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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원 Jun 19. 2020

자꾸 생각해본들 속상함이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두 아이 모두 아팠던 밤에.


저녁에 바다가 엄청난 양의 응가를 했다. 얼마나 많이 했는지 등까지 넘쳐흐를 정도. 엄마도 나도 놀랐는데 그걸 본 사랑이가 깔깔 웃으며 들뜨고 방방 뛰기 시작했다. 바다를 1차로 씻기고 벗긴 김에 목욕을 시키려 안방에서 준비를 했다. 그때 작은방에서 들리는 쿵! 소리. 잠시 정적이라 사랑이가 놀다 뭐가 떨어졌나 했다. 곧이어 들린 울음소리. 놀라서 달려가니 사랑이가 너무 아파 소리도 못 내고 울고 있었다. 안아주며 어디에 부딪혔냐고 하니 아프다고 아프다고 울었다. 처음엔 볼 쪽이 부딪힌 건가 했는데 잠시 뒤 눈꼬리 쪽에 피가 흘렀다. 상황을 보니 뛰다가 이불에 발이 걸리면서 엎어져, 티비장 모서리에 얼굴을 부딪힌 거였다. 제일 세게 부딪힌 눈꼬리 쪽이 피가 난 거였고.


놀랐지만 내가 당황한 기색을 비추면 아이가 더 놀랄까 아무렇지 않게 사랑이를 달래주었다. 얼굴을 살피는데 눈두덩이가 살짝 부었고 상처가 아파 보였다. 사랑이가 멍든 상처는 어릴 적부터 종종 있었지만 이렇게 찢어지는 상처는 거의 없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바다 씻기는 건 엄마한테 맡기고 사랑이한테 붙어있을 걸, 안방에 가지 말고 작은방에 있을 걸, 1분만 더 늦게 움직일 걸, 왜 사랑이를 혼자 뒀을까, 진작에 못 뛰게 했어야 했는데 저 이불은 왜 저렇게 있었나. 아파서 우는 아이를 보며 내가 더 속상해 하나마나한 후회만 했다.


사랑이는 소독약을 바르는데 따가워 울고 연고 바르는데 느낌이 이상했는지 울고.. 동시에 내 속도 타들어갔다. 그래도 꿰맬 정도로 찢어진 게 아니라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살살 달래 습윤밴드까지 붙이고 거울 앞에 데려가 이렇게 반창고 붙여 치료하는 거라고 보여주었다. 피부가 찢어지면 그 속에 흐르던 피가 ‘앗! 구멍이 생겼네. 저기로 나가야지~’ 하면서 자연스럽게 흐르는 거라고, 그럴 땐 세균이 더 들어가지 않게 소독을 하고 연고 바른 뒤 반창고를 붙이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다음에 언젠가 또 피가 흐르는 상처가 날 수 있고, 그때 조금 더 별일 아닌 듯, 의연하게 생각할 수 있으면 해서 노래도 만들어 불러주었다. “사랑이가~ 상처가 나서~ 피도 나고 아팠어요~ 엄마가~ 소독을 하고 슥삭슥삭 연고를 발라줬어요~ 반창고를 붙였더니 아픈 게 나아졌어요~ 반창고를 붙여둬서 이제 금방 나을 거예요~”


사랑이는 노래가 마음에 들었는지 몇 번이나 다시 노래를 불러달라고 했다. 퇴근한 아빠랑 목욕을 하면서 한번 더 상처를 씻고, 다시 소독하고 연고를 바른 뒤 습윤밴드를 붙였다. 충분히 설명해준 덕인지 두 번째 붙일 때는 울지 않고 차분히 잘 기다려주는 사랑이었다. 밴드 붙인 얼굴을 보며 더 뾰족한 모서리에 부딪히지 않아 다행이다, 눈에 상처 난 게 아니라 다행이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이를 재우고 어린이집 노트에 저녁의 일을 적고, 혹시 내일 밴드가 떨어지면 다시 좀 붙여주십사 부탁드린다 덧붙였다. 상처 크기에 맞게 습윤밴드를 여러 장 잘라두며 더 크게 다치지 않아 다행이다, 사랑이가 더 많이 놀라지 않아 다행이다, 생각했다.




등원 준비를 마치고 돌아오니 자는 동안 사랑이가 땀을 흥건히 흘렸다. 사랑이의 목과 얼굴을 손수건으로 닦아주며 밴드가 떨어지지 않게 살짝 눌러주었다. 옆에 누운 바다는 다른 날보다도 자주 깨서 계속 토닥여주어야 했다. 사랑이 감기가 낫자 그게 바다한테 옮아갔는데 조그만 아이가 코를 답답해하고 열이 나 뜨끈하다. 기침도 가끔 한다. 사랑이는 돌 때까지 거의 아픈 기억이 없는데, 둘째는 이렇게 뭐든 빨리 시작하는 모양이다. 많이 불편할 텐데 그래도 크게 보채지 않고 잘 버텨주고 있다.


사랑이는 얼굴 상처로, 바다는 감기로 둘 다 아파서 속상한 밤이다. 자꾸 생각해본들 속상함이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내가 이렇게 이렇게 했으면 안 아팠을까’ 그런 생각을 자꾸 하게 된다. 사랑스러운 내 아이들, 몸에도 마음에도 티끌만 한 상처 하나 없이 키우고 싶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마음만은 그렇다. 속상한 와중에도 양 옆에 아이 둘 끼고 있으니 든든하고 가슴이 벅차다. 이 모든 감정들을 아이를, 아이들을 낳기 전엔 몰랐다. 사랑이가 뭐라고 잠꼬대를 하는 데 그 소리가 또 귀엽네. 내일도 힘내서 아이들 보려면 나도 이제 그만 마음의 짐 내려놓고 자야겠다. 사랑이 얼굴의 상처가 오래지 않고 곧 나았으면, 바다 감기가 언제 그랬냐는 듯 가뿐하게 떨어졌으면 좋겠다. 지금은 힘들지만 잘 겪어내고 나면 더 튼튼해질 테니 조금만 힘내야지. 아이들도, 그리고 나도 힘내자.  



2020.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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