견디지 못해 상대의 부탁을 쉽게 거절하지 못했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맡아하기도 했다. 삼십 대 초반까지는 그런대로 잘 넘겨왔던 것 같은데 나이를 먹을수록 그런 일들이 점점 어려워진다, 기 보다는 하기가 싫다.


  어떤 사람들에게 나는 그냥 불편하고 어려운 사람인 채로 살고 싶다. 상대를 염려하거나 관계를 고려하거나 이후의 일들을 걱정하면서 마음에도 없는 말과 행동을 하고 억지로 웃고 싶지 않다. 대답할 말이 없거나 대꾸하기 싫을 때는 입을 닫은 채로 있고 싶다.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하는 사람에게 그런 건 묻지 말아 달라고 말하고 싶다. 상대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때는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고, 부탁을 들어주기 싫을 때는 그건 어렵겠다고 말하고 싶다. 웃기지 않을 때는 조금도 웃고 싶지 않다.     

  어색함 따위, 그게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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