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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채원 Che Kim Dec 16. 2022

직장인의 호칭과 자세

[직장 20년 차 김프로 생존기]6. 김프로라 불리다.


프로 : 어떤 일을 전문으로 하거나 그런 지식이나 기술을 가진 사람. 또는 직업 선수.



제목이 김프로의 직장 생존기인데 이제야 김프로라는 명칭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다.


사실 내가 김프로라고 불린 것은 이미 2009년부터였던 터라 이미 10여 년이 족하게 지난 세월이어서 구성이 조금 조정이 되어야 하나 고민도 해 보았다. 그러나 또다시 생각해 보면 김프로라고 하는 명칭 자체가 사원, 대리, 과장, 부장 등을 뛰어넘자는 의도가 담겨 있기에 그 명칭들과 그에 따른 의미들을 소개한 후에 그것들이 사라졌을 때 어떤 좋은 점이 있는지를 이야기하기에 더 좋은 것 같아서 지금 순서를 그대로 지키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 같다.


프로 : 어떤 일을 전문으로 하거나 그런 지식이나 기술을 가진 사람. 또는 직업 선수.

위의 정의는 네이버 국어사전에서 찾아본 프로의 정의이다.


입사 2년 차였던 2009년부터 우리 회사에서는 직원들의 명칭을 '프로'로 통일하기로 했다. 사실 누구나 그랬을 것처럼 나 또한 '프로'라는 명칭에 대해서 그다지 반기는 편은 아니었고, 더구나 2009년에 진급(과장으로 다시 진급인데 광고회사의 직급체계상 '차장'이 되자마자 그냥 '프로'로 불리게 된 것이었다.)한 바로 그 해에 직급의 평준화에 빠져버린 것이 내심 억울하기도 했다. 사실 우리가 폄하하는 의미로 사용하기 일쑤인 '아마추어'라는 단어에도 '아마추어 정신'이라고 부르는 단지 돈만을 위해서 노력하지 않는 순수한 열정을 추구하는 훌륭한 의미가 있는데 '프로' vs '아마'라고 하는 비교 구도를 '프로'만이 우월한 것으로 부르는 것도 껄끄러웠고 돌아다니면서 명함 자체에 '프로'라고 쓰여 있고 외부에서도 '프로'라는 명칭을 쓰면서 콘텐츠를 다루는 회사다 보니 '프로듀서'의 약자라고 생각하여 피디라고 불리는 경우나 골프선수나 검사가 아닌가 하는 오해도 사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다. 특히 영업목적으로 골프 라운딩을 함께 하게 될 경우에 나와 같이 골프 입문자인 경우에는 '무슨 프로가 이렇게 골프를 못 치나'라는 우스갯소리의 희생양이 되어야 하기도 했다.


이렇게 직업상의 '선수'로 동등한 입장에서 좋은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자는 취지로 꽤나 이른 2009년에 '프로'라는 이름을 도입하고 이를 경험하였지만 사실 우리 회사가 이러한 호칭 파괴의 첫 번째 주자는 아니었다. 2000년도에 CJ그룹은 모든 직원들끼리 '님'으로 부르기로 가장 먼저 당시 이재현 회장의 지시를 통해 수평적 위치에서 자유로운 의견 교환을 권장하기 위한 취지로 시작하였고, 아모레 퍼시픽 역시 2002년에 '님' 호칭을 시작하면서 한일 월드컵 당시 히딩크 감독이 축구 국가대표 선수단의 수직적인 문화를 파괴하기 위한 호칭 파괴에서 착안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카카오는 영어 이름을 임의로 만들어서 부르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SK텔레콤 역시 ‘호칭 파괴’를 2006년부터 '매니저'라는 호칭으로 시행하고 있는데 기본적으로 (SK텔레콤의) 비즈니스 자체가 창의적인 문화가 필요해 수평적인 관계에 맞는 조직체계여서 이러한 호칭문화 정책을 시행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삼성그룹에서도 5년 전인 2017년부터 공식적으로 직급 호칭을 없애고 모두 '프로'라고 부르기로 하였다. 한화그룹은 사원에 ‘씨’, 대리에서 차장까지는 ‘매니저’라고 부른 바 있다. 그러나 이후에 기존의 직위체계를 부활시켰다고 한다. 그 배경에 대해서 보통 매니저 체계 정도로 가면 수평적인 느낌은 있으나, 실생활에서 직위체계에 따른 호칭이 없어지게 되면 명확한 업무 지시와 이행에서 불편한 점이 있다는 것을 호칭 부활의 이유로 삼아 2012년에 직급을 원복 시켰었으나 2022년 3월부터 3세 경영인인 김동관 부회장이 이끄는 한화솔루션에서 시작해 다시 '프로' 호칭을 복원하며 수평적 조직문화의 확산을 시도하고 있다.


당시 우리 회사에서 채용했던 '프로'라는 명칭은 우리가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정의 그대로 아마추어처럼 일하지 말자는 의미이기도 했고, 우리 모두 선수들이니까 다들 동등한 입장에서 일을 하자는 취지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이면에 회사에서는 급여체계를 손보면서 직급의 단계를 줄이고 그에 따라 인건비를 줄이려는 다소 불순한 취지도 숨어있지만 핵심이 아니므로 그냥 넘어가기로 한다.) 그렇게 일을 해 온 지난 14년 정도의 시간에 대해서 돌이켜보면 나는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싶다.


우선 모든 회사가 문제를 해결해야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가기 때문에 동일하겠지만 우리 회사는 특히 창의적인 아이디어의 생산이 업의 중심에 있어서 조직원들의 활발한 의견 개진과 의사소통이 매우 중요하게 다뤄진다. 그럴 때, 1장부터 5장까지 다뤘던 층층시하의 계급체계가 강력하게 작동을 하는 조직에서는 대체로 상급자의 의견이 아래로 흘러내려가고 거꾸로부터의(저년차 직원들의) 아이디어는 반영이 되기 어려운 기존의 위계가 확실한 방식의 조직구조와 지금 소개하는 '프로'들의 수평적인 조직구조에서의 아이디어 간의 창의력은 크게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전자의 경우에는 아무래도 기존의 경험에 의한 효율적인 아이디어가 나오게 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후자의 경우에 비해서 새로운 시도나 기존에 시도했다가 좋은 결과를 낳지 못했던 방식으로의 시도는 꺼리게 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아이디어의 업그레이드는 이뤄지기가 힘들다.


반면 우리 회사에서 적용되고 있는 수평적인 '프로'들 간의 아이디어 생산 플로우에서는 서로 완전히 동등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서로 똑같은 '프로님'들 간에 토론이 벌어지기 때문에 부장님이 대리 또는 과장들의 의견을 묵살하기가 쉽지 않다. 그뿐 아니라 아직 자신감이 완전히 성숙하지 않은 '사원'들에게도 동등한 호칭을 통해서 의견을 물어오기 때문에 아무래도 좀 더 손쉽게 각자의 의견을 개진할 수가 있다.


한편 수평화된 문화 덕분에 경험이 많은 직원들이 상대적으로 어려움을 겪어야 하는 점은 존재하나 결국 아이디어로 승부하자는 취지를 수긍하고 따라야 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하겠다. 그리고 호칭이 수평화되었다고 해서 수년간의 경험에 의한 차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여전히 어느 정도는 회의시간 상의 지분(?)은 경험 많은 선배들이 주도하는 경우가 여전히 많기는 하나 그래도 전체적인 분위기가 자유롭게 협의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며 선배에게도 '프로님', 후배에게도 '프로님'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상호 존중하는 문화가 형성되어 선후배 간에 세대차이로 인한 갈등을 미연에 방지하는 효과 또한 제공한다.


우리 회사에서 진행하는 프로모션 프로그램에서 이벤트 프로모터들에게 이 '프로'라고 하는 호칭을 도입한 사례도 있었는데 높이는 것도 낮추는 것도 아닌 '프로모터'라는 단어에서 '프로'로 바꾸었음에도 '프로모터'분들의 만족감이 매우 높아졌던 사례도 있었다.


반면 ‘호칭 파괴’를 시행했다가 다시 되돌린 기업도 존재한다. KT는 팀장, 실장, 본부장 등 직위를 모두 ‘매니저’로 호칭을 통일했었지만 시행 4년여 만에 직위체계에 따른 호칭을 부활시켰다고 한다. 그 외에 여전히 '매니저' 호칭을 사용하고 있는 SK텔레콤 같은 경우는 영업 외부에서 사원 입장에서 기본적으로 매니저라 하면 무슨 급인지 상대방이 궁금해하는 경우가 많아 예외적으로 거기에 맞게 영업 쪽은 ‘과장’ ‘부장’ 등 (호칭을) 겸할 수 있게 탄력적으로 시행하며 보완해 나가고 있다. CJ그룹이나 신세계 또한 원칙적으로는 수평 호칭을 사용하지만 외부와 업무를 진행하면서는 직급을 알 수 있는 호칭을 겸하는 방식으로 유연성 있게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또한 '프로'라는 동등한 입장에서 선후배가 서게 되면서 후배들이 선배들의 경험에 대해서 인정하지 않고 요즘의 트렌드에 앞선 자신들이 훨씬 더 앞서 있다는 점에만 빠져서 경험의 힘이 작용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가끔 발생하는데 진정한 '프로'라면 경험의 가치도 인정하고, 서로 동등하게 인정하는 성숙함을 갖추어야 할 것이므로 이런 것도 제도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그 제도를 수행하는 소속원들의 과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프로'들이여 프로골프의 양용은/박세리, 프로야구의 박찬호/류현진, 프로축구의 박지성/손흥민 선수들처럼 모쪼록 계속 절차탁마하여 각자의 필드에서 세계적인 성취를 보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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