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 413-13
그 집은 골목 가운데쯤 있었다. 굳이 따지자면 골목의 이쪽 끝에 더 가까웠다. 그 골목은 차 두 대가 겨우 지나다닐 정도의 이면도로였고 이쪽 끝에서 보면 저쪽 끝이 보이는 곧은 길이었다. 내가 학교를 다니며 주로 애용하는 길은 저쪽 끝이었고, 이쪽 끝은 지하철역과 가까워 지상으로 다니는 지하철 선로가 보였다. 골목의 이쪽 끝에서 보았을 때 왼쪽에 위치해 있는 집들은 모두 집의 뒤쪽이 보였다. 반대로 골목의 오른쪽에 위치한 집들은 모두 집의 앞쪽이 보였다. 왼쪽과 오른쪽에 있는 집들을 죽 연결하면 마치 집들이 앞으로 나란히를 하고 한 방향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반대로 골목 이쪽에서 저쪽 끝을 바라보면 집들이 서로 어깨를 마주하고 옆으로 죽 늘어서 있는 것 같았다. 그 골목에 있던 비슷비슷한 모양의 2층 집들은 마치 넓은 운동장에 교장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러 행과 열을 맞추어 모인 어릴 적 친구들 같았다.
어릴 때 골목의 이쪽 끝에 작은 교회가 있었다. 언젠가 친구 손에 이끌려 지금은 사라진 그 교회에 딱 한 번 가 본 적이 있다. 새로 온 친구로 소개되어 작은 무대에 올라간 것 같기도 하고, 선물을 받았던 것 같기도 하다. 어색함으로 가득했던 그곳은 지금은 내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그 골목의 잊혀진 모습이 되었다. 그리고 골목 중간쯤에는 작은 목욕탕도 있었다. 목욕탕은 나와 같은 학교를 다녔던 동갑내기 친구의 집이었다. 작은 목욕탕이었는데 우리는 늘 그 목욕탕을 애용하곤 했다. 지금은 집에서 샤워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주택에서 매일 샤워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아래, 경사진 천장과 골목으로 난 창문이 있던 그 집의 목욕탕은 늘 서늘하고 추웠다. 그러다 보니 동네에 작은 목욕탕이 있다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었다. 엄마와 함께 목욕바구니를 들고 수증기로 가려진 신비로운 세계의 문을 여는 일은 정말이지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 골목에 있던 나머지 집들은 대부분 가족을 품은 집이었다. 우리는 ‘이상한 아줌마 집’ , ‘피아노 집’, ‘옆집’, ‘목욕탕집’ 등의 이름으로 그들을 부르며 우리의 대화에 등장시키곤 했다. 그들은 오래오래 그 골목에 남아 나와 시간을 함께 보냈다. 각별히 가까웠다거나 잊지 못할 추억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저 어렸던 내가 어른이 될 때까지 오랜 시간 그 골목에 있어 준 것만으로 내게는 충분했다. 지나가다 골목에서 마주치면 인사할 누군가가 되어주고, 나의 인사를 받고 환한 미소를 내게 지어주던 사람들. ‘우리 동네’라는 말을 할 때 어김없이 나의 등장인물이 되어 주는 사람들. 그들로 인해 그 골목이 채워졌고, ‘우리 동네’가 살아있었으므로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들의 집 사이 비슷한 모양의 우리 집, 413-13 23/5 이 있었다. 우리 집은 골목의 이쪽 끝에서 보면 왼편에 위치한 집이었다. 골목에서는 돌아앉은 집이었기에 집의 내부는 전혀 보이지 않고 집의 창문만 보였다. 골목에서 보면 1층에는 부엌 창, 부엌과 붙어 있는 방의 창이 보였다. 2층에는 실내계단 중간에 있는 창과 동생 방의 창이 보였다. 엄마는 몇 년의 시간이 흐르면 그 집에 새 페인트를 칠하곤 했었다. 어느 해는 채도가 낮은 연두계열의 색이 칠해지기도 했고, 옅은 살구색이나 좀 더 주황계열이 가미된 색이 칠해지기도 했다. 집은 봄을 입은 것 같기도 했고 초여름 혹은 초가을을 입은 것 같기도 했다. 그 집에 입혀지는 색에는 암묵적인 규칙 같은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다른 집들의 색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었다. 혼자만 도드라지게 너무 튀지 않으면서 엄마의 취향도 고스란히 묻어나곤 했다. 똑같은 모양의 연립주택단지도 아니었는데 마치 우리가 한 동네에 살고 있다는 소속감을 스스로 정립하고자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이제 그 골목에 살던 수많은 그들은 사라졌다. 나 또한 그 골목에 시간을 묻어두고 새로운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모두 그 골목을 떠났지만 내가 기억하는 시간들이 그들의 기억 속에 함께 흐르고 있다는 것만으로 왠지 든든하고 따뜻하다. 지금은 그 골목에서 사라져 버린 수많은 그들의 안부가 문득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