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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배씨 Oct 10. 2019

휴직하면 할 거야

휴직이 시작되면 하고 싶었던 것들을 곧장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시작하면 늦어. 미리 계획을 짜 놔.

 결정하고 휴직까지 석 달 정도 남았을 때, 남편은 “휴직하면 뭐할 거야?”라고 물었다. 나는 들뜬 기분을 감추지 못하며 ”운동도 하고 공부도 해야지. 애들이랑 시간 나면 여행도 다녀올까?”라고 답했다. 그럼 구체적으로 무슨 수업을 듣고 무슨 운동을 할 거냐고 묻는 남편에게 나는 급하기도 하다며, 이제 슬슬 결정하겠다고 웃어넘겼다.

하지만 남편이 급한 게 아니었다. 이내 깨닫게 되었다. 고작 휴직을 두세 달 앞두고, 왜 이렇게 바쁜지, 휴직 이후의 시간을 계획하고 일정을 짜는 일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마음이 급한데 새로운 일은 자꾸 터졌고, 온통 바쁘게 돌아가는 업무시간 속에 인수인계할 시간을 매일 조금씩 짜내는 것도 버거웠다. 유독 팀 전체가 일이 많은 시기였다고 회상되지만 내 태도에 문제가 있었다. 웬만하면 하던 일은 마무리를 짓고 최소한의 양을 인수인계해야지, 어차피 돌아와서 같이 일 할 사람들이니, 이런 생각들 때문에, 새로이 발생하는 일을 이제 내가 책임질 수 없으니 제가 진행할 수 없습니다. 누구누구에게 요청해주십시오.라고 깔끔히 잘라내지 못했던 것이다. 일종의 죄책감도 있었고 착한 아이 컴플렉스였다. 어차피 가기로 정해진 휴직, 내가 있을 때는 조언이라도 할 수 있지만 없을 때는 그마저도 할 수 없으니, 아무리 인수인계할 대상이 바빠도 인계되는 일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일찌감치 업무의 책임을 넘기기 시작했어야 했다.


가르칠 것도 인계할 것도 산더미인데 새로운 일도 밀려들어온다.


 육아 휴직의 일 년은 짧은 시간이 아닌데, 그 시간 동안 누군가 내 일을 대무해야 한다는 것은 참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새로운 직원을 추가로 배치하기로 하긴 했지만, 전 팀과의 문제로 신규직원의 배치 시점이 나의 휴직 이후가 되어 같이 일을 하던 기존 직원에게 인계하게 되었다. 출산휴가의 3개월과는 차이가 큰 상황이었다. 업무량도 양이거니와 대무자 입장에서는 지금 하는 일을 나누기는 하되 기존 업무를 다 빼주는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일 년 동안만 임시 책임자라니, 복직 후에 회사 입장에서 어떻게 조정할지는 모르지만 일단 배우는 시기에 그다지 의욕이 나거나 즐겁지는 않았을 것이다. 후배라지만 미안한 마음이 크게 들었다. 그래서 어떤 회사의 경우, 육아휴직 중인 사람을 대무할 계약직을 임시 채용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하지만  영업관리 업무의 특성상 거래처와의 장기적인 히스토리도 알아야 하고, 회사나 제품에 대한 기본 지식이 있어야 바로 현장업무에 투입될 수 있는 일이니 신규 임시직에게 시킨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또 계약직이라는 자리가 사회적으로 합당하고 매력적인 자리도 아닐진대, 굳이 나로 인해 그런 자리를 늘리는 것도 최선은 아니었다.

 법에서 보장한 나의 권한을 누리기 위해, 나의 일 년의 공백을 대처할 보다 나은 방안을 찾아야 했는데 회사도 나도 업무 10여 년 차의 관리자급의 육아휴직에 대응하는 매뉴얼이, 레퍼런스가 없었다. 게다가 결정된 상황에서 나 스스로 ‘일단 저는 그때 없습니다. 그러니 정신 차리고 어서 이 일을 받으세요’라고 타인에게 단호하게 굴지도 못했다.

 다행히 우리 팀원들은 배려있고 따뜻했고, 결코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하지 않았다.  바삐 하던 일을 정리하고 인수인계하려는 나의 노력을 외면하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걱정 마세요. 어떻게든 될 거예요.”라고 격려해주기까지 했다. 그래서 거의 재가 되기 직전의 멘탈이 되어 바로 전날까지 인수인계하고 야근을 하며 휴직에 들어가게 되었다.


내일부터 뭐하지?


 휴직한 다음날 아침부터, 첫째의 첫 등교를 함께 했다. 벅차기도 했고 기쁘기도 했다. 하지만 감상에 젖어 즐거워하기에는 앞으로의 일정이 정해지지 않았기에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도 함께였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약 두 달 정도는 하루에 한 번 이상은 걸려오는 회사의 문의 전화를 대응하느라 긴장상태에 있기도 했다. 내가 인수인계를 완벽히 못했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대응했기에 큰 스트레스는 아니었지만 본격적으로 휴직한 것 같은 기분이 아니고 좀 긴 휴가를 쓰고 있는 듯 붕 뜬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많은 날 들을 그 붕 뜬 기분에서 벗어나 새로이 계획을 짜고 익숙해지는데 허비해야만 했다.

 영 똘똘하지 못한 휴직의 시작이라 사실 말하기 좀 창피하지만, 누구든 휴직을 계획하는 사람들은 나와 같은 후회를 하지 않았으면 한다. 사회에서 쉼 없이 달리면서 긴장하고 살아가는 요즘 사람들에게 많은 글들이  지나치게 열심이기를 만류하고 내려놓기를 권하고 있다. 나도 그러한 내려놓음의 연장에서 휴직이라는 선택을 했지만 그게 언제가 되었든 무엇을 내려놓을 것인가, 어떻게 내려놓을 것인가에 대한 자신의 깊은 성찰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런 고민을 할 여유가 없이 휴직에 돌입한 나는 첫 번째 숙제를 시작했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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