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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현 Apr 30. 2020

'술'

아무것도 아닌 단어 하나

"술 한잔 해야지?"


밥 한번 먹자라는 말과 비슷한 의미로 쓰이는 이 말은 술이라는 존재가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보편화된 것인지를 보여준다.


물론 술을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그 말은 그다지 반갑게 들리지 않는다.


술을 싫어하는 나에게 한국의 주류 문화는 지금까지도 너무 어렵기만 하다.

한국의 주류 문화에서는 술잔에 따라준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세월이 흐르며 조금 변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주고받는 술잔 속에 정이 싹튼다는 생각이 강하게 남아있다.

부어라 마셔라 분위기 속에서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나는, 술도 마실 줄 모르는 젊은 사람이 되곤 했다.

종종 그게 싫어 오기로 술을 마셔보았지만, 지독한 속 쓰림과 두통만이 나에게 남았었다.


이 글은 술이 싫었던, 그리고 여전히 싫은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는 술, 그중에서도 특히 소주가 싫었다.

"소주의 맛을 모르는 사람은 인생을 모르는 사람이다"

"소주가 달달하지?"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나에게 소주는 처음 마셨을 때부터 지금까지 맛없고 쓴 액체를 입에 털어 넣는 느낌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소주는 피할 수 없는 것, 가장 많이 접할 수밖에 없는 술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소주가 단 한 번도 달달했던 기억이 없다.

그놈의 삼겹살에 소주... 칵테일이라는 달콤한 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내 귀에는 소주 한잔하러 가자는 말만 들린다,


술을 기피하는 다른 이유는, 나는 술이 사람을 가볍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술에 취해 헤어진 연인에게 전화를 걸고, 평소라면 아무것도 아닌 일에 시비가 붙는다.

어떤 이는 그걸 술에서 얻는 용기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술은 인간의 고차원적인 사고를 막고, 이성적인 판단을 마비시킨다고 생각했다.

주위를 둘러봐도 술에 취해했었던 행동이 술을 깨고 나면 후회로 남았던 사례는 너무도 흔하다.

간혹 술에 의존한 용기로 연인을 만들거나,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사례도 보고 듣지만, 그건 굳이 술이 아니어도 될 일이었거나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사람을 가볍게 만드는 술이 여전히 싫다.


마지막으로 내가 술을 싫어하는 이유는 오롯이 내 개인의 이유이다.

어쩌면 내가 술을 싫어하는 이유로 위에 적은 것보다 이 이유가 더 컸을 수도 있다.

나에게는 마음 편하게, 그래서 긴장하지 않고 술을 마실 수 있는 누군가라는 존재가 거의 없었다.

다른 이들과 비교하면 매우 좁은 인간관계를 갖고 있는 나는, 나를 가볍게 만드는 술이라는 물질을 공유할 이가 없었다. 

항상 말과 행동의 실수를 걱정하는 나에게는 술을 먹고 혹여 실수할 나 자신을 보여줄 이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꽤 깊은 인간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과도 술자리를 갖는 것을 피해왔다.

내가 술을 싫어해서 인간관계가 좁아졌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다만,  어떤 걱정 없이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그런 사람과의 술자리를 생각해보기도 한다.

그런 술자리라면 나도 술이 조금은 좋아질 텐데 하는 마음으로...


나는 내가 조금은 가벼워져도 상관없을 이와 달콤한 칵테일을 함께하는 것을 상상한다.

그러면 술을 싫어하던 내 얼굴에도 미소가 자리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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