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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다영 Dec 02. 2022

눈 뒤에 남은 사람


  엄마에게 얻어 온 사골국을 데워 점심으로 먹었다.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하고 엄마가 송송 썰어 비닐 팩에 담아준 파도 넣었다. 김치를 꺼내 먹기 좋게 자르고 김을 몇 장 꺼내 접시에 담았다. 국물을 한 숟가락 먹어보고 밥을 전부 덜어 국에 말았다. 사골국에 김을 한 장씩 적셔서 밥과 함께 한 큰술씩 떠먹었다. 어릴 때부터 국에 밥을 말아 먹는 걸 좋아했다. 지금도 곰탕이나 설렁탕, 갈비탕을 먹을 때면 국물에 밥을 만다.

  사골국에 김을 적셔서 밥과 함께 먹는 건 아빠를 보고 배웠다. 아빠도 국에 밥을 말아 먹는 걸 좋아했다. 아빠가 살아 있을 때, 그러니까 네 식구가 아직 한집에 살았던 시절에 엄마는 몸이 약한 아빠를 위해 자주 사골을 고았다. 날이 추워지면 사골국이 담긴 커다란 은색 솥이 늘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져 있었다. 아빠는 밥을 천천히 먹는 사람이었다. 저녁에는 늘 반주를 곁들였기에 식사 시간이 더 길어지곤 했다. 식구들이 밥을 다 먹고 자리를 뜬 후에도 아빠는 한참을 더 혼자 남아 소주를 마셨다.


  이제는 나도 아빠처럼 이따금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신다. 천천히 술을 마시다 취기가 오르면 문득 사람이 그리워지곤 한다. 괜히 외로워져서 누군가에게 뭐라도 이야기하고 싶어지는 날이 있다. 그럴 때면 식탁 앞에 혼자 앉아있던 아빠의 뒷모습이, 하얀색 러닝셔츠 위로 까맣게 탄 아빠의 목덜미가 떠오른다. 함께 밥을 먹던 식구들이 모두 각자의 방으로 흩어지고 나면 아빠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에도 나는 자주 술을 마셨던 것 같은데 왜 그때는 그 앞에 앉아 술 한 잔 따라줄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지금이라면 함께 술을 마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랬더라면 더 많은 기억을 가질 수 있었을 텐데.

 

  내가 스물여덟 살이 되던 해에 아빠는 쉰넷의 나이로 돌아가셨다. 아빠는 병상에 누워 온 가족이 둘러싼 가운데 죽음을 맞았다. 환하고 조용한 병실 안의 죽음은 묵직하고 슬프고 고단하고 어수선했다. 한 사람의 삶과 죽음을 가르는 찰나는 분명하지 않았다. 그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아는 데는 어떠한 표식도 필요하지 않았지만, 그가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뭔가가 더 필요할 것 같았다. 더 이상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 그의 얼굴을 보면서도, 장례를 치르는 동안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나는 아빠가 죽었다는 사실이 좀처럼 이해되지 않았다. 그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잠깐 어디에 갔다고 여기는 편이 더 쉬웠다. 아빠의 몸이었던 것들이 다 타고 몇 개의 뼈만 남았을 때도, 그 뼈를 부수고 갈아 넣은 유골함을 두 손으로 들었을 때도 나는 그게 아빠라고 믿어지지 않았다.


  아빠가 돌아가신 지 십삼 년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아빠가 없다고 느끼지 못한다. 살아있는 엄마와는 떨어져 산 기간과 그 부재를 선명하게 느끼면서도 세상에 있지도 않은 아빠와는 이상하게 떨어져 있다는 실감이 들지 않는다. 어쩌면 육신이라는 것은 한 사람이 실재하는 장소를 한정하는지도 모르겠다. 육신을 잃은 아빠는 오히려 이전보다 더 내 생에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그의 삶은 전부 과거형이 되었고 내가 가진 그의 이미지는 이미 완성되었다. 그의 웃는 얼굴과 무표정한 얼굴, 낮고 얇고 조용한 목소리, 늘어난 러닝셔츠와 굽이 닳은 구두, 술을 많이 마신 날 입에서 나던 비린내와 옷에서 나던 담배 냄새, 늘 조금 앞에서 걸어가던 뒷모습, 그 걸음걸이. 그는 내게 더는 새로 쓰일 수도 변할 수도 없는 사람으로 남았다. 어쩌면 내가 살아 있는 한 아빠는 완전하게 죽을 수 없을 것이다. 삶에는 끝이 있지만, 죽음에는 끝이 없다.

    

  한 사람이 완전하게 죽기 위해서는 몇 사람의 죽음이 더 필요할까. 나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면 그 일을 겪어야 할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숨이 다 빠져나간 나의 얼굴을 보게 될 사람들. 정지된 나의 육신을 보거나 만지게 될 사람들. 나의 시신을 수습하고 장례를 치르고 부고를 전하게 될 이들. 모든 절차를 다 끝내고 비로소 다시는 나를 볼 수 없다는 사실에 당혹감을 느낄 이들. 그들은 내가 사랑하고 또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일은 그 사람을 가장 슬프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소중한 이들에게 내가 마지막으로 남길 수 있는 것은 비통하게도 슬픔뿐이다. 나는 그 슬픔을 달래거나 안아줄 수 없는 채로 그들에게 남을 것이다. 내가 쥐어 줄 슬픔을 미루고 미루기 위해 나는 부단히 애쓸 테지만, 그럼에도 기어이 나는 죽을 것이다.

  부디 나의 죽음이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죽음이기를 소망한다. 나보다 오래 살아 나의 죽음을 감당해야 할 사람들이 너무 놀라지 않도록 그 일이 충분히 예고되기를 바란다. 그들이 겪어야 할 슬픔과 절망과 무력감이 너무 크거나 길지 않도록. 나의 죽음이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거나 해결해야 할 사건이 아니길 바란다.


  한 사람의 죽음 후에는 그 죽음을 받아들이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생이 이어진다. 아빠의 죽음 앞에 서 있던 나와 엄마와 동생과 아빠의 형제들과 의사와 간호사들은 저마다의 눈으로 한 사람의 죽음을 보았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모여도 죽음은 나눠 가질 수 없다. 우리는 각기 다른 감정과 기간과 방식으로 한 사람의 죽음을 겪는다. 어떤 이들에게 그 죽음은 평생에 걸쳐 치러야 하는 이별이다. 그치지 않는 울음을 가슴에 담고 사는 일이다. 애당초 죽음이란 그런 것일지 모른다. 눈앞에서 사라진 한 사람이 눈 뒤에 남는 일.



 ※ 이 글은 2W매거진 30호 <죽음을 기억하라>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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