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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otany 니오타니 Aug 27. 2022

명징과 심심한 사과의 사이에서

이동진 씨가 영화 한줄평에 써서 엄청나게 욕먹은 바로 그 단어 '명징'은 나도 가끔 사용하는 단어이다. 오늘 아침처럼 맑고 깨끗하게 투명한 공기 사이로 비치는 달빛이나 햇살에 반짝이는 나뭇잎을 바라볼 때면 이 보다 더 적확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이 말을 꽤 여러 번 썼는데, 다행히도 유명인사가 아니라 대놓고 욕먹은 일은 없었다. 


기생충에 대한 한줄평에는 '명징'뿐 아니라 '상승과 하강으로 명징하게 직조해낸' 이란 표현도 나온다. 이 또한 함께 논란이 된 표현들인데 봉준호 감독의 마스터피스에 대한 찬사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얼마나 고심했을까 싶고 섬세하고 빈틈없는 구성과 표현에 대한 절절한 헌사가 느껴진다. 이동진 씨의 도서 팟캐스트나 다른 글과 방송을 보면 굉장한 다독가이고, 문학적 혹은 문어체 표현을 평소에도 곧잘 쓰는 걸 알 수 있는데, 나는 그냥 그건 그 사람의 캐릭터로 인정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가끔은 하이쿠처럼 촌철살인의 표현도 있어, 그는 시를 쓰는 마음으로 한줄평을 쓰는 건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했다. 


다시 논란의 중심에 '심심한 사과'가 등장했다. 문해력이 부족해서 큰일이라는 비판과 시대 변화를 읽지 못하고 사용한 표현이라는 의견이 오가는 내용을 읽어보니 양쪽 모두 일리 있는 주장이다. 어느 쪽이 맞다, 아니 다를 떠나서 나는 문득 표현에 대한 논란을 떠나 세대 간의 공격으로 이어지는 이 현상이 참 일관성 있게 우리 사회의 세대 간의 단절을 드러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학적 표현을 사용하는 이들은 우리를 무시하는 꼰대'이고, '이것도 모르는 무식하고 가벼운 인간들'에 대한 철저히 타자화된 상호 비판들.


어제 점심시간에 이 사안에 대해 후배들의 의견이 궁금해서 물어보니, 인터넷 댓글도 아니고 평론가의 영역과 사과문의 영역이라 그렇게까지 몰아붙일 일은 아닌 것 같다란 의견이 다수였다. 하지만 심심한 사과라는 표현이 (뜻을 알고 있음에도) 그렇게 진정성 있게 느껴지진 않으며, 사과문이니 만큼 듣는 사람을 배려한 표현을 썼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했다. 고객 중심이 기본 아니겠나! 


서울대 졸업생인 한 후배는, 06년 신입생들이 서울대 입구 역을 '설립'이라 줄여 말해 05학번 이상 재학생들이 품위 없게 언어를 사용한다고 후배들을 비판했고 한동안 학교 게시판을 뜨겁게 달군 논쟁이 있었다고 한다. 나도 6-7년 전에 띠동갑 후배와 점심을 먹고 스타벅스에 갔다가, 거기서 처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줄인 '아아'란 말을 듣고 작작 좀 줄이라며 타박한 적이 있다. 그런데 지금은 아아, 뜨아, 따아, 따라 등 자유자재로 변형한 줄임말을 입에 달고 있다. 어떤 게임 커뮤니티에서는 어린척하며 게임을 함께하던 한 플레이어가, ~하셈 이던가?라고 채팅창에 썼더니 어, 이거 우리 아빠 말투랑 똑같은데? 해서 신분이 탄로 난 경우도 있다고 해서 한참을 웃었다. 


언어만큼 민감하게 세대를 구분하고 변화를 반영하는 지표도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계속 변신하며 살아남는 줄임말들도 있을 것이고, 인터넷 밈으로 한동안 유행 하다사라지는 말들도 있을 것이다. 나는 예전 언어도 좋아하고 곧잘 문어체도 사용하지만, 또 어떤 신조어는 그 단어가 주는 쾌감이 있어 가끔은 쓰고 싶을 때도 있다. 이제 외국어만큼이나 세대 간의 언어도 공부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어야 하는 시대가 왔다는 걸 받아들여야겠단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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