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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한 나야 Mar 22. 2020

아무도 모르는 국가대표

해외 군사교육 파견 대한민국 여군 1호


3월이면 초등학생이 될 아들은 유난히 태극기를 좋아했다. 이른 아침부터 여행가방을 싸고 있던 내게 아들이 물었다.


"엄마, 옷들은 전부 태극기가 있어?"


1년간 칠레 지휘참모대학(이하 지참대) 학생장교 들과 생활하기 위해 정복, 근무복, 전투복 등 여벌까지 챙기다 보니 여행 트렁크 한 가득이다. 그러고 보니 어제 부대 군장점에서 왼쪽 어깨에 달았 던 태극기들이 보인다. 이제 갓 8살, 아들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이해할까?


"음~ 아들, 국가대표 알지?"


"응, 김연아 선수 같은 거?"


아들의 이상형이었다.


" 그래, 김연아 선수가 경기 때마다 태극기 단 거 봤어?


"응!"


"그래, 국가대표는 태극기를  달아야 돼." 


"그럼, 엄마 국가대표야?"


" 엄마도 우리나라 대표로 칠레에 가는 거니까 국가대표지."


"우와! 우리 엄마가 국가대표였구나! 신난다! 히히"


"그래, 그러니까 우리 멋진아들, 엄마 없이 잘 지낼 수 있지? 국가대표 아들은 씩씩해야 되거든. 매일 전화할 테니까 씩씩하게 잘 있어야 돼!"


"응, 걱정 마!"


하고 생글생글 웃는 아들 모습에 눈물이 핑 돌았다.


'그래, 나는 해외 지참대로 파견되는 대한민국 1호 여군이다. 약해지지 말자. 아들아, 미안하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내미 초등학교 입학도 못 보는 이 어미를 용서해 다오.'


아주, 진짜 국가대표 나셨다. 지금 생각해 보니 참 철없고 매정한 엄마였다.


그렇게 스스로를 대한민국 아무도 모르는 국가대표로 만들어 2010년 1월 10일 세상에서 가장 긴 칠레라는 낯선 나라에 나를 보냈다.


인천을 출발하여 미국 애틀란타, 페루 리마를 거쳐 38시간 비행 만에 칠레 산티아고에 도착했다.


페루 리마에서 칠레 산티아고 행 비행기


2010년 2월 8일 칠레 지휘참모대학 입교식, 태극기를 달고 대한민국 육군 대표로 참석했다. 칠레 육군 소령 40명, 외국군 중령, 소령 9명(한국, 미국, 독일, 브라질, 멕시코, 엘살바도르, 콜롬비아,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총 49명의 동기생들이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더!

칠레 육해공 지휘참모대학 역사상

여군장교 최초 입교자가 바로 또 나!

칠레 여군도 아닌 지구 반대편에서

온 낯선 대한민국 여군이...


그 해는 중남미 거의 모든 국가들이 스페인과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한 지 200주년이 되는 해였다. 그러니까 국방부 역사 또한 200주년이다. 칠레 국방부 역사상 200주년 만에 칠레도 아닌 대한민국 여군장교가 최초 입교한 것이다.


물론 당시 칠레에는 이미 여군 장성이 4명이나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육군대학 정규과정은 치열한 시험을 거쳐 딱 40명만 선발 입교하게 된다. 그때까지 칠레 여군장교들이 그 선발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던 것이다.


참고로 그 해 10월 우리나라도 보병출신 여군 장성이 첫 배출되었고, 2017년 폴란드 지참대에 두 번째로 여군이 파견되었다.


칠레 육군 지참대는 안데스 산맥에 접해있다. 그래서 1년 내내 만년설을 볼 수 있다. 7월에서 8월은 한 겨울이다. 겨울이지만 웬만해서 영하로 떨어지진 않는다.


하지만 습한 영상의 겨울은 오히려 건조한 영하의 겨울보다 으스스한 것이 뼈 속까지 시리게 춥다.


우리 야전상의가 추워 보인다며 동기가 선물로 준 칠레 내피(깔깔이)를 입었다. 실내외에서 야전상의 안에도 입고 칠레군은 평소 이것만 입고 다닌다.



칠레는 우리와 모든 것이 반대인 남반구에 위치한 나라다. 겨울에 출발했는데 도착하니 한 여름

이었다. 심지어 세면기 물이 빠져나가는 방향마저도 반대다.


이렇게 낯선 땅한국군 최초 해외 군사교육기관에 파견 아무도 모르는 국가대표 대한민국 여군장교의 파란만장한 생존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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