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THOUSAND UMBRELLAS: 절망속에서 발견한 우산
음악은 나의 삶의 태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다. 음악을 통해 일에 대한 영감을 얻기도 하고, 위기의 순간에 마음가짐을 바꾸는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
특히 페퍼톤스의 음악은 삶의 크고 작은 순간의 위기에 나에게 중요한 영향을 준다. 페퍼톤스만이 가진 특유의 밝은 멜로디에 삶의 다양한 단상들이 담겨있는 가사, 머릿속에 비디오처럼 어떠한 장면이 재생되는 듯한 느낌을 불러 일으키는 조화의 곡들은 마치 내가 그 곡의 주인공이 된 양 감정이입을 불러일으킨다.
페퍼톤스의 앨범 ‘thousand years’는 페퍼톤스를 대표하는 밝은 곡들로만 채워져있던 기존 앨범들과 달리 절망의 순간을 노래하는 곡들도 존재한다. 하나의 소설을 읽는 듯한 7집의 앨범은 어두컴컴한 길 속에서 홀로 걷는 듯한 느낌도 들고, 밴드와 비슷한 나이대를 거쳐가는 나의 복잡한 생각을 대신하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유독 길었던 장마. 미세먼지 가득한 노란 하늘. 아쿠아리움에서 죽은 벨루가 고래. 마스크를 낀 아이들. 지난 4년간 보고 겪은 것들이 담겨있다"
페퍼톤스 7집 인터뷰 중
밴드 페퍼톤스의 연말 콘서트이자 7집 앨범 발매기념 콘서트가 2022년 겨울, 3일간 예스24라이브홀에서 열렸다. 첫 공연을 보고 이 공연이 너무 그리워질 것 같아 3일 연속 공연을 다녀왔다. 공연의 셋리스트는 7집 앨범의 전곡들과 신재평이 음악감독으로 참여한 치얼업OST의 곡도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7집 앨범 발매 후 첫 콘서트인만큼, 이번 공연의 핵심은 7집의 곡들이었던 것 같다.
페퍼톤스 특유의 밝은 곡들로 시작해, 7집의 대부분의 곡을 한편의 영화를 보듯이 흘러갔다.
이 앨범의 트랙의 끝이자, 공연의 마지막 곡은 gIve up이다. give up은 ‘포기하다’라는 뜻을 담고 있지만, 페퍼톤스가 give up을 외치는 대상은 ‘절망’이다. 지쳐가는 누군가를 대상으로 “헤이 여기야 헤이 잠깐 기다려”를 콰이어와 함께 외칠 때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마치 나에게 정신 차려 친구야! 를 외치는 느낌이었다. 밝지만은 않았던 복잡한 생각과 마음은 삶을 지배하지만 결국은 우리는 삶의 긴 길 앞에 앞으로 나아갈 것을 이야기한다.
메마른 표정의 몹시 지친 그가
이제 모든 걸 포기하려고 한다
비틀거리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거기 주저앉으려 한다
헤이 여기야 헤이 잠깐 기다려
어딘가에서 들려온 목소리
아주 오래전 멈춰버린 이 세상이
지금 아주 조금 움직인 것 같아
——
절망이여 나를 포기하여라
나지막이 중얼거렸던 해가 비춘 어느 날,
마침내 멈춘 곳 거기 남겨져있는 천 개의 우산
페퍼톤스 give up
성공, 성취에 대한 열망이 최고점에 다다른 요즘이다. 스스로 각성상태인가 싶을 정도로 하루하루를 꽉 채워 살아가다가도, 자책하고 다시 시작하기를 반복한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고민하고 혼란스러워하다가, 편안한 삶에서 벗어나 스스로 무거운 짐을 짊어지는 삶을 자처하는가 하면 마음같지 않은 순간 지치고 절망하기도 했다. 나는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또다시 나와 내 소중한 것들을 잊어버리고 사는 것은 아닐까. 집에 돌아오는 밤이면 여러가지 생각들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페퍼톤스의 음악은 나의 삶을 지탱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순간에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이번 앨범을 들으면서, 그리고 이번 공연을 보면서 최근 괴로웠던 마음들이 많이 치유되는 느낌이었다.
나이가 조금씩 들어가고 때로는 분위기를 주도해야하는 위치가 되어가면서 더더욱 내 기분과 마음을 숨겨야만 하는 시간들이 많아졌다. 모든 것들이 스스로 이겨내며 살아가야 할 나의 몫임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나는 어딘가 나눌 곳이 필요했었나보다.
청춘을 노래하던 페퍼톤스는 이제 청춘을 넘어서 삶 전체를 관통하는 위로의 노래를 부르는 밴드가 되었다. 멋진 모습의 어른으로 살아가는 그들은 역시 나의 롤모델다웠다. 나도 페퍼톤스처럼 나의 일을 좋아하는 동료와 함께 하며,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어느날 갑자기 욕심만큼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들에 절망감이 몰려오는 순간, give up을 듣던 순간을 기억하며 내 앞에 있을 천개의 우산을 떠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