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칠 때 낭비하는 건 죄가 아니라 미덕이다.
그래, 실컷 젊음을 낭비하려무나, 넘칠 때 낭비하는 건 죄가 아니라 미덕이다. 낭비하지 못하고 아껴둔다고 그게 영원히 네 소유가 되는 건 아니란다
<박완서, 그 남자네 집 79p>
20살에 Y대에서 중학교 동창 S를 만났다.
“와! 이게 누구야!! 진짜 오랜만이다. 몇 년 만이야 반갑다. 너 우리 학교 다녀? 무슨 과?”
“ 아..아니, 친구 만나러 온 거야”
그리고 나는 입학원서를 뒤로 숨겼다. S는 진심으로 나를 반가워했고, 그동안 못한 얘기를 끄집어내려고 했다. 나도 S가 반가웠지만, 더 이상 길게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중학교 때 친하게 지내던 친구였지만, 이미 명문대를 진학해 버린 친구와 재수생인 나는 결코 다시 예전처럼 친해질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20살에 처음으로 모멸감과 열등감을 느꼈다.
시간이 흘러 명문대는 아니어도 서울에 있는 적당한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생이 되면 청춘드라마처럼 어깨에 카디건을 걸치고 캠퍼스를 여자 친구와 걷고, 동아리 활동도 하고 공부하느라 못했던 운동도 다니며, 활기찬 대학생활은 합격과 함께 주어지는 전공필수 과목인 줄 알았다. 그러나 실상은 수업이 끝나도 특별히 할 게 없었다. 마음에 드는 동아리는 없었고, 동기들과 벤치에 앉아 할일없이 지나가는 사람들이나 구경하고 누워있다, 밥 먹고, 수업 듣고 PC방 가서 게임하고, 술 마시고, 토하고 늦잠 자고 지각하는 일상으로 시절을 낭비했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한심할 수 있지만 젊기에 낭비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았다. 하루가 길었고, 무언가를 할 시간은 많았지만,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목적도 없고 꿈도 없이 방황하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을 겪어 지금의 내가 있다. 지금의 나를 보면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나 회사로 출근하고 점심시간을 쪼개서 운동을 하고 저녁에는 자기 계발을 목적으로 모임을 갖는다. 브런치에 글을 연재하고 주말에는 산에도 가고 전시회도 다니며 1년에 3번은 해외여행을 한다. 이렇게 열심히 사는 이유는 점점 무언가를 할 시간이 없어지는 걸 알기 때문이다. 건강을 잃어 본 사람이 운동을 하고 금연도 한다. 연인과 헤어진 아픔을 겪어봐야 사람에 대한 소중함을 알게 된다. 그 시절의 나는 가진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모든 것이 기회인 젊음을 가졌었다. 그렇게 심하게 젊음을 낭비하고 살았음에도 지금의 내가 그렇게 나쁘지 않을 걸 보면 낭비라기보다는 허술한 과정이라고 생각된다.
우리 팀에는 대학생 인턴이 2명이 근무 중이다. 이제 25살 갓 대학을 졸업했다. 아직 인턴이라 신입사원은 아니지만 제법 사회인 모양을 내고 있다. 그들은 대학교 입학과 동시에 취업준비를 하고 토익, 오픽, 인적성 준비와 각종 봉사활동과 공모전으로 바쁘게 지냈다고 한다. 그래도 시간을 쪼개서 클럽에서 밤도 세고, 틈틈이 여행도 가고 아르바이트도 한다고 했다. 저 시절 나와 비교하면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영어 공부는 커녕 여행도 클럽도 아르바이트도 하지 않았다. 그냥 대학생이란 이름만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용서받을 수 있었다.
지금의 청춘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불행한 청춘이 아닐까 싶다. 높은 등록금과 그 보다 더 높은 취업문 불행한 시대에 사는 젊은이들이지만, 그래도 젊음은 빛이 난다. 자신들은 모르는 그런 빛이 난다. 그 빛을 한참 전에 잃은 사람들은 알 수 있다. 젊음의 생기로움을.
암담한 미래에도 젊음은 빛이 난다.
자신들은 알 수 없는 넘치는 에너지와 생기가 가득하고
써도 써도 줄지 않는 젊음이 아직 있으니
조금은 낭비하며 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