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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이인형 Jul 07. 2024

백수가 되면 뭐가 달라져요

소속과 명함이 없음에 대하여

10년동안 회사생활을 하며 주변에 나를 소개할 때 따라오는 건 바로 회사명이었다. 

대부분의 직장일들이 소개팅이나 모임에서 본인을 소개할 때 가장 처음 말하는 것 중 하나가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가 일 것이다. 특히 유년기부터 학교가 어디인지, 고향이 어디인지 등 소속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에서 자라왔기 때문에 더 그럴 것이다. 그리고 회사명 하나로 인터넷에서 검색만 하면 사람의 대략적인 연봉과 사회적 위치까지 추정할 있는 시대가 아닌가.


OO에서 MD를 하고 있어요

OO에서 팀장을 하고 있습니다


MD라는 직업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잘 모르는 사람들이 꽤 있었지만 회사명을 듣고는 

다들 써봤다, 거기서 물건 사봤었어요 같이 스몰톡을 시작할 수 있었다. 여러분들을 혹하게 만들고 지갑을 가볍게 만드는 사람이 바로 저였어요 같은 농담과 함께.


퇴사를 하고 나는 나를 소개할 말이 마땅치않음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어떤 일을 했더라도 결국 결론은 30대 중반에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놀고 있는 사람으로 보이는 것만 같았다.


MD라는 일을 했었는데요... 지금은 놀아요 

OO 회사를 다녔는데요... 지금은 쉬고 있어요 


부모님에게도 내가 놀고있음에 대해 솔직하게 말할 수 없었다. 대구에 내려가면 "회사는 요즘 어때" 라고 물어보면 "똑같아"라고 대답하며 거짓말을 하는 불효녀가 되는 느낌이었다.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과 첫 만남에서 나의 소개가 명확하지 않음을, 정확하게는 회사를 다니는 동안에는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지 않은 나의 게으름에 대해 부끄러워지는 순간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퍼스널 브랜딩에 대해서 말할 때 한번 고민이라도 해볼걸, 특히 그 흔한 인스타그램조차 하지 않던 나였기에 회사를 떠나자 이 사회에서 내가 남겨놓은 흔적은 무엇인가라는 거창한 고민까지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일을 잠깐 쉬고있다 정도로 나의 소개를 얼버무리거나  행복하게 놀고 있어요라는 어울리지 않는 발랄함으로 포장하려고 노력했다. 여행을 때는 학생이라는 말도 되지 않는 거짓말을 하곤 했다. (박사과정을 밟는 만학도라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면서 내가 나에 대해 부끄러워 하고 있는게 맞을까 라는 의문이 스멀스멀 자라났다. 스스로 쉬겠다고 당당히 퇴직을 신청하고 자발적인 백수가 되었음에도 이걸 숨기는게 맞는가, 내가 나에 대해 감추는 것이 자존감을 갉아 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백수가 되고 5개월이 지난 지금은 조금씩 나에 대해 당당하게 말하고 있다. 


10년간의 직장생활을 잠깐 멈추고 경력 휴식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회사 다닐 때 못해봤던 일들도 해보고 있어요.
최근에는 브런치 작가도 되었습니다


현재는 어떠한 생각과 고민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인지, 

그리고 그 장소에서 누구보다 본인의 시간에서 자유로운 사람이며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를 말한다. "부럽다", "대단하다"라고 말하는 이면에는 하지 못함에 대한 부러움과 사회에서 기대하는 책임감과 스스로의 커리를 위하여 하지않음의 경계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겠지만 나는 지금의 이 시간을 후에 되돌아 봤을 때 좋은 쉼표로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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