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좋으라고 한 육아휴직, 부모도 좋으면 왜 안돼?
휴직이 시작되고 한 일주일 후부터 주위에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이것일 것이다.
육아 휴직하니까 좋아?
나는 그럴 때마다 목구멍까지 환희가 차올라 “개꿀이야!”라고 외치고 싶지만, 조심스레 억누르고 “좋아. 나중에 너를 위해서도 아이를 위해서도 꼭 써.”라고 차분하게 대답했다. 누군가 통화하고 있는 중의 나를 보았다면, ‘뭐지 저 야누스적 표정은?‘이라고 놀랐을 수도 있겠다. 좋으면 좋은 거지, 왜 감정표현을 억누르고 대답했을까. 나중에 생각해보니, 휴직이 필요할 정도로 마땅히 힘들어야 한다는 육아휴직자에 대한 편견을 온몸으로 의식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스스로도 그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물론 나와 같은 경우가 모두에게 해당되는 건 아닐 수 있다. 나는 두 아이를 꽤 키운 상황이었다. 첫째는 이제 초등학생이 되어 혼자 밥술 뜨고 가끔 기분 좋을 땐 샤워도 혼자 해주는 연세(?)가 되었고, 뒤 이은 둘째도 유아라고는 하지만 자기 의사표현 확실하고 어린이집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내는 다섯 살이었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있으면 함께 인생은 무엇인가를 논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마도 출산휴가에 붙여서 곧장 육아휴직을 썼더라면 이런 기분은 꿈도 못 꿨을 것이다.
신규 초딩러를 키우면서 봉착하는 고난은 나중에 상세히 쓰기로 하고, 육아 휴직이 나에게 어떤 꿀 같은 즐거움을 선사했는지 철저히 부모 위주로 한 번쯤 말하고 싶다. 되도록 많은 아빠, 엄마들이 나도 육아휴직 꼭 쓰고 말리라 투지에 활활 불타오르게 되길 바라면서.
분노의 감소
직장에 다니는 부모가 되면서 이전의 삶과 비교했을 때, 나는 공을 보지 않고 굉장한 속도로 저글링 해야 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부모, 자식, 배우자, 직장인, 동료, 여러 가지 역할을 모두 평균 이상 잘 해내야 하고, 언제나 시간에 쫓겼다. 게다가 나는 좋게 말해 여유롭고, 나쁘게 말해 느려 터진 사람이었다. 그런데 멍 때릴 틈 없이 정신없는 일상을 보내다 보니 언제나 쫓기고 압박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사람의 성격은 자주 노출되는 환경에 따라, 어떤 감정을 자주 경험하느냐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어느새 난 성격이 급하고 화를 잘 내는 사람이 되었다. 살아오며 화를 내본 경험이 별로 없어, 여전히 화를 어떻게 내야 하는지는 잘 모르는 주제에 정말 느닷없이 분노가 차오르고 화가 버럭버럭 나는 욱 쟁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많은 직장인들은 알겠지만 일하면서 화내면 진다. 화산처럼 폭발해봤자 왜 저러냐며 눈을 안 마주치려는 사람들과, 오히려 덩달아 마주 화내는 사람들을 만나게 될 뿐이다. 사실 이럴 땐 들어주고 위로해주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결국엔 집에 가는 길에 후회하고, 내가 이토록 화낼 일이었나 곱씹고 곱씹는 자아비판에 시달리게 된다. 직장에서 이런데 편한 내 가족이 있는 곳에서는 어떠했겠는가. 연애를 5년이나 하고 결혼을 했는데도 연애시절 남편과 싸운 기억은 건별로 기억할 수 있을 정도로 적었다. 그런데 육아하는 동안 가열하게 싸웠다. 싸울 일이 참 무궁무진하구나 하고 신기할 정도였다. 우리 둘 다 예민하고 지치고 화가 났다.
휴직 이후에는, 늘어난 여유 시간만큼 마음의 여유를 되찾을 수 있었다. 저글링 하는 공 하나를 잠시 내려놓으니 ‘아 할 만하다. 이 정도라면.’하는 안도감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그 안도감 속에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자기 효능감이 회복됨을 느꼈다. 이제까지 쌓인 분노의 대상은, 다름 아닌 나였을 것이다. 욕심만큼 할 수 없고 누군가에게 계속 미안해야 하고 ‘망치지 말고 적당히’가 최선의 목표가 되어버린 나에 대해.
반전은 안타깝게도 바뀐 성격은 금방 제자리를 찾지는 않았다. 여전히 성질 급하고 말 안 듣는 아이들에게 버럭버럭 하고 있기는 하다. 그런데 일할 때처럼 화가 쌓여 어찌할 바를 모르게 분노하게 되고 그렇진 않았다. ‘어떡하지! 욕 나올 뻔했는데?!’라고 오히려 그때그때 직설적으로 말하는 나에게 남편은 어느새 적응한 것 같기는 하다.
자기 계발의 시간
물론 어떤 직장인은 육아를 하는 와중에도 출퇴근길에 운동도 하고, 틈을 내 자기 공부도 하고 자기 계발에 결코 소홀하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경우엔 그렇지 못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육아휴직을 하고 모든 시간을 아이를 위해 쓰고자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아이를 학교와 기관에 보내고 약 4시간, 길게는 5시간 정도의 시간을 꼭 나만을 위해 쓰기로 다짐했다. 처음에는 그 시간 동안 난장판이 된 집을 치우기도 했고, 요리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차피 대단한 스킬도 없고 좋아하지도 않는 살림인지라 그렇게 시간을 쓴 들 윤기와 광택이 나는 집안, 통통한 면역력 최강의 아이들을 만들 능력은 결단코 없었다. 그래서 그 시간엔 일을 하지 않기로 했다. 아이들이 귀가한 이후 함께 조금씩 틈틈이 하기로 했다. 아침 먹인 접시만 싱크대에 쓸어 담고 나는 집을 나선다. 수업을 듣든, 운동을 하든, 나 혼자 공부를 하든 그 시간은 온전히 나를 위해 쓴다. 열심히 소모하기만 했던 내면의 배터리가 충전되고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풀 충전으로 너그러워진 마음으로 아이들과 하루를 보낼 힘을 낸다.
나-베타 버전 테스트의 시간
30대가 되어서 가장 좋은 건, 나한테 잘 어울리는 것, 잘하는 것, 못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잘 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습게도 내가 지금 직업이 아닌 다른 일은 뭘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을 때는 그 모든 것을 조합해도 쉽게 답할 수가 없었다. 나는 지금의 직업으로는 직장에서의 10년 후를 그릴 수 없었다. 그래서 이후 새로운 일을 하게 된다면, 진짜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지금 미미하지만 가지고 있는 경력, 인맥, 연봉, 회사의 복지혜택, 이런 것들을 지키고 싶은 마음보다, 다 털고 처음이 되더라도 일을 하면서 즐겁고 싶은 마음이 더 커졌다. 그래서 휴직기간 동안 그걸 알아보고 준비하는 시간으로 만들고 싶었다. 좋아하는 게 뭔지 알아도 그게 직업이 될 수 있는가는 다른 문제이다. 그리고 내가 일로 하고 싶을 정도로 좋아하는 게 무엇인가 또한 다른 문제이다. 그럴 때 진짜 필요한 건, 인터넷 서핑으로 후기를 읽는 게 아니라 내가 직접 해보는 것이었다. 직장에 다니고 있을 때는 대체로 그게 어떤 일이건 어려웠다. 기껏해야, 업계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고 상상하거나 조건을 따져보는 게 고작이었다. 그런데 휴직하니까 할 수 있었다. 그게 어떤 일이든, 일로 직접 마주하고 해 봐야 알 수 있었다. 해보니까 가슴 뛰는구나, 이걸 진짜 잘하고 싶구나, 하면 할 수 있겠구나, 벽에 부딪혀도 하고 싶겠구나. 그냥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일단 나는 지금 하고 있다.
얘들아 엄마랑 있으니까 좋아? 응, 엄마도 우리랑 있으니까 좋지?
남들이 나에게 묻듯이, 나도 아이들에게 확인하듯 가끔 물어보게 된다. 그리고 아이들도 내 표정이 좀 더 밝아진 걸 느끼는지 이렇게 되묻는다.
선물같이 주어지는 시간, 다른 말로 쉼을 이렇게 부르고 싶다. 선물인 만큼, 소중하게 써야겠기에 어느 때보다 깊이 생각하고 온전히 느끼려고 한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을 꼭꼭 씹어 삼켜 소화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부모들이 육아휴직을 아이를 위한 시간으로만 한정하지 말고 지치고 수고한 나를 위한 시간으로도 생각하고 활용했으면 한다. 아이가 자라는 만큼 부모도 자라고 계속해서 그릇을 키워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