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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으는 글쟁이 Jul 04. 2021

파리의 공기는 와인향이 났어

비 오는 파리 비행의 기억

약간의 취기와 함께 걷는 비 오는 파리의 거리.

물비린내인지 와인향인지 모를 낯설고도 익숙한 향이 코끝을 건드렸다.

 향에 이끌려 들어간 작은 레스토랑에서는 꼬뜨   와인  추천받아 마셨다. 이른 시각에 마신 샴페인의 취기가 아직 사라지기 전이어서였는지, 어두운 조명에 묻어나는 농도 짙은 재즈의  덕분이었는지, 금세  병을  비우고 밤거리로 나섰다.


우산을 써서 한껏 낮아진 내 시야에는, 날이 저물어 갈수록 느려지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보였고, 나 또한 쫓기듯 따라가던 구글맵을 꺼버리고 뒷골목으로 발길을 돌려 조금은 헤매보기로 했다.



다 젖고 더러워진 내 올드스쿨이 오늘의 여정을 말해준다. 굳이 공원에 들어가서 흙도 묻히고, 말랐다가 다시 젖은 부분은 얼룩이 지기도 했다.


크루 호텔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샤를드골 공항에 다시 가야만 했다. 지하철을 타도되고, 버스를 타도된다. 하지만 오늘 같은 날에는 역시나 창문 밖으로 흐르는 빗방울을 보는 게 낙이다.


오페라에서 공항으로 직행하는 루아시 버스를 탔다. 다행히도 자리가 있다.

카메라와 핸드폰일랑은 가방에 넣어놓고, 잔뜩 젖은 파리의 생경한 모습을 눈에 담아 본다.

익숙한 건물들이 눈앞을 지나갔고, 버스는 점점 낯선 풍경 속으로 뛰어들었다. 창문에 머문 빗방울이 지나가는 차의 라이트를 이리 저리 굴절시켰고, 그 빛이 흐르는 방향을 따라 내 시선도 꽤나 요란하게 움직였다.


빗소리와 차 지나가는 소리, 알아들을 수 없는 프랑스어가 섞인 완벽한 백색소음을 뚫고, 딱 한마디에 귓가에 맺혔다.


“너무 아쉬운 밤이다.”


놀란 티는 나지 않게, 조금은 조심스럽게 주변을 둘러봤다. 같은 창밖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한 커플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여행의 마지막 날일 것이고, 공항으로 가서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혹은 다음 여행지로 떠나게 될 것이다.


정확히 무슨 마음이었는지 모르겠다. 여행이 끝난다는 사실이 아쉬운 건지, 마지막 날 비가 와서 아쉬운 건지, 혹은 비가 오는 낭만을 뒤로하고 떠나는 것이 아쉬운 건지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단 하루를 머물다 돌아가는 나조차도, 그날의 아쉬움이 어떤 의미였는지 알지 못했으니까.


다만 다음에 마주하는 비 오는 파리에서는, 혹시나 와인향이 아닌 다른 어떤 향이 날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그날의 향을 오래 기억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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