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낱 May 21. 2021

수첩 하나를 얻기 위한 갖가지 핑계

2부-출판물 관련


 무슨 일이든 함께하면 더 재미있는 일이 있다. 하교 후 분식집에서 떡볶이 사 먹을 때, 학교 앞 팬시점에서 딱히 필요하지도 않은 수첩을 신중하게 고를 때, 야간 자율학습 땡땡이치고 영화 보러 갈 때(긴긴 학창 시절 딱 한 번), 휴가 맞춰 여행 갈 때, 아이가 어려 같이 육아할 때, 예쁜 카페 발견하면 가서 커피 마시며 수다 떨 때, 이제는 살을 빼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 운동하러 갈 때. 이 모든 순간에는 함께 하는 친구가 있는 게 좋다. 그리고 덕질할 때도.


 내게는 큰 기쁨이지만 남들에게는 하찮은 일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덕질. 덕질이란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심취하여 그와 관련된 것들을 모으거나 찾아보는 행위를 이르는 말이라고 오픈 사전에 나와 있다. 이런 덕질을 함께할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 즐겁게 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나와 취향이 같고 좋아하는 것에 대한 열정이 비슷해서 이야기가 잘 통하는 사람. 내가 하는 기이한 수집의 행동들을 이해해 주는 사람. 그리고 그런 것들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을 우리는 덕질 메이트라고 부른다. 그걸 더 줄여 덕메로 불린다.


 어느 , ‘지금 SNS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 프로모션이 떴다 연락이 왔다. 서둘러 들어가 봤더니 세계문학전집 3  이상 구입하면 스프링 노트를 준다고 했다. 깔끔한 흰색 바탕에 세계문학전집의 표지와 똑같은 그림이 인쇄되어 있는 작은 수첩이었다. 고전은  출판사마다 특색 있는 디자인으로 정해져 있어서 시리즈로  모으는 맛이 있다. 물론 번역이 제일 중요하겠지만 말이다.  고전을 민음사로 구입했던 터라  후로 고전 명작은 자연히 민음사로 이어졌다. 그런 민음사는 자사의 세계문학전집을 모으는 사람들의 덕심을 간파했다. 자기네 회사의 시그니처 상품 세계문학전집의 표지 그림으로 만든 수첩이라니. 이건 모으지 않고는 배겨  재간이 내게는 없다.


 그러면 금방이라도 저 수첩들을 종류대로 못 구할까 봐 부지런히 책을 사들인다. 처음에는 별생각 없이 한 권만 있으면 되지 싶었는데 실제로 받아 본 수첩은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거의 모든 프로모션에는 ‘재고 소진 시까지’라는 단서가 붙는다. 그때부터 언젠가는 읽을 책이라면서, 이건 고전이라 소장가치가 있다면서. 별별 자기 합리화를 한다. 덕메와 함께 이번에는 어떤 책을 샀고 어떤 수첩을 받았는지 사진으로 소통했다. 그러나 결국 한 가지는 재고 소진. 별생각 없이 시작했던 수집에 구멍이 생기면 더 채워 넣고 싶어진다. 못내 아쉬워하며 2차를 기다리고, 3차를 기다리게 된다.


 그렇게 받았던 예쁜 수첩들은 필사 노트로 소중하게 사용되고 있다. 마음에 드는 구절을 조금씩 쓰려고 그 수첩을 꺼내기에는 아깝다. 책 한 권을 통째로 필사하고 싶을 때, 혹은 이 필사는 평생 간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그 수첩을 꺼내 든다. 필사하고 싶은 책의 분위기와 수첩의 표지 디자인의 합을 오랫동안 고민하며 신중히 고른다.


 살아가면서 온전히 내 취향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그렇게 많지 않다. 어릴 때는 부모님의 취향에 맞춰 살았고 가정을 꾸리고는 가족의 취향에 적절하게 동의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필사 노트 선택쯤이야 얼마든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다. 그 누구의 항의나 반대에 부딪히지 않고 오롯이 나와 수첩과의 대화를 통해 선택한다. ‘그래, 이번엔 너로 정했다. 너를 내 집에 들이기 위해 샀던 책이 이만큼이다. 넌 나에게 기쁨을 줘야 해. 이번 필사도 잘 부탁해.’


 덕메의 정보가 없었다면 아끼는 수첩을 못 만났을 것이다. 혹은 늦게 발견해서 한두 종류밖에 못 구했을지도 모른다. 역시 덕질은 덕메와 함께 해야 풍성해진다. 취향과 취미가 비슷한 이들이 함께할 때 그 시너지는 크다. 그래서 좋아하는 것이 같은 사람들끼리 모이게 마련이다. 내게 없는 정보를 그들이, 그들에게 없는 정보를 내가 알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덕질의 세계에도 상호보완이 필요하다. 덕메들과 함께하면 행복하고 풍성한 덕질이 가능해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낯가림과 누드 제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