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의 이야기들
불 끄고 누워있는데 사랑이가 뜬금없이 “엄마 토마토 밥은 하지 말아 줘” 그런다. 토마토밥을 한 적이 없어서 “토마토밥? 토마토카레 말하는 거야?” 하니까 맞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지난주 금요일에 토마토카레를 했는데, 사랑이가 거의 먹질 않았었다. 그땐 그냥 입맛이 없나 생각했는데 정말 맛이 없어서 안 먹었던 모양이다. 다시 한번 “토마토카레는 안 먹을래” 말하길래 너무 웃겨서 알겠다고 하고, “그럼 오늘 오이토마토샐러드는 어땠어?” 물으니 “음~ 오이토마토샐러드 아주 맛있었어” 한다. 아까 예전에 한참 잘 먹던 가지 튀김도 해줬는데 그건 먹어보고 이제 입에 안 맞는지 “안 먹을래” 한다. 어제 소고기도 질긴 등심은 안 먹고 부드러운 살치살은 잘 먹던 사랑이다. 아무거나 잘 먹는 거 같아 보이지만 알고 보면 입맛 예민해서 자기 좋아하는 거만 와구와구 잘 먹는 너. 덕분에 요리를 더 신경 써야겠네 싶고.. 언제 이런 표현까지 할 정도로 컸나 싶어 귀엽고 웃기기도 하고 대견스럽고 그랬다.
2020.05.29
1
한 동안 감기를 모르고 지내던 사랑이에게 코감기가 찾아왔다. 그제 놀이터에서 반팔로 열심히 뛰어놀던 탓이었을까. 새벽녘 이불을 덮지 않고 맨다리로 잠든 탓이었을까. 어제부터 콧물이 흐르더니 오늘 새벽에는 열이 끓어 끙끙 앓았다. 아침엔 좀 떨어지긴 했지만 이대로 등원은 무리지 싶어 집에 데리고 있었다.
밥 먹고 설거지하는데 사랑이가 내 옆에 의자 가져다 놓고 앉아서 우유 마시다가 조용히 “엄마가 일 끝나고 얼른 사랑이랑 놀아줬으면 좋겠다” 말한다. 그 말이 괜히 미안해 후다닥 끝내고 열심히 놀아주다 낮잠을 재웠다. 혼자 둘을 봐야 해서 좀 걱정이었는데 그 사이 바다가 옆방에서 잠을 너무 잘 자줘서 다행이었다. 사랑이는 땀을 쭉 빼며 두 시간 좀 넘게 낮잠을 잤다. 깨자마자 엄마가 안 보여 서러웠는지 갑자기 통곡을 한다. 사랑이를 달래며 안고 있는데 축 쳐져 있던 사랑이가 “사랑이는.. 엄마를 너무 좋아해..” 하면서 힘 없이 말했다. 얼마나 힘들면 엄마를 그렇게 찾았을까. 안쓰럽고 또 고맙고 그랬다.
2
이제 또바기를 떠나는 ㅇㅇ에게 지난 금요일에 스케치북 선물을 받았다. 거기에 그림을 그리는데, 사랑이가 이거 ㅇㅇ형이 준거라고 한다. 그래서 “ㅇㅇ형은 이사 가서 이제 또바기 못 온대” 했더니 “아니야~ 사랑이가 옷 입고 양말 신고 신발 신고 나가서 찾아볼게.” 말한다. 그럼 ㅇㅇ형 찾을 수 있냐고 물으니 확신에 차서 “응!” 하는 사랑이. 아직은 안녕이 뭔지 잘 모르는 사랑이지만 언젠가는 이 아이도 안녕의 의미를, 안녕의 슬픔을 알게 되겠지.
3
색종이 뭉치를 책장 넘기듯 이리저리 넘겨 보던 사랑. “여기에 글씨 써줘” 한다. 그래서 뭐라고 써 줄까 물으니 “음...” 하고 한참을 고민하다 “사랑이를 사랑한다고 써줘” 그런다. 그런 표현에 다시 한번 쓰러진 엄마.
4
자기 전 갑자기 시작된 상황극. 나보고 문 밖으로 나와서 띵동띵동을 하라고 한다. 그럼 선물을 주겠다며 지시를 한다. 그래서 안방 문을 나섰다가 똑똑 문을 두드리며 “사랑이 있어요?” 했더니 장난감 자동차가 잔뜩 들어있는 상자를 건네며 “네~ 여기 초콜릿 선물을 줄게요~” 그런다. 덧 붙이면서 “밥 먹고 먹어요~” 그러기에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휴지심으로 만들어준 자동차 주차장을 주며 이거는 밥이고, 자동차 상자 속 자동차는 초콜릿이라고 한다. 열심히 암냠냠 하면서 밥을 먹었더니 자동차를 주면서 “자 이제 초콜릿 먹으세요~ 기분도 좋고 그래요~” 한다. 상황극에서는 묘하게 계속 존댓말을 쓰는 것도 웃기고 초콜릿은 밥 먹고 먹는다는 규칙을 놀이 속에서도 지켜주는 게 귀엽고 그랬다.
5
“사랑이는 안 아프고 또바기 가는 게 좋아, 아프고 엄마랑 있는 게 좋아?” 물어보니 “안 아프고 또바기 ㄱ... 아니 엄마랑 있는 게 좋아~” 그런다. 그래, 너도 안 아프고 엄마랑 있는 게 제일 좋겠지. 감기 때문에 좀 불편해하긴 했어도 잘 놀아줘서 고마웠던 하루다. 새벽에 끙끙 앓는 게 너무 안쓰러워 내일은 부디 감기가 똑 떨어졌으면 하는 마음. 아무리 아파도 이틀 밤 앓고 나면 괜찮아지던 사랑이니까 내일 아침은 개운하게 맞았으면 좋겠다.
2020.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