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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ture Apr 11. 2020

사회적 거리두기는 늘 하고 있습니다만

최근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에 의한 역병이 전 세계가 난리가 났다. 아직 백신이 개발되지 않아. 별다른 치료법이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예방법 중 하나는 '사회적 거리두기'라고 한다. 사람과 사람으로 전파되는 특징이 있는 바이러스인 만큼 사람의 접촉을 최소화 함으로 질병의 확산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캠페인 전에도 나는 자체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고 있었다. 출근을 하고, 일을 해야 하는 평일의 나의 사회적 거리는 1m, 모임은 1주일, 친구는 3개월, 혼자 있는 주말은 무한대.라고 생각했다.

한 달 전 코로나가 급속도로 퍼지지는 시점에서 회사에서 긴급공지 사항으로 재택근무가 결정되었다. 아쉬운 탄성 소리가 여기저기 나왔지만, 주변을 돌아보니 입가에 살짝 미소를 머금은 사람들도 있었고, 나도 그중 하나였다. 재택근무로 적극적인 사회적 거리 두기에 동참하게 되었다. 재택근무는 메신저와 메일로, 말보다는 글이 소통수단이 되었다. 처음으로 맞이 하게 된 생소한 근무환경에 팀원들은 약간의 흥미와 재미를 느끼고, 무료한 시간대에는 메신저로 출석체크 게임을 하며 소소한 재미를 찾았다.
업무시간에 몰래 빠져나가듯, 집을 벗어나 카페에서 업무를 보는 사람도 있었고, 정성 들여 요리를 하며 우아한 점심 즐기는 사람도 있었다. 대면하지 않아도 일처리는 문제없었고, 출근과 퇴근 시간이 없으니 그만큼의 여유시간도 생겼다. 미팅이나 회의로 소모되는 시간도 줄었다. 2주를 넘어도 업무에 크게 지장은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내 안에서 시작됐다. 늘어난 시간만큼 늦잠을 잤고 생활리듬은 깨졌다. 일어나서 바로 컴퓨터 앞에 앉아 점심이 돼야 겨우 물 한 모금을 마시고, 급하게 처리하지 않아도 되는 일은 미뤄뒀다. 밤에 다시 일을 했다. 사람을 만나 일이 없어 얼굴 붉힐일도 없고 논리 없는 토론으로 언성을 높이는 일도 없어졌지만, 그만큼 의욕도 사라지고 무기력과 나태함이 자라났다. 머리는 멍해지고, 멍청해진 머리는 아이디어를 주지 않아 짜증만 늘어났다. 그러나 이런 증상이 비단 나만의 일은 아니었다.
감금생활에 지친 사람들은 놀이터며 공원이며 잠시라도 휴식을 갖는 동료들의 모습을 SNS를 통해 볼 수 있었다. 나도 (재택이지만) 점심시간에는 공원이나 멀지 않은 곳으로 산책을 했다. 산책 하나로 사람의 잠시나마 기분은 좋아졌다. 신선한 공기와 햇빛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긴 논문을 보지 않아도 알 거 같았다.  

오랜만에 출근을 했다. 회사 사람들이 이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모두 건강한 모습으로 출근한 것을 보니 서로가 서로를 대견하게 생각했다. 학창 시절 개학 때 다시 만난 친구들 마냥 서로의 안부를 묻고, 건강을 챙기며 그 간 밀렸던 근황 얘기가 이어졌다.
그러나 그런 일도 잠시. 어쨌든 회사에서 일로 대면하니 예전과 같이 언쟁도 생기고, 뫼비우스 띠 같은 회의는 계속되었다. 짧은 시간 많은 일을 처리하다 보니 평소보다 더 분주하고 힘든 하루였다. 그럼에도 혼자 있었을 때는 며칠을 고민해도 생각나지 않던 아이디어는 끝없이 오고 가는 회의 속에서 나왔으며, 계속 멈춰 있던 보고서 페이지도 글자 수를 늘려갔다. 힘든 하루 속에서 뿌듯함이 밀려오는  그렇게 이상한 퇴근길을 경험했다.

나는 완벽하게 독립된 사람이라 생각했다. 완벽한 편안함은 혼자 있을 때 생기는 것이라 믿어 왔다. 그래서 늘 꿈꾸던 이상적인 삶은 카리브해의 작은 섬의 삶을 그려왔다. 그러나 이런 극단적인 격리 생활을 겪어보니 내가 다른 사람에 비해 좀 더 독립적인 사람일 수 있지만, 사회적으로 완전히 분리돼서 살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

우리가 살아간다는 건 '함께'라는 단어를 잠시 생략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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