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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호철 Sep 22. 2022

근현대 체제들 (1)

사람의 모순

  아직 우리는 근현대 체제가 주장하는 문제-해결의 사고방식이 정말로 우리를 구원할 것인지 대답하지 않았다. 여기서 말하는 구원이란 해결의 끝에 도달함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이 질문은 체제가 모든 문제의 종결을 불러오는가에 대한 대답을 요구한다. 아마도 근현대 체제는 문화가 낳은 다른 무엇보다 먼저 이 목표를 달성할 가능성이 높다. 우선 근현대 체제는 자연을 두려움이 아니라 탐구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근본적으로 달라진 관점을 확보하였다. 이런 관점을 바탕으로 지구상에서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였다. 무엇보다 이것은 다른 체제보다 문제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또 해결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론을 무수히 만들어냈다.


  근대 이전 체제들이 상대적으로 자신의 세계를 유지하고 보수하는 데 집중했다면, 근현대 체제는 세계적 구조 변경에 주저하지 않았다. 근현대 체제는 이전 체제가 갖지 못한 상상력, 즉 세계가 충분히 현실이 부과하는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음을 확신하였다. 이러한 세계적 관점은 문제-해결적 사고방식을 도구 삼아 실질적으로 증명하였으며, 쌓여가는 업적은 점점 근현대 세계의 확장을 막을 수 없게 만들었다. 오늘날 남아있는 세계‘들’에서 근현대 체제의 영향력은 지대하면서도 뿌리 깊다. 이 체제는 질문을 통한 문제 제시와 해결 방법의 모색과 같은 메커니즘이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핵심적 요소임을 분명히 드러냈다. 결과적으로 근현대 체제는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체제의 영속을 바라볼 수 있는 유효한 지점을 발견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런데 근현대 체제가 앞서 주장한 것처럼 정말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게 된다면, 체제적 사고방식은 불필요해지지 않을 것인가? 여기서 우리는 체제가 희망하는 그림과 배치되는 결과를 예상해볼 수 있다. 즉 체제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강변함으로써 체제의 종말로 다가서는 의사결정을 단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보았던 것처럼 체제가 가진 성질과 맞지 않는다. 체제는 단 한순간도 세계에서 영향력이 정체되거나 감소하는 상황을 원치 않으며, 이런 경향은 다른 체제들도 마찬가지다. 모든 체제는 탄생의 순간부터 권력을 지향한다. 다만 그 권력의 원천은 기본적으로 문제 인지와 해결 모색에 달려있다. 근현대 체제는 이 지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자신의 핵심적 기조로 삼았을 뿐이다. 이러한 원천에서 계속해서 권능의 샘이 흘러나와야 체제는 존속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체제의 목표하는 바가 결코 문제의 완전한 해결이 아님을 어렴풋이 눈치챌 수 있다.


  한 가지 가정을 도입해보자. 근현대 체제가 내세우는 주장과 달리 어떤 체제도 문제의 완전한 해결을 지향했던 적이 없다. 이 말은 곧 근현대 체제가 다른 체제들보다 문제에 대한 전반적인 해결력이 뛰어남에도, 동시에 문제 재생산 속도 역시 그 이상으로 탁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의 세계는 문제의 범위와 종류에 있어 근대 이전의 세계들이 가지지 못했던 방대함을 자랑한다. 현재 지구상에는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면서도 해결이 난망한 문제들이 퍼져있으며, 이러한 만연함은 우리로 하여금 근현대 체제를 시급하게 소환하는 것 이외에 다른 대책을 떠올리지 못하도록 만든다. 이러한 세계적 양상의 전개는 곧 체제의 영향력으로 이어진다.


  이와 같은 가정은 당연히 기존에 살펴봤던 체제 전개의 표면적인 현상과 배치된다. 문제가 만연할수록 체제의 존립과 영속은 위협받는 것 아닌가? 또 체제는 의문으로부터 멀어질수록 그 자신의 영속을 공고히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체제가 터부시 하는 의문은 그야말로 체제에 뿌리부터 뒤흔드는, 즉 사람의 근본에 질문을 던지는 것들이다. 사실 모든 문제는 의문으로부터 시작한다. ‘사람은 무엇이 아니다’와 같은 근현대가 던지는 대답도 역시 ‘사람은 무엇이 아닌가?’에서 출발한다. 이처럼 어떤 의문은 근현대 체제가 해결할 온갖 문제의 자양분을 제공한다. 이러한 의문이 없다면 문제의 재생산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의문에서 생겨난 문제들 덕분에 체제는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변의 의문을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즉 의문에는 체제를 침식하는 것과 더불어 체제에 동력을 제공하는 의문들이 있다. 체제는 문제를 재생산하는 의문들을 십분 활용하면서 확장하거나 영속하려 한다. 이런 의문들은 체제를 부양하며, 궁극적으로 우리를 체제의 굴레 속으로 이끈다. 어떤 체제도 정말로 문제를 감소시키거나 종결시키는 결과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 특히 근현대 체제는 자신들이 해결하는 문제보다도 더 많은 양의 문제를 양산함으로써 체제의 필요성과 영속을 가속화한다. 체제는 문제 인지와 해결 모색의 순환에 실패하는 순간 소멸을 맞이하거나 다른 체제에 자리를 내어준다. 그래서 앞에서는 문제의 막힘없는 종결을 향해 나아갈 것처럼 웅변하면서도, 뒤에서는 언제나 모든 문제가 사라져 버리진 않을까 불안해한다. 이러한 근현대 체제의 이중적인 모습에서 우리는 체제 최후의 속성인 ‘체제에 봉사하는 의문의 배양’을 발견할 수 있다. 체제가 제시하는 문제의 국지적인 해결은 체제의 구성원을 납득시켜 체제에 봉사하도록 만드는 구실을 한다. 근현대 체제에 있어 오직 영원한 것은 문제이며, 문제에 자양분을 제공하는 의문 역시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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