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에서의 하이라이트는 베이스캠프에서 보낸 시간이었다. 도착하자마자 시원한 물과 함께 민트 티를 먹을 수 있었다. 민트 티는 모로코에서 유명한 차인데, 한국에서 먹는 민트 티와는 약간 다르다. 훨씬 달고 진한 맛이었다. 더운 사막에서 뜨거운 민트 티를 마시니까 몸에 있는 피로가 다 밀려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핫산과 사이드는 간식으로 과자를 갖다 준 후에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밥을 먹기 전까지 시간이 남아서 핫산, 사이드, 나, Y, S는 함께 우노 게임을 했다. Y가 가져온 우노 카드가 이렇게 유용하게 쓰일 줄은 몰랐다. 게임 룰이 생각보다 간단해서 바로 시작할 수 있었다. 나는 다행히 꼴찌를 면했다. 사이드가 게임을 잘해서 놀랐다. 꼴찌는 핫산이었다. 게임이 끝나니 완전히 밤이 되었고, 저녁이 완성되었다. 저녁 메뉴는 총 3가지였는데 따진, 모로칸 샐러드, 라면이었다. 따진은 가지와 고기가 들어간 찜 같은 음식이고 모로칸 샐러드는 모로코식의 샐러드인데 밥알 같은 것이 들어있었다. 두 음식 다 내 입맛에 맞았다. 라면을 가장 마지막에 들고 나왔는데, 사이드는 무슨 음식일지 맞춰보라고 뜸을 엄청 들였다.
“라면!”
모로코에서 라면을 대접받게 될 줄은 몰랐다. 우리가 먹는 라면보다는 덜 맵고 계란이 많이 들어가 약간 라면 죽 같은 느낌이었다.
밥을 먹고 난 후에 핫산과 사이드의 미니 콘서트가 진행됐다. 갑자기 여기저기에 초를 두고 불을 붙이더니 신기한 악기들을 가지고 나왔다. 그중에서 내가 아는 악기는 젬베뿐이었다. 핫산과 사이드는 악기들을 가지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영어시간에 배웠던 챈트 같았다. 처음에는 아랍어로 노래를 부르는 듯했는데 갑자기 낮에 등장했던 ‘아프리카 미쳤어.’와 ‘낙타 똥 맛있어.’가 재등장했다. 다섯 명이서 젬베 리듬에 맞춰 ‘아프리카 미쳤어.’와 ‘낙타 똥 맛있어.’를 반복하는 진귀한 풍경이 펼쳐졌다. 핫산과 사이드의 다음 곡은 ‘강남 스타일’과 ‘아리랑’이었다. 솔직히 이 두 곡은 셀럽들에게 한국에 대해 물어볼 때 항상 언급되는 ‘두 유 노’ 리스트에 들어있을 만큼 유명하기 때문에 그들이 이 노래를 아는 것은 크게 놀랍지 않았다. 충격적이었던 것은 ‘픽 미’를 안다는 사실이었다. ‘오빤 강남 스타일’에서 자연스럽게 ‘픽미픽미픽미업’으로 전환되는 지점이 충격적이었다. ‘픽 미’를 전 세계에 퍼트리고 다니는 한국인 여행자들이 진정한 케이팝 열풍의 주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픽 미’를 듣고 나니 핫산과 사이드에게 다른 한국 음악을 들려주고 싶어서 내 플레이리스트를 뒤지다가 실수로 CCM를 틀었다. 이슬람 문화권에서 3초가량 나는 본의 아니게 그들을 대상으로 문화 전도를 하고 말았다. 분위기가 뻘쭘해질 뻔했을 때, Y가 EXID의 ‘위아래’를 틀어서 ‘픽 미’의 분위기를 다시 이어갔다. 핫산과 사이드의 아프리칸 뮤직 쇼가 마무리된 후, 핫산과 사이드는 연주하던 악기들을 우리도 만져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생각보다 맑게 젬베 소리를 내는 것이 어려웠다. 손바닥과 손목이 가까운 부분으로 젬베를 쳐야 하는데 생각보다 조준이 쉽지 않았다. S는 생각보다 젬베를 잘 쳤다. 몇 번 쳐본 솜씨였다. 나는 젬베 대신 젬베 옆에 있는 리코더 같은 피리를 가지고 놀았다. 악기를 가지고 한참 놀고 나서 하늘을 보니 하늘에 별이 쏟아질 것처럼 많이 박혀있었다.
나와 Y, S는 별을 제대로 보려고 각자 매트리스 같은 곳에 누워 별을 한참 구경했다. 지구과학 시간에 왜 천구를 그려서 별을 공부하는지 단번에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주변에 건물이 아무것도 없고 허허벌판이다 보니 지평선 끝까지 별이 꽉 차있었다. 하늘이 둥글게 보이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사막에는 화장실이 없어서 베이스캠프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볼일을 보고 와야 했다. 베이스캠프와 멀리 떨어진 곳은 그만큼 빛이 없어서 정말 아름다웠다. 똥을 싸며 별을 감상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아무리 유성우 축제가 열리는 밤이라고 뉴스에서 떠들어도 볼 수 없었던 별똥별도 사막 한가운데서 볼 수 있었다. 같은 똥끼리는 통하는 것인지, 사이드가 그렇게 낮에 낙타 똥 타령을 하더니 낮에 본 낙타 똥만큼이나 별똥별을 볼 수 있었다. 계속 다양한 위치와 속도로 떨어지기 시작하는데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나는 별이 잘 보이는 곳으로 여행을 가면 별자리 찾는 것을 좋아하는데, 별이 너무 많이 보여서 별자리를 못 찾는 경험은 또 처음이었다. 제일 찾기 쉬운 오리온자리나 카시오페이아 자리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별이 많았다. 정말 아쉬웠던 것은 카메라로 그 풍경을 담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사막에서 별을 찍기 위해 한국에서 미러리스까지 사 들고 왔는데 초점을 맞추기가 너무 힘들어서 결국 실패했다. 별 사진 찍어오는 사람들이 새삼 존경스러웠다.
그렇게 별을 보며 S와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서로의 전공과 학교를 밝혔는데 S는 물리학과라고 했다. 물리학과이지만, 부전공은 공예와 관련된 학과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수업에서 만든 나무 반지를 구경시켜줬다. 정말 열심히 만든 반지라면서 자랑했는데, 나무 반지를 낀 손가락이 모서리에 잘못 부딪혀서 베이스캠프에서 나무 반지는 사망했다. ‘엄청 슬퍼하는 거 보니 진짜 열심히 만들었었나 보다.’ 하고 그의 슬픔에 공감하는 척해줬다.
각자 전공 얘기를 나누다가 S의 ‘물리학이 정말 철학적이다,’라는 말 한마디에서 갑자기 물리 수업이 시작되었다. 사막 한복판에서 별과 함께 펼쳐지는 양자역학 이야기는 의외로 재미있었다. 확신의 학문이라고 생각했던 과학 그중에 가장 공식이 정확하다고 생각했던 물 리가 확률의 학문이라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은 ‘슈뢰딩거의 고양이’와 관련된 이야기였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양자역학의 불확실성을 반증하기 위한 예시이다. 상자 안에 붕괴될 확률이 50%인 방사능 물질을 넣어두고 그 안에 고양이도 함께 두었을 때, 그 고양이는 죽었기도 하고 살았기도 한 존재라는 이야기이다. 우리 눈에는 고양이가 어떤지 보이지 않기 때문에 고양이의 상태를 확실할 수 없으며 두 상태가 공존한다는 이론이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모로코에서 나를 계속 따라다녔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로코는 최악의 순간과 최고의 순간이 고양이처럼 함께 존재하는 나라였다.
양자역학 이야기는 Y의 흥미를 끌지 못했던 것 같았다. Y의 말수가 급속도로 줄어들더니, 계속 별똥별만 찾았다. S는 물리학 수업을 마무리한 후에 Y의 흥미를 끌 만한 주제로 넘어갔다. S는 하고 있는 음악 작업들을 들려주며, 자신의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S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S가 추천해 줬던 음악은 매력적이라서 종종 듣곤 한다. 제목은 Space Oddity이고 내가 추천받았던 노래는 크리스 한 필드 버전이다. 노래의 첫 시작에 우주 정거장에서 신호를 보내는 듯한 사운드와 함께 시작하는데 사막에서 별을 보면서 그 노래를 들으니까 우주여행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가끔 다시 우주여행을 하고 싶을 때면 불을 끄고 Space Oddity를 듣곤 한다.
새벽 4시 반쯤 핫산과 사이드가 잠에서 깨어났다. 우리는 다시 ‘알리네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해야 했다.
“한국 사람들 말 많아.”
우리가 한숨도 안 자고 떠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사이드가 말했다. 한국 사람들은 같이 올 때마다 매번 한숨도 안 자고 대화를 한다고 얘기해줬다. 어떻게 그 많을 별을 보고 잘 수 있겠는가. 1분이라도 더 눈에 그 모습을 담고 싶었기에 밤을 새웠지만 벌써 떠나는 것이 아쉬웠다.
여전히 주변은 깜깜했다. 하실리바드에서 마주했던 어둠보다 더 끈적끈적한 느낌이 드는 무거운 어둠이었다. 우리는 그 끈적함을 뚫고 낙타가 있는 곳까지 다시 걸어가야 했다. 사막에는 빛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핸드폰 플래시를 끄는 순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핫산과 사이드는 사막에 사는 사람들이어서 금방금방 걸어가는데 나와 Y, S는 발이 푹푹 빠져서 따라가기가 너무 힘들었다. 핫산과 사이드가 앞서 나갈 때마다 나는 사막에서 조난당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만 가지고 악착같이 그들을 따라갔다. ‘이러다가 암흑 속에서 일행을 잃어버리면 나 혼자 핸드폰 불빛으로 구조 신호를 보내야 하나?’, ‘다행히 사막에서 데이터가 터지니까 카톡으로 연락해야겠다.’ 하는 별별 상상을 다 하면서 열심히 걷고 또 걸었다. 다행히 핫산과 사이드는 우리가 뒤처지는 것 같으면 기다려주었다. 20분쯤 걸으니 낙타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드디어 편하게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낮에 탔던 낙타와 다른 낙타를 탄 것만 같았다. 낙타에 혹이 하나 더 솟은 것인지 처음 탔던 낙타와 다르게 엉덩이가 정말 아팠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낙타에서 떨어질 것 같았다. 낮에는 낙타를 타는 순간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밤의 낙타는 10분이라도 더 빨리 내리고 싶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다시 등장했다. 체력적으로는 너무 힘들었지만 내가 본 풍경은 낮에 봤던 풍경과는 또 다른 풍경이었다. 별들 사이로 낙타를 타고 가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성탄절 전야제 때 교회에서 별을 보던 천문학자들이 아기 예수님을 만나러 별을 보고 떠나는 모습을 애니메이션으로 보여준 적이 있었는데 내가 마치 그 학자들이 된 것 같았다. 하얀색 조각들이 검푸른 색 융단에 콕콕 박혀서 내 온몸을 감싸주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6시쯤 되니까 동이 트기 시작했다. 모래 언덕 사이에서 해가 뜨는 풍경을 보는데 숙소에서 바라본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모래 언덕 사이로 붉은 물감이 번져 나오다가 주변의 공기를 주황색으로 물들여버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고동색에 가깝던 모래 언덕이 그 물감에 젖어 들어 붉은색에서 황토색으로 색이 점점 변해갔다. 주변 하늘도 검은색의 하늘이 점점 붉은빛을 띠더니 회색을 약간 섞은 듯한 하늘색으로 완전히 변해갔다. 우리는 회색빛 하늘과 함께 숙소에 도착했다. 흰색 운동화는 밑창과 운동화 벨크로 구석구석에 사하라 사막의 흔적을 보관하고 있었으며, 출발할 때는 하얀색이었던 내 젤라바는 햇빛에 함께 물들었는지 황토색을 띠고 있었다. 거울로 내 얼굴을 모습을 보니 ‘꼬질꼬질하다.’가 현실로 나타난 것 같았다. 여유 있게 샤워를 하며 온몸의 모래를 다 씻어버리고 싶었지만, 당장 마라케시로 떠나야 했기 때문에 10분 만에 후다닥 샤워를 끝냈다. 운동화에서는 아무리 탈탈 털어도 사하라 모래가 계속해서 나왔다. 사하라 사막에 운동화를 신고 가면 그 운동화에서는 죽을 때까지 모래가 나온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 말은 사실이었다. 사하라 사막 모래는 매우 고운 입자여서 아무리 털어도 운동화의 미세한 틈에 모래가 박혀있어 빠지질 않았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운동화를 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알리네 집을 떠나기 전에 우리는 숙소 사용비와 투어비, 그리고 우리가 먹었던 물과 음식의 1박에 한국 돈으로 8만 원을 지불하고 차에 짐을 실었다. 알리네 집 숙소에서 이별의 선물로 사하라 사막 모래가 있는 병을 주었다. 처음에는 낙타 모양 인형도 아니고 모래라니 별로 끌리지 않았지만, 한국에 돌아와서 그 모래가 들어있는 병을 볼 때마다 축소된 사하라를 보는 느낌이라 낙타 모양 인형보다 더 좋은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사하라 모래가 들어있는 병을 각자 받아 들고 차에 올라탔다.
한국에 도착해서 운동화를 살려보려고 이리저리 털어보기도 하고 세탁을 맡겨보기도 했다. 하지만 모래들은 내 운동화를 놔주지 않았다. 둘을 떼어놓는 것에 공을 더 들일 바에 운동화를 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하얀색 벨크로 운동화는 우리 집 앞 초록색 헌 옷 수거함에 모래와 함께 처박혔다. 초록색 수거함 앞을 지나가는데 고양이 한 마리가 순식간에 확 지나갔다. 페즈 버스터미널에서 본 그 고양이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