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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원 May 02. 2020

가끔 그 날들을 떠올린다

돌아가고 싶진 않지만 그립기는 한,


아이들 재우고 멍 때리고 있다 보니 새벽 한 시 반. 침대에 하나, 아래 토퍼에 하나. 아이들 둘이 새근거리며 자고 있는데 내가 이 아이들을 낳았다는 게, 아이 둘의 엄마라는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언제 이렇게 시간이 빠르게 지난 걸까. 스무 살 후반의 피 끓던 날들이 어느새 희미해져 간다. 내 이름으로 벌이던 일들에 가슴이 벅차고 새로운 사람 만나는 일이 재밌고 맥주를 신나게 마셔대던 젊은(물론 지금도 젊지만) 시절의 나. 술 취해 웅웅 거리는 무거운 머리로 터덜터덜 밤거리를 걷던 나는 파자마 앞섶을 풀어헤치고 우는 아이에게 젖 먹이는 새벽녘을 상상하지 못했다. 사람들에게 그럴싸하게 이름을 알리고 싶었고 어설프게 어른인 척하며 살았다. 그때는 내가 진짜 어른인 줄 알았지. 후회가 마음에 깊어 꿈에 악몽처럼 따라오는 순간들도 있다. 돌아가고 싶진 않으나 다시없을 싱싱한 에너지는 그립다. 뭘 모르는 덕에 이것저것 재지 않고 달릴 수 있었으니까.


내 이름으로 무언가 알리던 그 날의 짜릿한 감정들을 잊지 못한다. 열심히 전시장을 꾸리고 열심히 글을 쓰고 거기 내 이름을 자랑스럽게 스윽 올려두던 날들. 스스로 느끼는 이름 석자의 존재감이 대단했는데.


내 이름으로 사는 것과 엄마라는 역할 안에 사는 것은 에너지가 다른 느낌이다. (어린아이의) 엄마로 사는 일은 사회로부터 자꾸 멀어지는 일로 느껴진다. 나에겐 자아를 돌보는 일도 중요한 데 육아에 체력과 에너지가 딸려 그럴 여력이 없는 게 현실이다. 시간을 열정적으로 쪼개 날 위해 뭐라도 좀 하라고 (스스로) 말하지만 그럴 동기는 점점 약해지고 인터넷 서핑으로 시간만 죽이는 날들이다.



2020.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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