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미미

그 집, 413-13

by 신혜정

골목 끝에서부터 눈물은 시작된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두근거리고 손이 흥건히 젖을 정도로 땀이 나기 시작한다. 엉엉 울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끄는데도 어느 새 집 앞에 도착해 있다. 들어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들어가지 않을 수도 없고...발을 동동 구르며 대문 앞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어린 내가 거기 서 있다.

유전자 속에는 어떻게 그렇게 많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는지, 같은 부모 밑에서 태어나도 어떻게 그렇게 다른 유전자를 타고날 수 있는지 아직도 궁금하기만 하다. 동물 친화적 유전자는 강아지를 안고, 만지고, 강아지의 눈을 바라보며 웃게 한다. 강아지와 함께 하는 삶을 열망하게 되며 결국 그 강아지는 인생의 친구가 된다. 동물 반감적 유전자는 강아지가 저 멀리 보이면 온 몸의 경직이 시작된다. 손에는 땀이 맺히기 시작하고, 심장박동은 몇 배로 빨라지며 강아지를 피하기 위해 가까운 길을 두고 먼 길을 돌아오게 만든다.


동물 친화적 유전자의 소유자인 내 동생은 어릴 때부터 강아지를 무척 좋아했다. 오랜만에 들춰 본 사진 속의 동생은 강아지를 품에 가득 안고 있다. 강아지도 편안한지 동생 품에 꼭 안겨 있다. 동물 반감적 유전자의 소유자인 나는 그 강아지, 미미 때문에 항상 하교길이 두려웠다. 막연한 두려움은 언제나 내 마음속에 고여있었고 언제고 미미 앞에서 흘러넘치곤 했다.


미미는 하얀색 바탕에 황토색 얼룩무늬가 있는, 전형적인 ‘바둑이’ 모습을 한 발바리 강아지였다. 귀는 다소곳이 접혀 있었고, 눈은 동그랗고 커다랬다. 강아지들의 행동을 수정하는 프로그램들이 많은 요즘, 여러 강아지들의 행동을 보면 미미는 참으로 순하디 순한 강아지였음에 틀림없다. 크게 짖지도 않아 미미의 목소리가 어땠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말썽을 피우거나 문제 상황을 만들지도 않았었고 오로지 문제는 나였다.


지금이야 강아지를 다들 집안에서 키우지만 그 당시만 해도 마당에서 크는 강아지들이 많았다. 미미도 역시나 우리 집 마당에서 자랐다. 내가 현관문을 열고 나가면 쉴 새 없이 꼬리를 흔들며 반가워하곤 했다. 꼬리만 흔드는게 아니라 내 무릎에 두 발을 갖다 대며 자기와 놀자고 내 앞길을 가로막곤 했다. 그러면 나는 질색을 하며 동생이나 엄마에게 미미를 잡으라고 고래고래 소리쳤다. 순하디 순한 미미였지만 나는 왠지 그 강아지가 나를 물 것만 같았고 극도의 공포체험을 해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하루에도 몇 번씩 미미로 인해, 아니 나로 인해 대소동이 일어나곤 했다.


보다 못한 엄마는 결국 미미를 다른 집으로 보냈다. 나는 비로소 현관문을 당당하게 열 수 있게 되었고, 마음에 자리잡았던 두려움의 웅덩이는 조금씩 말라가는 것 같았다. 미미가 가고 동생의 마음이 어땠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미미로 인해 매일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진하고 있었기에 동생의 마음 따위는 헤아릴 여력이 없었던 것 같다.


그 집과 함께 내가 자라는 동안 우리 사회의 문화나 의식도 많이 자랐다. 애완동물이라는 단어가 사라지고 반려동물이라는 단어가 자리매김했고 시골 마당에서조차 목줄에 묶인 강아지는 보기 힘들어졌다. 인간과 동물이 아니라 동물의 범위에 인간이 들어가는 것처럼 강아지나 고양이는 이제 가족이라는 말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어졌다.


성장하고 발전한 우리 사회의 면면들을 접할 때면 한 번씩 미미가 생각난다. 그런 날이면 이런 저런 생각들이 떠오르곤 하는데 그중 하나는 두려움과 공포에 대한 것이다. 무엇이 나로 하여금 그렇게 동물에 대한 두려움을 키웠던 것일까? 그 근원이야 어쨌든 나는 그 두려움을 극복하고 싶었다. 아직도 마음이 덜 자란 것인지, 유전자 속에 무언가 새겨져 있는 것인지 지나가는 길고양이나 강아지를 보면 흠칫 놀라기 일쑤다. 하지만 이젠 적어도 길을 돌아가지는 않는다. 때로 유기견이나 유기묘 어플을 깔아 들여다보기도 하고, 길고양이들의 삶에 대해 측은지심을 느끼기도 한다. 그들이 썩 나의 취향은 아니지만 그들과 우리가 서로를 보듬으며 살아가야 한다는데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또 다른 생각은 미미에 대한 뒤늦은 미안함이다. 미미는 분명 나를 좋아해 주었다. 내가 현관문을 열면 기다렸다는 듯 꼬리를 흔들었다. 동물 친화적 유전자를 갖고 있던 동생과 동물 반감적 유전자를 갖고 있던 나를 공평히 사랑해 주었다. 내 뒤를 졸졸 따라다녔으며 나를 누구보다 반겨주었다. 그 마음을 미처 알아주지 못했다는 것이, 그녀를 공포의 대상으로 밖에 대하지 못했다는 것이 내 마음을 무겁게 한다. 인간 대 인간이든, 동물 대 인간이든 마음은 서로에게로 함께 흐를 때 비로소 행복하다. 그녀가 대가없이 내게 준 따뜻한 마음을 눈물과 거부로 밖에 표현할 수 없었던 여덟 살의 내가 아직도 그 집에 살고 있다.


학교에서 돌아온 나는 대문을 열자마자 미미를 부른다. 미미가 나를 향해 전력질주를 해 온다. 오래 기다렸다는 듯 꼬리를 쉴새없이 흔드는 미미를 품에 안는다. 그 부드러운 털을 느낀다. 마당에는 분홍색 영산홍이 흐드러지게 피어있고, 나는 그 꽃 색깔과 닮은 분홍 원피스를 입은 여덟 살이다. 나와 미미는 봄이 내려앉은 정원에서 세상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미미가 없을 미래는 상상할 수 없게 되는 그런 친구.


이제는 미미와 함께 사라진 그 집의 시간 위로 ‘덮어쓰기’ 버튼을 눌러본다. 새로 써내려 간 시간을 덮어쓸 수 있다면 나는 미미에게 훨씬 덜 미안했을 것 같다. 대신 훨씬 더 그리워했을지도 모르겠다. 그곳에 함께 있었던 우리를. 그때 그 순간을.


뒤늦은 후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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