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 딸 vs. 베이비부머세대 엄마, 우리 함께할 수 있을까?
엄마가 아기를 안고 자야지
차가운 침대에서 아기가 혼자 자는 거 그것도 그렇다
나는 우리 엄마가 이럴 줄 몰랐다.
내가 아는 우리 엄마는 고지식한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나에게 "조리원을 꼭 가야 하나?"라고 말했다. 덧붙여 본인이 나를 낳았을 때 하루 만에 바로 퇴원해 집안일까지 했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시어머니도 아니다. 친정엄마다. 엄마 그건 옛날이잖아!
며칠 전 엄마와 통화를 했다. 엄마 친구의 딸이 올해 서른아홉에 첫째를 출산했단다. 늦은 나이에 결혼해 어렵게 얻은 아이라 조리원이 못 미더워 가장 비싼 곳으로 예약했지만, 그 마저도 취소하고 친정엄마인 엄마 친구와 처음부터 함께 육아를 하고 있단다.
친구로부터 그 말을 들어서일까. 엄마가 조리원에 대한 걱정을 내비쳤다. 시작은 "조리원을 꼭 가야 하나?"였다. 그러면서 "조리원 가면 엄마랑 아기랑 떨어져 있는데 엄마가 아기를 안고 자야지 차가운 침대에서 아기가 혼자 자는 거 그것도 그렇다"라며 "엄마는 너를 꼭 안고 키웠다"라고 말했다.
'차가운 침대', '아기가 혼자'… 나는 벌써 나 좋자고 갓난아기는 나 몰라라 하고 조리원에서 푹 놀다 오려는 비정한 젊은 엄마가 되어버렸다. 조리원에서 새벽수유 안 받고 싶다고 했다간 애 굶기는 엄마가 될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나는 우리 엄마가 이럴 줄 몰랐다. 아직 본 적도 없는 손자를 자기 딸보다 더 챙길 줄 몰랐다.
조리원비 지원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조리원 가서 몸조리 잘하고 나오라고 격려는 못해줄 망정, 덤으로 죄책감까지 심어주다니.
엄마의 말을 듣고 있던 나는 "엄마, 그래서 나 조리원 가지 말라고?"라고 물었다. 엄마는 뭐랬더라. 첫째니까 가보든지 정도로 말했던 것 같다. 뒤이어 나는 "나 근데 조리원 갈 거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날의 대화 주제는 조리원으로 끝나지 않았다. 젖병 얘기가 나와서 젖병 세척과 소독을 식기세척기로 할 거라고 말하자 엄마는 "젖병 그거 몇 개 된다고"라며 "직접 삶는 게 가장 좋다"라고 말했다. 아니, 엄마 나도 알지. 근데 내 건강 지키면서 일 좀 편하게 해 보려고 그러는 거지! 직접 삶는 건 품이 많이 들잖아.
그나마 육아용품 비용을 절약해 보겠다고 젖병 세척기와 소독기를 따로 사지 않고 집에 있는 식기세척기를 쓸 생각인데 세척기랑 소독기 따로 샀다간 아주 돈 낭비(라고 쓰고 돈지랄이라고 읽는다)라고 욕먹었을 상황이다.
엄마의 발언은 이걸로 끝나지 않았으니.
"육아 어렵지 않다"라며 "엄마가 부지런하면 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요즘 천기저귀를 쓰니, 일회용 기저귀 쓰는데 할 일이 뭐가 있어?"라고 말했다. 엄마, 이거 나 위로해 주려는 말 맞아? 결국 나를 갈아 넣으라는 거잖아.
여기까지 들으니 조금 과장하자면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사실 나는 그녀에게 육아 도움을 받아볼까 하고 있었다. 그래서 임신 준비 시기부터 미리 말을 꺼내 놓았다.
그런데 이거, 벌써부터 좀 아닐 거 같다.
엄마 친구 중에는 딸 엄마가 많다. 그들은 대개 딸의 육아를 도와주고 있다. 그래서 감사하게도 엄마 역시 내 육아를 도와주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엄마의 노동에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육아도우미 월급 정도의 사례는 생각하고 있다.
나도 친정엄마에게 육아 도움을 받은 친구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다. 내 친구는 친정엄마와 엄청나게 대립했다고 했다. 이 얘기를 듣고 나는 친정엄마와의 관계가 걱정이 됐다. 엄마한테 엄마 친구들은 딸과 육아하면서 다투지 않느냐고 물으니 돌아온 대답은 "엄마 말만 잘 들으면 싸울 일이 뭐가 있냐"라며 "너나 나 뭐라 하지 마"라고 했다.
엄마의 생각은 엄마 말을 듣지 않는 딸 때문에 다툼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즉, 다툼이 생기면 딸이 문제인 거다. 너는 내 말만 들으라는 거다. 나도 내 아들인데 엄마 생각만 따를 수 있을까?
엄마와의 통화 내용을 남편에게 얘기했다.
남편은 "그때는 그렇게 해서 엄마 몸이 다 상했다"라며 "아무래도 세대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엄마와 나의 나이차이는 대략 30살. 맞다, 우리 엄마 60대지. 아무리 또래보다 열린 엄마라고 해도 60대는 60대구나. 언니한테 빨리 결혼해서 아이 낳으라는 거 보면.
이날 남편과 나, 우리는 우리끼리 죽어나더라도 우리끼리 키우는 게 낫다는 오만한 생각을 하게 됐다.
신생아를 키우는 일은 정신적, 체력적으로 소위 죽어나는 극한의 일인데 식기세척기를 쓰기 위해, 하이체어를 쓰기 위해… 그 밖에 엄마가 경험해보지 못한 다양한 신문물(?)을 쓰기 위해 엄마한테 일일이 설명하며 눈치까지 보게 되면 정말 힘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은 어디 한 번 키워보고(?) 정말 죽을 것 같을 때 도움을 청해볼까 생각 중이다. 무조건적으로 나에게 맞춰주는 자애롭고 편안한 엄마는 아니지만 그래도 도움을 청할 엄마가 있어 감사하다. 그때는 엄마가 무슨 말을 해도 나의 구세주로 보일테니 무한 감사하는 마음만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