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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 Aug 14. 2024

내 생애 첫 '마임'공연

셋째와 넷째를 지역 예술촌에서 하는 연극캠프에 보냈다. 짙은 내향형 인간인 나는 방구석 활동만 하는 터라 지역 내 정보엔 캄캄인데, 함께 독서모임을 하는 친구가 링크를 보내줬다. 여름이면 바닷가나 계곡 물놀이가 다였는데. 연극캠프라니. 시골에선 맘먹고 도시로 나가지 않으면 잘 경험할 수 없는 일이라 메시지를 확인하자마자 신청 버튼을 눌렀다. 다음 주면 개학인데, 특별한 경험으로 방학을 마무리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네 명의 아이들 중 낯가림이 제일 심한 아이가 셋째인데 흔쾌히 가보겠다고 해서 고맙고 기특했다. 넷째는 뭐, 매일 몸이 근질근질한 아이라 어디라도 오케이.


캠프 신청을 하니 주최 측에서 <마임의 밤>이라는 공연에 초대해 주셨다. 관람료가 있는데 캠프신청 부모에겐 무료로 객석을 내어 주신다고 했다.  아이들과 함께 보는 공연이라 캠프 장소도 궁금하고 해서 친구와 함께 갔다. 폐교를 손봐서 만들어 놓은 공간에 입이 떡 벌어졌다. 운동장에 심긴 가지런한 잔디와 학교를 둘러싼 조명, 그리고 예술적 기운이 뿜뿜 쏟아져 나오는 주황색 건물. 내부의 구조는 같아도 그 안을 채우고 있는 공기가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부석사라면 동네 놀이터 가듯 아이들과 다니던 곳인데, 그 길목에 이런 곳이 있는 줄은 몰랐다.


시간이 되어 들어가 앉으니, 목에 각자의 이름표를 단 아이들이 총총총 줄 맞춰 걸어 들어왔다. 집도 학교도 아닌 다른 곳에서 한 발 떨어져 아이들을 보면 왜 그렇게 애틋한 마음이 드는 건지. 오전 9시에 보내고 오후 7시 30분에 다시 만났는데 며칠을 떨어져 지낸 것처럼 반가웠다. 집에선 매일 엎치락뒤치락 싸우기 바쁜데. 의젓하게 걸어 들어와 눈이 마주치니 픽 웃는 아이가 귀여워 웃음이 났다. (역시 인간은, 아니 부모는 망각의 동물이다. 그래서 애가 넷이 됐나?)



조명이 꺼지고 고요함 속에 시작된 공연. 맨 얼굴에 위아래 모두 검정 옷을 입은 마임이스트는 오로지 몸짓과 표정만으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물 위를 유영하듯 섬세한 몸동작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몸이 저렇게나 자유로울 수 있다니. 허공을 떠다니는 손짓과 자연스레 바뀌는 표정들. 말없이 이야기되는 기쁨과 환희, 슬픔과 고독, 비틀 거림 와 음울함, 절망과 흐느낌. 특히나 이태건 마임이스트의 눈빛. 소년을 이야기할 때 보였던 설렘과 환희로 일렁이던 맑은 눈빛은 해질 무렵의 윤슬 보다도 더 반짝였다. 아름답다는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할 그 눈빛이 지금도 잔상으로 남아 아른거린다. <인생>이라는 주제로 했던 이야기는 또 어떠한가. 어떤 말 보다도 더 울림 있던 몸짓. 시간을 넘나들던 표정. 인간의 몸이 이토록 경이로운 것이었나 싶을 정도로 나는 온 마음을 빼앗겼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없이 혼자 몸을 움직인 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자신의 움직임과 표정으로 무대를 채우고 그 무대로 관객의 마음을 끌고 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배우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도 감동이었다.  말없이 말하기 위해 보냈을 치열한 시간은 내 상상의 범위를 넘어선다. 그건 그 순간에 무대에 섰던 배우가 아니라면 누구도 모를 거다.  



마임은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들더니 집으로 돌아왔을 땐 가만히 앉아 나를 돌아보게 한다. 나를 펼쳐두고 고르게 살피도록 이끈다. 자유로운 몸과 무수히 쏟아냈을 내 목소리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환희에 찬 배우의 표정을 보면서 슬프면서도 설렜던 내 마음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늘 혼자여도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결국엔 사람에게서 위로를 얻고 살아가는 나에 대해서 생각하고, 진짜 혼자여도 괜찮은 건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희로애락을 넘나들던 배우들의 표정을 보면서 내 안에 있을 무수한 얼굴에 대해서 생각했다. 대부분 어둡고 우울에 가닿은 얼굴이겠지만 그것들을 조금씩 들춰내고 찾아보면 내게도 기쁨과 환희로 물들었던 얼굴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니 있을 거다. 하루도 빠짐없이 괴롭고 우울한 인생은 아니었으니까. 조경란 작가가 말했다. "어지러운 꿈 속에서 잠을 깨는 날이 많았지만 다정한 소리들도 많았다고. 그걸 기억한다고."  

나도 그런 것들을 기억하며 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 빛나던 배우의 눈빛처럼 어딘가에 있을 내 안에 기쁨과 아름다움 들을.


물론 그렇다고 내가 기쁨이 넘치는 인간이 되지는 않을 거다. 그런 건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내 안에 오래된 고통과 우울이 나를 보잘것없이 만드는 약점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마 나는, 지금처럼 앞으로도 사람과 세상을 두려워하면서 사는 사람일 거다. 그런 건 아무 상관이 없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이렇게 살아가고 있으니까. 그저 삶을 어둠으로만 범벅칠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내 방식대로 존재하되 가끔 꺼내어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순간이 있다면 나는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오늘의 공연도 그런 순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 어둠과 적막의 무대에서 건네던 무언의 이야기들. 그 아름다움을 오래 간직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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