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 413-13
어스름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벌써 엄마의 부엌은 분주하다. 찌개가 보글보글 끓고, 밥은 김을 모락모락 내며 자신이 새 밥임을 증명하고 있다. 갖가지 반찬은 아버지의 입맛에 안성맞춤임을 자랑하고 있다. 엄마는 갓 구운 김에 따끈한 밥을 싸서 접시에 놓고 이미 세상 속으로 걸어 나갈 준비를 마친 아버지는 엄마의 정성을 먹는다. 그때 내 이름이 아버지의 입에서 크게 터져 나온다.
대학생이던 나는 아직도 청소년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한 미성숙 그 자체였다. ‘청소년’이라는 말에서 겨우 ‘소’ 하나를 빼는 일이었는데도 ‘청년’의 세계로 들어서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새로운 일에 도전할 때는 늘 많은 생각이 행동에 앞서서 실천까지 긴 시간이 걸리거나 중도에 포기하기 일쑤였다. ‘하고 싶다’는 생각보다 주변 상황을 살피기 바빴고 많은 일들은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미처 세상 밖으로 나와보지 못하고 사라졌다. 누군가가 정해 놓은 틀 안에서의 삶에 익숙해져 있던 내게 그 너머의 세상은 용기가 필요한 곳이었다.
그런 나의 성향에 비해 운전면허를 따는 일은 비교적 쉽게 실행에 옮겼던 것 같다. 대학생이 되면 다들 운전면허를 따기에 나도 시류에 편승해 땄을 뿐이다. 차는 없지만 운전면허증은 꼭 있어야 할 것 같았고 누구나 다 가지는 자격증을 나만 못 가지면 안 된다는 조급함이 작용했는지도 모르겠다. 주행시험은 물론이거니와 이론도 어떻게 붙었는지 아직까지 의문이다. 무슨 시험이든 열심히 공부하는 스타일인 내가 분명 열심히 공부했던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이론 시험에 나오는 용어들은 처음 만난 소개팅남처럼 낯설고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던 기억이 또렷하다. 소개팅남에게는 호기심이라도 느껴지지 운전면허 시험에서는 일말의 호기심조차도 느낄 수 없었다.
당시에 나는 운전면허 학원을 다녀서 실기의 경우, 장내에서 선생님이 연습을 시켜주었다. 그런데 선생님이 가르쳐 주는 것들은 생소하기만 했고 여러 번에 걸쳐 설명해 주어야 할 것 같은 것들도 설명 한 번이면 끝이 나 버렸다. 1톤 트럭에 오롯이 홀로 남겨진 나는 그게 바른 방법인지 아닌지도 모른 체 선생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나만의 방식으로 아무렇게나 운전을 해 나갔다. 게다가 그때는 1종 보통의 차량들이 모두 수동이었고 시험을 칠 때 내가 탔던 차는 어찌나 핸들이 빡빡한지 팔이 떨어질 뻔했다.
아무튼 나는 우여곡절 끝에 두 번 만에 운전면허시험에 합격했다. 막상 운전면허를 따긴 했지만 운전면허는 아무 곳에도 쓸데가 없었다. 운전면허증은 소위 장롱면허가 되어, 있지도 않은 장롱 속에서 고요히 잠을 자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겨울날, 아버지가 불현듯 나를 불렀다. 운전면허를 땄으니 아버지가 아침 식사를 하고 있을 때 집 앞 골목에 주차해 놓은 차에 미리 시동을 걸라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겨울이면 꼭 시동을 몇 분 정도 걸어두었다가 출근하시곤 했는데 그 일을 전문 자격증을 가진 나에게 맡기신 것이었다.
운전면허를 땄는데 겨우 차에 시동 거는 일을 한다는 것이 다소 하찮게 여겨졌다. 하지만 어차피 나보고 운전을 하라고 해도 못 할 것 같았다. 운전면허증은 운전을 할 수 있는 자격을 주는 것일 뿐 운전을 잘하는 사람한테 주는 게 아니니까. 그날부터 나는 열심히 차에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아직 아침이 시작되지 않은 새벽, 두꺼운 파카를 입고(그때만 해도 패딩이라는 말이 없었다.) 대문을 나선다. 열선도 부착되어 있지 않은 차디찬 운전석 시트에 엉덩이를 붙이고 시동을 건다. 수동이었던 아버지의 차에 어떤 방법과 수순으로 시동을 걸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춥고, 엉덩이가 차가웠던 기억밖에는. 식사를 마친 아버지는 내가 이미 시동을 걸어놓은 차에 타시자마자 서둘러 출근하셨다. 운전면허증을 가진 내가 하기엔 시시한 시동 걸기가 아버지의 출근 시간을 단 몇 분이라도 단축시켰다. 그거면 된거지 뭐!
나의 운전면허증은 그 후로 오랫동안 동면에 들어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다른 일을 할 때도 운전은 하지 않았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도 운전은 하지 않았다. 육아휴직을 했다가 복직하며 남편의 권유로 어쩌지 못해 운전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간 하다가 직장 위치가 바뀌면 또다시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훨씬 마음이 편했다. 나는 조수석을 좋아할 뿐, 운전석을 차지하고 싶은 욕심 따윈 없었다.
어찌 보면 평생 동안 나의 운전면허증이 가장 쓸모 있었던 때는 이른 새벽 출근하는 아버지를 위해 쓰여질 때가 아니었나 싶다. 어둑어둑한 골목. 아버지의 출퇴근을 책임져 줄 차에게 나의 시동이 그를 다시 잠에서 깨워줄 모닝콜이 되어 준 셈이다. 가끔 그 시절이 떠올라 로드맵을 찾아본다. 가장 오래된 연도로 설정하여 그 골목으로 간다. 정확히 그 집 앞으로 가기 위해 화살표를 누르며 조금씩 옮겨간다. 차 2대가 겨우 교행 되던 골목. 그 집 앞에 차 한 대가 서 있다. 새벽을 가르며 출근하던 아버지의 젊음이 고스란히 거기 있다. 젊은 아버지가 금방이라도 차 문을 열고 나올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