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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이 Aug 01. 2024

혼자서도 잘해 먹어요.

내 손으로 요리를 해 먹는 이유

나는 내 나름의 사회생활을 하면서 식습관이 바뀌었다. 식사를 하는 시간이라던가 양이라던가 직장을 다니다 보니 원래의 식사패턴과 많이 달라졌다.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했을 때에는 챙겨 먹는다는 것이 너무 귀찮고 힘든 일이었다. 일도 바쁘고 잠잘 시간도 없는데 식사까지 스스로 챙기려니까 힘에 부쳤다. 그래도 집에서 출퇴근할 수 있어서 저녁은 엄마가 챙겨주는 집밥을 먹을 수 있었고 걱정과 고민을 조금 덜 수 있었다.


어쩌면 복에 겨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회사에 있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고 주말에도 내 나름의 약속들로 인해서 집에서 밥 먹는 일이 손에 꼽았다. 평일 저녁에 이틀 정도, 주말에 한 끼 정도 가족과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문제는 내가 늦게 퇴근하는 날이었다. 시간이 애매해서 회사에서 저녁을 챙겨 먹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러면 집에 가서 뭐 먹을 게 없나 냉장고를 뒤지기 시작한다. 그러면 엄마가 해놓은 요리보다 당기는 음식들이 눈에 띈다. 이걸로 샌드위치 해 먹어도 맛있겠다 싶어 요리 재료를 주섬주섬 꺼낸다. 


주방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나와본 엄마는 기겁을 하며 말한다.


"아니, 집에 먹을 게 이렇게 많은 데 뭘 또 해 먹게?"


엄마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엄마가 해놓은 반찬, 국, 찌개 등 냉장고가 가득하다. 하지만 그날은 그런 것보다 간단한 토스트 하나가 먹고 싶은 날이었다. 엄마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옆에서 토스트재료를 준비하는 동안 계속 잔소리를 해댔다. 결국 나는 잔소리를 이기지 못하고 토스트 재료들을 다시 냉장고에 꾸역꾸역 집어넣었다.


엄마는 그런 모습을 보고 매우 흡족해한다.


"그래, 집 밥을 먹어. 영양도 좋고 몸에도 좋잖아. 엄마가 차려줄게, 밥만 데워."


나는 어쩔 수 없이 밥 한 공기를 전자레인지에 데우기 시작한다. 물론 엄마가 하는 요리는 맛있다. 하지만 기분 좋은 식사는 아니었다. 배가 부른 식사일 뿐. 내가 만약 한식이 먹고 싶었다면 나는 당연히 엄마가 놓은 음식들을 내가 차려 먹었을 것이다. 내 손으로 내 식사를 차려 먹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일은 매번 반복되었다. 짠 음식이 먹고 싶지 않을 때에도 나는 엄마가 해놓은 찌개를 먹어야 했고, 밥을 먹을 만큼 배가 고프지 않아도 밥 한 공기를 뚝딱해야 했다. 처음에는 엄마 밥을 맛있게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하자 생각했다. 배가 불러도 먹고 싶지 않았어도 먹게 되었다. 엄마의 흡족해하는 반응을 보기 위해.


나는 도저히 이대로는 안 되겠다 생각했다. 저녁에 먹은 밥의 양 때문에 살도 찌고 있었고, 내가 원하지 않는 식사를 강요당한다는 기분이 너무 싫었다. 그날 나는 엄마에게 저녁밥을 먹지 않겠다고 말했다.


"배고플 텐데, 뭐라도 먹어야지. 과일도 있고, 나물도 해놨어. 뭐라도 먹어."


배가 고프지 않은 나더러 뭐라도 먹으라는 말은 물론, 엄마는 걱정이 되어서 하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정말 누구를 위한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엄마, 나 배 안 고파. 하루 굶는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내버려 둬. 알아서 챙겨 먹을게."


엄마는 한 번만에 '그래, 알겠다.'라고 하는 법이 없었다. "그래도..." 하면서 걱정을 투사한 자신의 의견을 주입하려고 했다. 나는 배가 고프지 않다며 그 말을 냉정히 끊어냈다.


그렇게 방에 들어갔지만 마음은 영 찝찝했다. 그냥 참고 엄마 말대로 먹었으면 이런 불편한 감정을 느끼지 않아도 됐을 텐데. 내가 참으면 다 되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언제까지고 그렇게 지낼 수는 없었다. 나는 앞에서 말했듯이 거절하는 방법 그리고 스스로를 챙기는 방법을 체득해야 했다.


나는 주말 아침 일찍 일어나, 유튜브에서 본 브런치 메뉴를 만들어 본다. 모양은 엉성하지만 맛은 나쁘지 않은 요리가 완성되었다. 브런치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 있을 때쯤 엄마가 부엌에 나와 뭘 먹고 있느냐 물었다.


"내가 만든 브런치. 생각보다 괜찮아. 엄마도 먹어볼래?"


엄마는 한 입 먹더니 맛을 평가한다. 그래도 맛은 괜찮았노라고 끝에 덧붙인다. 그러더니 엄마가 불쑥 물었다.


"그게 그렇게 먹고 싶었어?"


나는 갸우뚱했다. 그 질문이 도대체 무엇을 내포하는지 나는 잘 몰랐다. 먹고 싶었으니 해 먹은 게 아닌가? 나는 눈이 똥그란 채 엄마를 쳐다보았다.


"아니, 그렇게 직접 만들어 먹을 정도로 먹고 싶었냐고."


엄마는 그런 내 표정을 읽더니 다시 물었다. 아. 먹고 싶기도 했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응, 먹고 싶기도 했고. 그냥 내가 직접 만들어 먹어보고 싶었어. 다음엔 엄마도 만들어 줄까?"


그렇다. 그 브런치가 먹고 싶은 음식이기도 했지만, 내가 스스로 나 자신을 대접하고 싶은 것도 하나의 이유였다. 그리고 그 요리하는 과정을 통해 내가 스스로 해냈다는 성취감도 얻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하는 요리가 엄마의 요리보다 더 맛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엄마의 요리는 언제나 정이 넘치고 맛이 있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스스로 챙기고 싶을 때가 있었다. 그 과정을 즐기고 싶을 때가 있었다. 그 기쁨과 뿌듯함을 오롯이 말이다.


"그래. 담에는 엄마도 해줘 봐라."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고 이제는 내가 요리도 할 줄 아는 여성이 된 것이냐며 웃었다. 엄마는 다 자란 나의 모습을 보고 자신이 챙길 것이 많이 사라졌다고 느꼈던 것일까. 엄마의 말투에는 아쉬움과 후련함이 섞여 있었다. 엄마의 눈에는 마냥 내가 아직 아이로 보이나보다. 나는 엄마에게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어른임을 말해줘야 했다. 그날 이후로 엄마는 내가 새로운 음식을 하거나 엄마가 만들어놓은 반찬을 먹지 않아도 별 말을 하지 않았다.


요즈음에는 엄마 밥상을 먹을 때, 리액션을 하려고 노력한다. 오늘은 조림이 너무 잘됐다고, 반찬 간이 딱 맞다고, 국이 너무 내 입맛이라며, 이건 간을 뭘로 했냐는 둥 엄마에게 요리에 대한 이야기를 꽤 많이 한다. 여태 커오면서 무심코 그냥 먹던 밥이니깐 당연한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스스로 차려먹어 보면서 깨닫게 되었다. 그 과정에는 참 많은 준비과정과 노동이 드는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음식들이 먹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만드는 것임을 알게 된다. 


거창하게 멋있고 대단한 요리를 하라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위해 또는 나의 소중한 사람을 위해 간단한 샐러드 하나라도, 셰이크 한잔이라도, 야채 주스 한 모금이라도 대접해 본다면 감사하는 마음의 깊이가 달라질 것이다. 스스로를 대하는 마음의 넓이도 달라질 것이다. 그 마음가짐을 통해서 나는 더 나다운 삶을 살게 되었고, 활력 있는 삶을 살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인생을 좀 더 능동적으로 이끌어가는 이 기분 좋음이 바로 내가 꾸준히 스스로 음식을 해 먹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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