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부러움 속에서 육아휴직을 떠났다
2018년, 그러니까 육아휴직을 결심한 그 해는 내가 직장에 다닌 지 9년째 되는 해였다. 첫 직장이기도 했던 내 회사는 그즈음 점점 복잡해져 갔다. 새로운 상사와의 관계는 나빠질 때로 나빠져갔고 연이어 터지는 품질문제에 온 하루를 수습하느라 허덕여서 새로운 일은 할 수 조차 없었다. 게다가 회사가 매각되면서 연이은 변화와 어수선한 분위기까지. 회사에서의 시간은 그저 고행으로만 여겨지는 시기였다.
때마침 내년은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때였다. 출산 당시 안 쓰고 아껴두었던 육아휴직을 이행할 때가 되었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동반자님께 이 계획을 선포했을 때 좋은 생각이라 반색하면서 서로 내가 휴직을 쓰겠노라며 투닥거리게 되었다.. (경쟁할 필요는 없고 사실 둘 다 번갈아서 쓸 수 있지만 ) 사실 수입만 생각하자면 문재인 대통령님의 부성 보호 정책 덕에 신랑이 수당을 훨씬 많이 받으니 내가 한참 불리했다.
“당신 내 야근에 노이로제 걸리지 않았어? 잘 생각해봐. 내가 제2의 수입원을 창출할 수도 있다니까?”
부부 둘 다 언제 밀려날지 모르는 회사원이라는 직업 때문에 둘 다 경제활동을 지속할 수 있을까 언제나 노심초사 속에 살고 있었는데, 제2의 수입원이라는 감언이설은 단박에 남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렇게 선심 쓰듯 육아휴직의 첫 번째 권리를 승리처럼 움켜쥐고 나는 그다음 날, 팀장님께 곧장 계획을 보고했다. 인수인계를 언제부터 하겠다는 구체적인 일정과 함께. 다행히 팀장님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는 못했지만 합리적인 직원의 권리를 무시하는 분이 아니었기에 이를 승인하고 팀원들에게 공지해주셨다. 사실 일반적인 세태보다도 많이 보수적이고 여전히 여성 직원이 극소수인 회사를 다니기에 나는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면서도 회사로부터 하혜와 같은 배려를 받은 듯이 느껴졌다. 팀 상황이 복잡하니 미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로 인해 내 후배들은 지금 나와 같은 기분 안 느끼고 당당히 휴직 쓸 수 있겠지. 하는 마음도 생겨 뿌듯함도 없지 않았다. 그리고 후배에게 선언했다.
“난 복직하고 말 거야.”
원래 처음이 어려운 거라 했던가. 현재 내 주변의 많은 이들이 출산을 시작하고 언제 육아휴직을 쓸지 구체적인 계획을 하고 있지만,
내가 첫 아이를 출산했을 때만 해도 사내 여자 영업사원으로서는 내가 가장 일찍 아이를 낳은 편이었고,
여자가 많은 디자인팀에서도 맘 편히 육아휴직을 쓰고, 심지어 복직까지 한 사람이 없었다.
바로 이전 사무직 직원 한 명도 돌아오리라는 굳은 다짐을 하고 떠났건만 그 길로 작별이었다.
(사실 나만 빼고 다들 그녀가 돌아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고 했단다. 우리 팀 넌씨눈은 나였던 건가...)
어쩌다 사내에서 여자 영업사원 최초라는 타이틀을 달고 아이를 둘이나 출산한 나는 매번 육아휴직을 쓰지 않고 칼 복직을 했던 것이다.
그때는 왠지 그게 멋져 보였다. 그리고 양가 어머님들이 기꺼이 순서 바꿔가면서 아이를 봐주시겠다 나서는 좋은 조건에 있었기에 마다할 이유도 없었다.
그 이후로 모든 선후배 여자 영업사원들은 아이를 낳고 나면 약속이나 한 듯 3개월 출산휴가 후 바로 복직하는 양상을 보였으니 우연이라기엔 좀 신기했다.
모두가 다행히 육아의 도움을 받을 믿을만한 이모님이나 부모님이 있었을 수도 있고,
나처럼 모두 3개월쯤 되니 바깥바람 쐬고 싶고 회사로 돌아오고 싶은 갈망(?)이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는데
어쩐지 나는 경직된 선례를 남긴 것 같은 미안함이 들곤 했던 것이다.
그래서 육아휴직도 길게 1년 꽉 채워 쓰고, 그리고 심지어 복직도 하리라고. 이제 다들 그렇게 해도 된다고 효시가 되어보리라는 거창한 사명감까지 들쳐 메고
휴직을 결심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주제이자 목적은 아이에게 온전히 몰입해도 되는 시간을 가지기 위해서였다.
(가장 마지막에 말한 것은 이제 생각나서가 아니라 제일 중요해서이다. 진짜다.)
사실 아이는 내가 직장에 다니느라 곁에 있어주지 못한 것에 대한 박탈감을 크게 못 느꼈을 것이다.
항상 태어나서 의식이 있을 때부터 내가 직장에 다녔고, 그동안 할머니들과 끈끈하고 뜨뜻한 최고의 사랑을 받는 손자들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한 번도 내게 아이들은 요구한 적 없지만 그저 내가, 이제껏 쌓아온 아쉬움, 죄책감 등을 씻어낼 만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심오한 고민에 따라,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육아휴직을 신청했건만, 모두에게 듣는 인사는 한결같았다.
“좋겠다! 육아휴직도 가고. 푹 쉬다와!”
뭐 꼬아들을 필요 있겠는가. 쉬고 싶었던 게 사실인데. 그럴 땐 그냥 약간 애매모호한 표정 한번 지어주고, ‘그렇군요. 부러우시군요.’라고 말하는 눈짓을 하며,
입은 충실한 직장인으로서 “네, 덕분에 아이들이랑 좋은 시간 보내고 오겠습니다.”라고 담백하게 답변했다.
그렇게 나의 1년의 휴직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