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 혼자 있는 즐거움
우리는 사람들과 소통하지 못하고 격리되었을 때, 낯선 환경에서 혼자 적응해야 할 때,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했을 때, 마음을 터놓고 만날 사람이 없고 ‘혼자’라는 느낌이 들 때 주로 외로움을 느낍니다.
외로움의 사전적 정의는 '홀로 되어 쓸쓸한 마음이나 느낌'을 뜻합니다. 그러나 ‘혼자’라는 사실과 ‘외로운 감정’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외롭지 않게 혼자 있을 수 있고,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외로울 수 있습니다. 외로움은 친구가 몇 명 있는지 혹은 그 사람의 사회성이 좋은지 와는 큰 상관이 없고 얼마나 깊고,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느냐에 좌우된다고 합니다.
외로움은 ‘사람 만난 지 좀 됐으니 다시 만나라!’라는 신호이기도 하고, 새로운 친구를 찾거나,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주위를 보면 외향적인 사람이 내향적인 사람보다 사람들과 같이 있는 것을 즐기기 때문에 외로움을 더 많이 느끼는 것 같습니다.
흔히 ‘외로운 사람’이라고 하면 어두운 방에 홀로 앉아있는 모습을 상상하지만, 만인의 사랑을 받는 인기인들도 군중 속에서 외로움을 느낍니다. 이렇듯 겉으로는 웃고 있어도 인간은 존재론적으로 누구나 외롭습니다. 그러나 이 외로운 마음을 소홀히 다루면 우울증이나 중독에 빠질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외로움을 잊기 위해 쉴 새 없이 일하다가 일 중독이 되고, 누군가는 외로움과 마주하기 싫어서 쇼핑을 하다 보니 쇼핑중독이 됩니다. 혹자는 ‘내가 못나서 내 옆에 사람이 없고 혼자인 거야! 라며 외로움에 대한 모든 책임을 스스로에게 돌리며 ‘자학’을 합니다
사람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자신의 페르소나를 벗고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만
많은 사람들이 외로운 마음을 타인을 통해서 채우고자 하지만 이 세상에는 나의 외로움을 해결해 줄 24시간 대기조는 없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은 ‘외로움에 지친 사람’을 회피하거나 이용하려고 들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외로움을 이겨내야 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기 때문에 누구나 ‘홀로서기’를 배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의 외로움을 충족시켜 줄 무언가, '도구'를 끊임없이 찾아 헤매게 될 수 있습니다.
외로움 vs 고독
모든 창조적인 일, 우리의 영혼을 부요하게 하는 깨달음은 주로 홀로 있을 때 일어납니다. 나아가 누구나 지독한 외로움의 터널을 잘 통과하면 성숙해지고 나와 타인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면 비로소 제대로 된 사랑을 할 준비, 좋은 친구를 맞이할 준비가 되는 것입니다.
외로움은 타인과 관계가 끊어진 상태이지만, 고독은 '내가 나와 연결된 상태'입니다. 외로움은 비어있음에 대한 고통이지만, 고독은 채움을 위한 희망이고 자기 발견, 창의적 사고, 자아 성찰의 기회를 줍니다.
외로움이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라면, 고독은 내가 선택할 때 존재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고독'을 회피하기 때문에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것은 아닐까요?
고독은 용기를 잃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위해 필요한 활동을 창조하게 만드는 힘을 준다.
빈센트 반 고흐
외로움과 정면으로 마주하기
외로움이 우리를 찾아올 때 회피하지 말고 그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찾아보면 오히려 나의 삶을 바라보는 안목을 바꾸는 ‘패러다임 쉬프트(Paradigm Shift)’가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 봅니다. 나아가 더 행복하고 건강한 삶으로 가는 출발선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혹시 지금 외로움이라는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면 그런 나 자신을 피하지 말고 당당하게 마주하면 좋겠습니다.
고독이란 타인과의 접촉 없이 홀로 있는 상태를 말하지만, 외로움과는 다소 다른 개념이다. 외로움이란 혼자 있는 고통을 표현하는 말이고, 고독은 혼자 있는 즐거움을 표현한 말이다.
신학자 폴 틸리히(Paul Tilli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