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입속을 헤집던 면봉으로 콧속 깊숙이 회오리를 일으켰다. 곁에서 보고 있던 내가 다 아찔했다. 검사를 마친 딸은 뇌 속까지 면봉을 찔러넣는 것 같았다고 했다. 비슷한 증상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 앉아 우리의 이름이 다시 불리기를 기다렸다. 결과는 예상대로 B형 독감이었다. 의사는 우리가 어제 해외에서 들어와서 아직까지 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다는 말을 덧붙였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비싼 진료비와 약값까지 우리 몫이었다. A형 독감도 앓더니 B형 독감이라니! 식구들 중 유일하게 독감 예방접종까지 했건만! 역시 둘째 딸은 최신 유행하는 것들은 다 따라 해야 직성이 풀리나보다.
4학년처럼 보이는 6학년인 둘째 딸은 초등학교의 꽃인 수학여행도 못 갔다. 며칠 전부터 옷을 사고, 캐리어까지 마련하여 짐을 꾸렸는데 수학여행을 떠나기 하루 전, A형 독감 진단을 받았다. 출발하고 나서 아팠으면 어쩔뻔했냐며 위로했지만 여간 속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여행의 설레임으로 꽉 차 있던 노란색 캐리어는 마음을 잡지 못하는 딸 아이처럼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고 한동안 아픈 딸과 함께 방을 굴러다녔다.
떠나지 못한 수학여행을 만회하기 위해 이번 방학에는 대만으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 수학여행 버스에 실리지 못했던 노란 캐리어는 이번에는 비행기에 실려보고자 안간힘을 쓰는 듯 보였다. 여행을 떠나기 며칠 전부터 캐리어에는 옷이며 우산, 인형들이 채워지기 시작했고 여행 준비 브이로그에 까지 등장하는 호사를 누렸다. 한 번 싸 본 경험이 있어서인지 딸은 작은 손으로 야무지게 캐리어를 채워 나갔다. 똘똘 말려 질서정연하게 줄을 선 옷과 각종 사진 찍기용 물건들은 이번에는 꼭 떠나겠다고 모두 함께 결의를 다지는 것 같았다.
대만으로 떠나기 전날, 가슴과 목이 자꾸 간질간질하다던 남편이 B형 독감 진단을 받았다. 예상치 못했던 일이 벌어지며 나는 적잖이 당황하였다. 하지만 이미 출발이 하루 앞으로 다가와 있었고 우리 식구뿐 아니라 부모님과 동생네 가족도 함께 가기로 했기에 남편을 남겨두고 떠나는 것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가는 해외여행이고 부모님과 동생네 가족까지 모두가 함께 가는 기념비적인 여행인데 우리 집은 아직 격리해제가 덜 된 코로나 시국 같았다.
남편에 대한 미안한 마음까지 캐리어에 실어 대만으로 향했다. 들뜬 둘째는 공항 패션을 위해 자기 스타일의 의상을 새로 마련하고, 어울리는 머리 스타일까지 요청했다. 공항에서는 두 살이나 어리지만 자기와 키가 비슷한 사촌 동생과 함께 각종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어댔다. 대만에 도착한 첫날, 대부분의 패키지 여행이 그렇듯 공항에 내리자마자 빠듯한 일정이 시작되었다. 사람이 너무 많아 앞으로 걸어 나갈 수 없는 복잡한 번화가와 야시장을 돌고 호텔로 돌아왔다. 아빠와 가장 다정하게 지내던 둘째는 그 길로 침대와 한 몸이 되어 아프기 시작했다.
코를 계속 풀고 기침을 했으며 급기야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둘째는 하도 코를 풀어 코가 헐고, 작은 몸에 이불을 똘똘 말고 캐리어 속에 든 옷마냥 잠이 들곤 했다.모두의 여행을 망칠 수 없다고 생각한 우리는 자발적 고립을 선택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좀 쉬면 나을 줄 알았다. 하지만 다음 날이 돼도, 그다음 날이 돼도 딸의 증상은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더 심해졌다. 우리는 모두가 투어를 떠나 텅 빈 호텔 방에 앉아 창밖의 변하지 않는 풍경만 바라보았다. 우리의 시간은 약이 다 된 시계처럼 거기서 멈춘 것만 같았다.
또래에 비해 작은 딸은 요즘 들어 잘 먹고 운동도 해서 우리의 걱정을 덜어주고 있었다. 몸무게도 늘고, 키도 커서 매일 체중계에 올라서는 일이 즐겁기까지 했다. 자란 키가 줄기야 하겠냐만 찌워놓은 살이 다시 줄어들까 봐 노심초사했다. 아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호텔 주변의 편의점과 포장 가능한 음식점을 돌며 딸의 입맛에 맞는 대만 음식들을 찾는 것이었다. 대만을 느끼러 왔으나 나 자신이 엄마임을 절실히 느낀 시간이었다.
지금은 키도 몸무게도 작은 둘째지만 태어날 때는 남부럽지 않은 3.72킬로에 53센티미터였다. 큰 애가 4.2킬로로 태어나서 둘째도 너무 클까 봐 조심한 것이 3.72킬로였다. 내 몸무게는 크게 오르지 않았지만 아이들은 뱃속에서 잘 자라주었다. 둘 다 자연분만으로 낳아 모유수유까지 했었다. 열심히 이유식 책을 펼쳐보며 하루가 다르게 새 메뉴를 먹이고 정성으로 이유식을 만들었다.
우량아로 태어나 모유를 먹고, 정성 가득한 이유식을 해서인지 큰 아이는 나의 키를 능가한지 오래다. 반면 똑같이 먹이고 키운 작은 아이는 평균보다 크게 태어났으면서도 초등학교 입학부터 맨 앞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몸도 마음도 탄탄하고 하는 일마다 탄탄대로처럼 열리라고 태명을 ‘탄탄이’라고 지었었다. 그런데 태명이 무색하게 잘 먹는다 싶으면 화장실로 직행했고 척추측만증까지 앓고 있다. 이도 부정교합이라 치과 검진을 방학마다 하고 있고, 피부도 좋지 않아 어릴 때부터 아토피냐는 소리를 많이도 들었다.
하지만 타고난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담대한 마음도 우리 집 제일이다. 자신이 받은 사랑만큼 자랐다면 키가 벌써 2미터를 넘은 지 오래일 것이다. 첫째가 공부하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할아버지, 할머니께 안부 전화드리는 걸 자주 잊는 반면, 둘째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기다리시기도 전에 안부 전화를 드린다. 제 언니보다 공부에는 관심이 덜하지만 생일이나 기념일이 되면 자기가 모은 용돈으로 선물도 선뜻 사주고 앞으로 우리에게 무엇을 해 주겠다는 공약도 시시때때로 남발하여 우리를 웃게 만드는 장본인이다.
나는 매일 우리 가족 중에 내가 가장 작아지는 날을 꿈꾼다. 둘째가 더 이상 내 품에 쏙 안기지 못하게 되기를, 더 넓고 더 높은 곳에 서서 당당히 나를 내려다보기를 바란다. 둘째가 자라는 만큼 내 키는 줄어들겠지만 나를 넘어서는 아이를 보면 안도할 것 같다. 몸도 마음도 탄탄해진 아이가 걷는 길이 언젠가 아이를 부르던 이름처럼 탄탄대로였으면 좋겠다. 아이보다 작아진 나는 그때도 여전히 아이 곁에서 웃어주고 손잡아주고 싶다.
그녀가 탄탄대로를 걸어 내게로 온다. 내가 그녀를 안아주는 대신 그녀의 품에 내가 안긴다. 바라던 시간을 맞이한 나는 고요히 미소 지을 것이다. 작아진 내가 훌쩍 커버린 그녀의 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