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히 우리만을 위한 따뜻하고 또, 충만한 밤
'우리 오늘 바다 만나러 갈지도 몰라'
새벽 6시 20분쯤 생리통 같은 통증으로 잠에서 깼다. 가스가 차는 것 같기도 하고 변의가 느껴지는 듯도 하고. 지난주부터 밤이면 배뭉침이 잦고 바다가 아래로 머리를 미는 듯한 통증이 있었다. 몸이 점점 준비하는구나 싶어 아기침대도 봐 두고 스팀청소기도 주문했다. 이불빨래도 어서 해둬야지 계획을 세웠다. 사랑이는 예정일이 3일 지나 나왔었다. 둘째는 빠르단 얘기들이 있지만 아주 큰 차이는 없을 거라 생각해 여유로웠다. 날짜를 보니 예정일로부터 10일 전.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빠르진 않겠지 하며 진통 어플로 시간을 체크했다. 10분 내외로 규칙적인 수축이 있었다. 7시쯤엔 더 규칙적이었고 한번 파도가 오면 발가락이 말려들어갈 정도로 통증이 강했다. 7시 반쯤 한번 화장실에 다녀왔는데 사실 이때도 긴가민가. 사랑이때는 대여섯 번씩 화장실을 들락거렸었기에 더 그랬다.
여보는 전날도 피티 준비로 한 시간밖에 못 자고 저녁에 모임까지 다녀와 엄청 피곤한 상태였다. 깨울까 말까 고민하다 일단 샤워기를 틀어 감통하고 담당 조산사인 ㅈㄷㄹ 선생님께 연락을 해뒀다. 8시 40분쯤, 좀 더 제대로 화장실에 다녀오고 여전한 통증을 느꼈다. 여보에게 오늘 바다 만날지도 모르겠다고 얘길 했다. 사랑이도 깨고. 나는 슬슬 사랑이 내복 같은걸 챙기면서 시간을 체크했다. 움직이다 보니 파도가 좀 약해지는 것 같기도 해서 사랑이를 어린이집에 보낼까 말까 고민했다. 사랑이 아침 먹는 동안 시간 체크해보니 거진 7분 간격. 9시 50분, 조산사님이랑 통화한 뒤 출발을 결정했다.
집 떠나기 전 파도를 보내며 마지막으로 했던 일은 역시나 청소. 파도가 오면 호흡하면서 멈췄다가 지나가면 후다닥 움직였다. 이불 정리해두고 늘어둔 사랑이 장난감 치우고 청소기도 한번 돌렸다. 그동안 사랑이가 아빠한테 읽어달라고 책을 하나 꺼냈는데 그게 <동생이 태어났어요>였다. 아침에 ‘오늘 바다 만나러 갈지도 몰라’ 얘기하긴 했지만 사랑이도 느낌이 달랐을까. 세탁기 안에 불려둔 이불과 쌓인 빨래가 눈에 밟혔지만 그것까진 어쩔 수 없어 집 정리를 마치고 여보랑 사랑이랑 조산원으로 출발했다. 차가 좀 막혀 11시쯤 반포대교를 건넜다. 챙겨간 사과를 열심히 먹는 사랑이가 너무 귀여워서, 함께니까 더 힘을 낼 수 있겠지. 생각했다.
출산의 주도권은 나에게.
조산원에는 11시 반쯤 들어갔다. 너무 멀쩡히 걸어 들어가 다들 내가 진통 산모라고는 생각지 못하신 듯했다. 스스로도 평온하여 혹시 집에 다시 가야 하면 어쩌나 싶었다. 우선 204호로 들어가 태동검사를 하고, ㄱㅁㅈ 조산사님께서 내진을 해주셨다. (이분이 이날의 출산을 끝까지 도와주신 감사한 분이다.) 수축도 규칙적. 5cm가 열린 상태였다. 조산사님이 많이 열렸네요 그러시며, ‘우리 산모님 5cm인데 이렇게 평온하세요’ 말씀하셨던 게 기억에 남는다. 순탄한 출발이었다. 입원이 결정되고 12시쯤 밥을 먹었다. 사랑이때 워낙 많이 토하기도 하고 그때와 비교하면 화장실도 두 번 밖에 안 다녀와 실수할까 봐 이걸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스러웠다. 배는 고팠기에 몇 숟가락 먹는데, 이미 초코랑 젤리를 잔뜩 먹은 사랑이가 나보다 밥을 잘 먹어서 마음이 편해졌다. 급격하게 빠른 간격으로 파도가 오고 갔다. 아래에도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12시 30분쯤 사랑이와 욕조에 들어갔다. 둘째 산모라 빨리 나올 수 있다는 조산사님의 판단에 의해서였다. 확실히 따뜻한 물에 들어가니 몸이 부드럽게 이완되었다. 사랑이는 물에서 놀며 컵으로 내 등에 물을 부어주었다. 빨대컵에 담긴 오렌지주스도 먹여주었다. 물장난을 하다 심심했던 아이는 아빠와 잠시 놀러 나가고 나는 욕조에서 호흡에 집중했다. 아이 태몽 중에 보았던 푸른 바다와 물고기처럼 수영하던 몸의 느낌, 곁에서 빙글빙글 춤추던 돌고래 두 마리를 떠올리며 호흡했다. 떠올릴 때마다 기분이 좋고 이완이 잘 돼서, 출산 당일은 물론 임신 중 배뭉침이 있을 때나 가진통이 왔을 때도 떠올렸던 꿈이다. 그밖에 꽃봉오리가 활짝 피어나는 것과 민들레 씨가 후- 하고 바람에 날리는 장면, 묶여있던 리본이 스르륵 풀어지는 이미지들을 번갈아가며 상상했다.
사랑이 출산 때는 계속 토하기도 하고 기력이 없어 호흡이 서툴고 진행도 더뎠는데, 그때의 경험으로 의연하게 임할 수가 있었다. 통증이 강해질수록 금방 바다 만나겠구나 하는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수중실에는 작은 라디오로 찬양을 틀어두고 찬양 노랫말에 집중하며 기도하듯 호흡했다. 욕조에 쪼그려 앉았다가 엎드렸다 자세도 바꿔보고, 쳐지나 싶을 땐 천장에 달린 천에 기대 허리를 흔들어보기도 했다. 간간히 시계를 보며 ‘한 시 반까지 많이 진행시켜놔야지. (...) 벌써 두 시가 됐네. 분발해야겠다’ 하고 시간을 보냈다. 마치 동네에서 걷기 운동하다 ‘이제 5km 걸었네. 부지런히 걸어서 7km 채우고 가야지’ 하는 정도의 마음으로 대수롭지 않게 임했다. 두려움 없는 차분한 과정이었다. 출산의 주도권은 내게 있다는 자신감 덕분이었다.
맞아, 바로 이 느낌이었지.
통증은 3시쯤부터 몰아쳤다. 조산사님 연락으로 밖에 있던 여보와 사랑이가 다시 수중실로 들어왔다. 이때부터 호흡이 거칠어지고 머릿속 이미지에 집중이 잘 안됐다. 욕조에 등 기대는 받침이 있었는데 거기 이마를 대고 엎드려 나도 모르게 눈물을 줄줄 흘렸다. 그 순간 사랑이가 자기 먹던 초콜릿 과자 포키를 내 입에 거의 구겨 넣듯 열심히 먹여주어서 웃음도 나고 힘도 났다. 본격적으로 파도가 몰아치자 여보는 욕조로 들어와 내 몸을 받혀주고 사랑이는 왔다 갔다 하며 놀았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억 하는 소리가 자주 나왔다. 내가 그렇게 아파하는 걸 보여준 적이 없어 사랑이가 놀랄까 걱정했는데, 사랑이는 “엄마 어떡해~” 하면서도 물과 오렌지주스를 먹여주고 포키도 입에 넣어주며 의연하게 곁을 지켰다. 간간히 “아가 빨리나와~” 말하기도 했다.
하늘 본 자세로 힘주기를 하다 점점 골반 통증이 강해져 옆으로 누운 자세를 했다. 이때 붙들고 있던 여보 팔이 참 든든했다. 통증이 정점을 찍을 때 힘을 줘야 아이가 나올 수 있다는 걸 아는데, 한 번만 더 참고 힘을 주면 될 것 같은데, 그 ‘한 번 더’가 너무 아파 한번에 하질 못했다. 파도가 지나간 와중에 너무 답답해서 “아... 조금만 더 하면 될 거 같은데..” 그랬던 기억이 난다. 많이 진행되면서 조산사 선생님이 양막이 부풀었다 들어갔다 한다고 하셨다. 이때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사랑이때 힘주기 하다가 양막이 풍선처럼 펑- 하고 터졌는데 그 뒤로도 한참 걸려 이번에도 그러진 않을까 하는 걱정 하나. 터지지 않고 그대로 양막에 쌓여서 나왔으면 좋겠다는 바람 둘.
어쨌거나 계속 진행이 되면서 너무 아프니 누가 좀 대신 꺼내 주면 좋겠다 싶고 아 한 번만 더 힘주면 될 텐데 이게 안되네 싶어 계속 답답도 하고 그랬다. 그래도 해내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힘내자 힘내자 다 왔다 하나님 힘주세요’ 기도하면서 힘주기에 집중했다. 조산사 선생님들이 (이땐 임박이라 ㅂㅎㅈ 선생님도 계셨다) 자세를 잡아주시면서 굉장히 잘 끌어주셨다. 그러다 이제 곧 임박이구나 느낌이 오고 힘주기에 탄력이 붙으니 찢어지는듯한 가장 강한 통증과 함께 아래가 훅 열렸다. 머리가 나왔다. 사랑이가 세상에 나올 때 느꼈던 바로 그 느낌! 이제 됐다 싶었다. 후후후 호흡을 보내자 미끄러지듯 몸이 나왔다. 2월 13일, 오후 3:58분. 38주 4일 만에 바다가 2.76kg으로 세상에 태어났다.
출산은 치유의 과정
바다는 양막에 둘러싸여 내려왔고 나오자마자 한번 눈을 떴다고 한다. 내가 엎드린 자세였기에 태어나자마자 뒤에서 앞으로 들어 올려 안아줬다. 40주 전에 나와서 그런지 태지가 많아 하얗고 진득했다. 낯설면서도 따뜻한 감촉이었다. 바다는 한번 살짝 으앙-하더니 울지도 않고 내내 편안하게 안겨있었다. 기분이 너무너무 너-무 좋고 시원하고 개운했다. 나오자마자 ‘바다야 고생했어 잘했어 사랑해’ 말해줬다. 여보와 함께 또 한 번의 출산을 이뤄낸 게 기쁘고 탄생의 순간을 사랑이와 함께 했다는 게 좋았다. 사랑이는 바다가 태어나는 순간을 정면으로 목격했다. 직접 보니까 어땠냐고 물으니 “깜짝! 놀래써. 엄마 엉덩이에서 아가가 나와써. 엄마 뱃속에 있다가 엉덩이로 나와써. 사랑이가 (엄마한테) 물도 주고~ 오렌지주씨도 주고~ 초코도 주고~ 그래써” 하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엄마를 도와줬다는 게 스스로 자랑스러운 모양이었다. 나중에는 ‘엄마가 끙~ 했더니 엉덩이로 아가가 쑥! 나와써’ 하고 묘사하기도 했다.
바다와 나의 체온이 떨어지지 않도록 수건으로 몸을 감싸고 수중실에서 206호로 옮겼다. 206호는 2017년 10월 30일, 사랑이가 태어났던 곳이다. 그때도 수중 출산을 계획했는데 힘 조절 실패로 방에서 낳았다. 그땐 출산하며 느낀 개운하면서도 황홀한 느낌과 수중 출산에 대한 아쉬움으로 낳자마자 ‘아! 둘째는 꼭 물에서 낳아야지’ 하는 생각을 했었다. (출산하자마자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다니!) 그런데 다시 돌아보니 방에서 태어나든 물에서 태어나든 출산의 방식은 결국 아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때도 수중실에 들어가긴 했지만 진행이 잘 안됐으니까. 처음엔 그게 ‘실패’라고 생각했는데 출산에 실패란 없는 것 같다. 단지 아이가 세상을 마주하는 방식이 다른 것일 뿐. 그걸 두 번의 출산을 경험하고서야 알았다. 내게 출산은 실패가 치유되는 과정이기도 했다.
나는 침대에 누워 맨 몸으로 아이를 안아주면서 태맥 멎는 것을 기다렸다. 태반 반출은 시간이 조금 걸렸는데 사랑이가 후처치 하는 걸 보더니 “태반 나와써” 하고 말해서 깜짝 놀랐다. 물론 실제로는 태반이 나오기 전이었지만 그림책 보며 아가 나온 뒤에는 태반이 나온다 했던 얘기를 기억하는 거였다. 두 번째 출산이라 출혈이 더 많아 나는 주사 한 대를 맞았고 열상을 확인했다. 조산사님이 꼼꼼히 봐주셨는데 바깥쪽도 안쪽도 열상 하나 없이 깨끗했다. 아마도 아이가 양막에 쌓여 나왔기 때문일 거라고. 사랑이때는 두 바늘 정도 꿰맸는데 그런 과정이 없으니 더 편안하고 좋았다.
온전한 우리의 시간
후처치하는 동안 사랑이에게는 동생이 준비한 선물을 주었다. 임신 중에 종종 ‘바다가 사랑이 만나러 오는 날 선물 준비한대~ 뭐 받고 싶어?’ 하면 ‘삐뽀차(구급차)! 삐용차!(경찰차)’ 하길래 커다란 구급차면 되겠지 하고 구급차를 준비했다. 그리고 최근에 소방차를 더 좋아하게 된 사랑이를 위해 타요 시리즈의 소방차 프랭크도 준비. 구급차는 바다가 준비한 거라고, 소방차는 아빠가 사랑이가 엄마 너무 잘 도와줘서 주는 거라고 말해주었다. 엄청 좋아하겠지 내가 더 두근두근하며 쳐다보는데... 선물을 뜯어본 사랑이가 어쩐지 실망스러운 얼굴로 “삐용차는?” 하며 되물었다. 자기 생각엔 경찰차까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었던 모양이다. 다행히 할머니의 선물로 준비한 경찰차가 있어 “어; 그건 할머니가 사랑이 만나러 오실 때 주신대” 하고 황급히 마무리 지었다. (실제로 가족들이 만나러 올 때마다 ‘엄마를 잘 도와줘서 주는 선물’로 타요 경찰차와 구급차, 불도저를 주었는데 사실 모두 엄마가 준비한 것들이었다. 동생이 생겨서 느끼는 박탈감보다 엄마를 도왔다는 성취감을 견고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 마음이 전해져서인지 사랑이는 지금도 매일을, 아침에 눈뜨면서부터 잠들 때까지 이 자동차들을 끼고 산다.)
5시에 첫 수유를 하고 식사가 나왔는데 너무 맛있었다. 그냥 내내 다 좋았다. 탯줄은 6시쯤에 출산 계획서에 적었던 것처럼 느리고 천천히 잘랐다. 원래 사랑이랑 아빠랑 같이 자르는 걸 생각했는데 사랑이는 노트북으로 타요본다고 몰입해있어서 그냥 아빠가 잘랐다. 간단한 진찰을 하고 이후로는 온전히 우리의 시간. 셋이서 맞이하는 탄생의 순간이 평화롭고 순조로워서 역시 자연주의 출산이네 싶었다. 사랑이 출산 때 총 14시간 진통을 하고 내내 토하며 버텼던 것 때문인지 여보는 거저 낳은 것 같다고 했다. 나 역시 그 생각에 동의. 코로나19로 조산원 면회가 금지되어 어른들께는 영상통화로 소식을 전했다. 사랑이는 외할머니에게 자기가 직접 아가를 보여준다며 핸드폰을 들고 “함머니이! 아가가 태어나써!! 아가가 태어나써어!” 하며 방방 뛰었다.
밤에는 여보가 사 온 귤을 먹었다. 사랑이에게도 귤을 건네니 자기가 먹지 않고 바다 옆에 살포시 놓아준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 귤이 사랑이가 바다에게 준 첫 선물이었다. 자려고 누워있는데 옆에 있던 사랑이가 뜬금없이 그런다. “사랑이가 기도하꺼야”. “응? 누구 위해서?”. 얼굴 앞에 두 손을 모으더니 말했다. “아가를 위해서 기도하꺼야”. 그렇게 조용한 중에 태어난 아이를 위한 첫 기도를 드렸다. 감사로 가슴이 떨렸다. 새로운 가족의 탄생. 온전히 우리만을 위한 따뜻하고 또, 충만한 밤이었다. 그렇게 네 식구의 첫날이 지나갔다.
2020. 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