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 연수에 합격하다
1월 5일 새벽, 나는 인천을 경유하여 후쿠오카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러 대구 공항에 도착했다. 뱃속에 든 것도 없이 왼손에는 3주치 짐이 든 캐리어를 들고 등에는 노트북과 각종 서류들을 지고 있는 나. 그 상태로 비행기, 수하물, 여권, 일본어, 교수님 등등 수많은 변수들을 상대하려니 관자놀이가 지끈지끈거렸다. 일단은 다 잠시 잊고, 코앞에 놓인 과제부터 하나하나 해결하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내 일본어의 한계를 알기 위해 스스로를 궁지에 몰아넣기로 한 과거의 나를 책망하며 탑승수속을 밟았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스스로를 곤란한 상황에 빠뜨리는 걸 즐기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이 일을 벌이면 어떤 스트레스를 얼마나 받게 될지 대충 짐작이 되면서도, 그걸 극복하고 일을 끝낸 뒤에 성장해 있을 나를 생각하면 일을 시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특히 그 일이 전액, 지원, 장학금과 같은 매력적인 단어와 얽혀 있으면,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곳에 나를 던졌다. 이번 연수만 해도 그랬다. 일어일문학과 강의실 문 앞에 붙은 공고문에는 재학생들을 상으로 한 3주간의 히로시마 연수에 대한 안내가 적혀있었다. 내 눈동자는 빠르게 종이를 스캔했다. 왕복 항공료, 현지 교통비, 숙박비, 프로그램 경비 일체 지원. 해외 교류 학점 인정. 복수전공 학생도 지원 가능. 일체 지원이라는 말을 본 순간, 이미 내 머릿속 경매사는 세 번 호가를 확인하고 손에 쥔 낙찰봉을 높이 들어 올리고 있었다. 탕탕탕.
뒷일에 대한 걱정은 연수 면접에 붙고 연수 참가자로 확정이 난 이후에야 밀물처럼 내 안으로 스며왔다. 해외에서 이렇게 길게 머무르는 것도 처음이었고, 복수전공생은 나뿐이라 같이 가는 한국인 연수생들 중에도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무엇보다 달랑 1년 동안 갈고 닦은 내 일본어 실력이 제일 걱정이었다. 평소 일본어에 자신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이건 성적을 얻기 위한 일본어가 아니라 현지 사람들과의 소통을 위한 일본어이기 때문에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단순히 기계적으로 시험지의 빈칸을 메우거나 번역을 써내려가는 것이 아닌, 진짜 사람과 사람이 나누는 ‘대화’. 그런 일을 내가 할 수 있을까. 무심코 내가 한 말이 그들의 예의에 어긋나진 않을지, 아직 일본어로 농담까지 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닌데 어떻게 사람과의 분위기를 풀어 나가야할지 모든 것이 걱정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러한 한계와 걱정이 쌓일수록 더 흥분되는 것 같기도 했다. 높고 험준한 산일수록 더욱 더 그 꼭대기를 향한 욕심이 생기기 마련이고, 나는 그런 거친 산을 타는 사람들 중 최고가 되고 싶었다. 일문과 사람들보다 더 훌륭한 연수 과제를 제출한 타과 학생이 받게 될 박수와 연수 전보다 더 성장해 있을 내 일본어 실력에 대한 상상은 불붙은 성냥이 되어 승부욕이라는 석유 위에 떨어졌다.
이 산의 꼭대기에 이르는 날에는 어떤 풍경이 날 기다리고 있을까. 산의 3분의 1을 오른 지금, 남은 연수 기간 동안 또 어떤 일이 생길지 아직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나는 지금도 성장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더 나은 사람이 되리라는 것이다. 연수가 끝나고 한 단계 발전한 나의 모습을 하루빨리 당신에게 보여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