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월 심한 무기력증을 겪었다. 작년 9월에 이어 두 번째 무기력증이었다. 날씨가 추워 햇볕을 자주 못 본 것과 불균형한 영양 섭취, 운동부족 등이 원인이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직장으로 돌아가는 것이 싫어서 내 몸이 앓아누운 것 같다.
3주 정도 무기력한 나를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일부러 기분 전환을 하려고 하지도 않았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무기력한 그 상태 그대로 머물러 주었다. 침대와 한 몸이 된채.
두려움과 공포, 슬픔과 절망, 분노와 비참함이 나를 휘감았다. 아무 의욕이 없어 14~16시간 넘게 매일 잠만 잤다. 어떻게 그렇게 잠이 오는지...
세상이 무서웠다. 삶이 두려웠다.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열등한 나를 어떻게 해야 할지 감당이 안 됐다. 내 삶은 이대로 끝나는 걸까.
참 많이도 울었다. 세상이 원망스러웠고, 부모님이 원망스러웠고,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던 그 시간들은 나에게 무슨 의미인가? 왜 내 삶의 결과는 이것밖에 되지 않는 걸까? 운이 없는 건가?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가? 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3주를 절망적인 나날로 보냈다.
2월 마지막 주에 이상한 꿈을 꾸었다. 녹슬고 축축하고 더러운 쇠사슬에 묶여있던 내가 풀려나는 꿈이었다. 그 꿈을 꾸고 난 뒤 이상하게 힘이 났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열정을 회복했다.
마음이란 걸 공부하면서 깨닫게 된 한 가지가 있다. 어떤 감정이 나를 덮칠 때 그것을 피하지 말라는 것이다. 마음공부 스승들은 "저항하는 것은 지속된다"라고 했다.
정말 무기력을 피하려 하지 않고 그것과 함께 있었더니 (좀 오래 걸렸지만) 스스로 사라졌다. 갈 때가 되어서 간 것인지는 몰라도. 이번 경험으로 하나 깨달았다. 저항하지 않으면 흘러간다.
그리고 하나 다짐했다. 나에게 오는 모든 감정을 피하지 않기로. 슬픔이든 절망이든 분노든 모든 감정을 환영하고 충분히 함께 있어주기로. 나쁘다고 분별하지 않기로.
무기력증을 겪고, 삶에서 중요한 걸 배운 것만 같다. 내 삶에 찾아오는 모든 걸 저항하지 않고 수용하는 태도를...
무기력증이 또 찾아올까? 이제는 두렵지 않다. 또 찾아온다면 그때는 아주 반갑게 맞아줄거다. "무기력증아 안녕? 또 왔네? 나에게 또 할 말 있니? 그래 나와 함께 있자. 너와 함께 있어줄게. 나랑 놀다가 너 가고 싶을 때 가렴" 이렇게 말해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