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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성란 Aug 26. 2019

도착하지 않은 사람과 남은 이야기

아기 고양이 연두


                              



내가 사는 아파트에는 주민들이 물과 사료를 주며 돌보는 길고양이가 있다. 이름 모르는 길고양이의 배가 터질 듯 불러 있어서 새끼를 밴 줄 알았다. 몇 달이 지나도록 길고양이는 새끼를 낳지 않았고 사람들이 오가는 길에서 자거나 졸거나 놀거나 했다. 사람들이 털을 쓰다듬어주는 걸 즐기는 길고양이에게 나는 한 번도 다정하게 말을 건네지 않았다.

나는 작년여름, 8월 한 달 동안 원주 박경리 토지 문학관에 머물렀다. 낮에도 밤에도 새벽에도 더워서 글을 쓰는 시간보다 왜 이토록 더울까 생각하느라 집필에 몰두하기 어려운 날을 보내고 있었다. 저녁 식사를 하면 한두 시간 걸었다. 혼자일 때도 있고 입주 작가들과 어울리기도 했다. 

연두를 만난 날은 나 혼자였다. 회촌교를 건너 왼쪽으로 꺾어지는 자리에 농가가 있고 건너편은 복숭아나무 한 그루와 잡풀이 우거진 밭이었다. 농가에는 팔순 노인 혼자 살았다. 콩팥에 쭈그려 앉아 있거나 길가에 나와 있는 노인을 보면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내가 말하지 않았는데도 노인은 저녁나절 그 길을 오가는 이들이 토지문화관에 입주한 작가들인 줄 알고 있었다.

띄엄띄엄 서 있는 농가와 밭을 따라 걷다가 비탈진 길을 걸어올라 가면 널찍한 복숭아밭이 나왔다. 여럿이 함께 올라가는 것도 좋지만 혼자만의 산책은 아무 때라도 멈춰 서서 해찰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저물녘에 노인이 사는 농가 앞을 지날 때였다. 잡풀이 우거진 밭쪽을 향해 쭈그리고 앉아 있는 노인 옆에 웬 남자가 서 있었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무더운 여름 저녁이었다. 나는 노인에게 다가가서 인사를 했다.

“고양이가 밭에서 나오질 않네요.”

노인 옆에 서 있던 남자가 나를 힐긋 쳐다보면서 말했다.



남자는 여름휴가를 받아 집으로 온 노인의 막내아들이었다. 해가 지면 고라니와 멧돼지가 고양이를 채갈지 모른다며 노인과 남자가 두런거리면서 혀를 찼다.

어미는 죽고 혼자 남은 아기고양이었다. 남자가 조심스럽게 밭으로 들어가서 고양이에게 손을 뻗었다. 고양이는 남자의 품에서 울음소리를 냈다. 흰색과 갈색 털이 섞인 고양이는 여러 날 먹지 못했는지 야위고 기운이 없었다. 커다란 초록빛 눈망울 주위로 눈곱이 꼈고 흰색 콧수염이 지저분했다.

남자는 고양이를 품에 안은 채 이제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서 있었다. 해가 완전히 기울었다. 사방이 금세 깜깜해졌다.

“제가 데려갈까요? 토지문화관에 입주한 작가들 중에 고양이를 키울 분을 찾아볼게요.”

남자는 나에게 고양이를 선선히 건네주었다. 나는 모자를 벗어 고양이를 담았다. 고양이와 눈이 마주친 순간 마음속으로 연두라고 불렀다. 연두, 아기고양이 이름을 연두라고 지었다. 어두운 길을 걸어 토지문화관 내 방으로 가는 동안 고양이는 내 모자에 얌전히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이름을 지어주었지만 당장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내 방 작은 냉장고에는 캔 맥주 몇 개, 사과 몇 알이 있을 뿐이었다. 고양이를 키운 적이 없고 고양이에 대한 상식조차 없는 내가 굶주린 아기고양이를 잘 보살필 수 없을 것 같아서 더럭 겁이 났다.

옆방에 입주한 작가에게 우유를 한 컵 얻어 와서 종이컵에 부어주었다. 연두는 우유를 몇 모금 먹고 나를 쳐다보았다. “여기가 어디죠? 나는 안전한가요?” 연두가 나에게 묻는 것 같았다.

따듯한 물로 연두를 씻겼다.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딸아이를 씻겼을 때처럼 조심스럽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갓난아기보다 작은 연두는 물을 피해서 자꾸만 달아났다. 눈곱을 떼고 수염에 붙은 오물을 지우고 흙이 묻은 털과 발바닥을 씻기는 동안 나도 덩달아 흠뻑 젖어버렸다. 수건으로 몸을 살살 닦아주자 연두는 말끔해진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준비 없이 덜컥 엄마가 돼버린 심정이었다.

연두는 물과 우유를 번갈아 먹고 책상과 침대, 작은 냉장고, 높이가 낮은 탁자가 놓인 방을 돌아다녔다. 눈망울이 맑은 고양이는 작은 소리로 야옹거리면서 부지런히 작은 방을 탐색 중이었다. 벌러덩 누워 있거나 사료를 먹거나 어슬렁거리는 우리 아파트 단지의 길고양이와 달리 연두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연두는 침대와 책상 사이의 좁은 틈으로 들어가서 졸았다. 불을 끄자 연두가 야옹거렸다. 밤에 불을 끄면 사방이 너무 캄캄해서 무서웠는데 연두가 있어서 안심이 되었다. 날이 밝으면 연두를 돌봐줄 집사를 찾아야 했다. 나는 연두를 집으로 데리고 갈 수 없었다.

이튿날, 입주 작가들이 함께 모여 점심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휴대전화로 찍은 사진과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당장 먹일 사료가 없다고 내가 말하자 집에서 고양이를 키우는 B작가가 길고양이에게 주려고 참치 캔 몇 개를 가져왔다면서 내 방으로 따라왔다. 우유와 물로 겨우 목을 축였던 연두는 작은 참치 캔 하나를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B작가는 연두가 생후 2주가 지나지 않았을 거라고 말했고 아기고양이에게 무엇을 먹이고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알려주었다. 나는 연두를 데리고 집으로 갈 수 없다고 털어놓았다. 

연두는 침대와 책상 사이의 한 뼘도 안 되는 좁은 틈이나 침대 밑 어두컴컴한 자리에서 놀았다. 내가 방을 나갔다 돌아오면 야옹거리며 달려 나왔다. 참치를 먹고 물로 목을 축이고 내 주위를 빙글빙글 돌면서 꼬리를 내렸다 올렸다 했다. 내가 글을 쓰려고 책상에 앉으면 연두는 내 발치를 맴돌았다. 놀아달라는 뜻이었다. 글을 쓰다가 방 안이 조용하면 연두야, 하고 불렀다. 구석진 자리에서 졸고 있던 연두가 야옹하고 대답했다.

연두는 제주도에 사는 Y작가와 함께 떠났다. 연두가 집사를 만나서 마음이 놓였지만 서운했다. 집으로 돌아가서 연두 이야기를 했더니 고양이털 알레르기가 있는 딸은 나보다 더 아쉬워했다. 연두는 떠났고 사진 몇 장과 동영상으로 남았다. Y작가는 종종 연두 사진을 보내주었다. 이제 연두는 아기고양이가 아니었다. 바닥에서 침대로 뛰어 올라가지 못했던 연두는 날쌘 동작으로 어디든 오르내릴 수 있었다.

건강하게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는 연두는 내겐 여태도 아기고양이였다. 이제 만날 수 없는 연두를 그리워하면서 나는 우리 아파트 길고양이에게 다정하게 말을 건넸다.

“너는 이름이 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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