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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잠 Oct 22. 2023

달빛요정님, LG트윈스가 우승했데요: 전투형 달빛요정

야구를 좋아하던 뮤지션이 전하던 위로

2010년 대학교 4학년의 겨울이었다. 4학년 1학기가 되고 졸업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앞날이 불안하던 시절이었다. 특별한 꿈도 없이 난 좋은 회사에 취업할 수 있을까. 불안해하며 토익점수를 올리기 위해 매달 토익시험을 보고 취업스터디라는 이름으로 다른 학교 사람들을 만나며 이력서와 자소서 연습만 반복했다.

불안한 마음에 위안을 삼는 건 음악을 듣는 일이었다. 당시에는 음악 역사적으로 훌륭한 인디밴드들이 많이 나오던 좋은 시절이었다. 패배, 루저를 노래하던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음악은 당시에 이상하게도 힘내라는 음악보다 묘한 위안이 되었던 것 같다.


난 그때보다 더 무능하고 비열한 사람이 되었다네
절룩거리네
하나도 안 힘들어 그저 가슴 아플 뿐인걸
아주 가끔씩 절룩거리네
깨달은 지 오래야 이게 내 팔자라는 걸
아주 가끔씩 절룩거리네


2010년 전투형 달빛요정 앨범이 발매되면서, 홍대 상상마당에서 발매기념 공연을 했었는데, 당시 함께 공연을 볼 사람을 찾아 카페를 통해 두 분을 만나 함께 다녀왔다. 이미 직장인이었던 언니들이었는데, 내가 학생이라고 공연이 끝나고 치킨과 맥주도 사주시고, 나중에 다른 공연을 가는데 초대도 해주셨다. 이제는 연락이 닿지는 않지만, 그때의 고마움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히 남아있어 행복하게 잘 지내시기를 응원하고 있다.


그는 나는 루저이고 내 인생의 영토는 여기까지, 나는 스끼다시 인생이라고 노래하지만, 그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던 모습과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실제로 그의 노래를 들으며 위안을 받았던 사람들도 아마 같은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스스로를 자발적 패배자라고 하지만 그것이 나를 더 가라앉게 만들며 내 한계를 꺾어버리는 것과는 확인히 다른 정서이다. 삶의 좌절과 패배의 경험에 동질감을 느끼면서도, 진짜 삶의 행복은 무엇인가를 그의 표정을 통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제가 ‘루저’로 잘 알려져 있잖아요. 킹 오브 더 루저. 제 공연에는 재수생이나 남성이 많이 오거든요.


그의 뮤지션 네임에서도 알 수 있듯 그는 야구를 정말 좋아했다. LG트윈스의 열렬한 팬이어서, 공연에도 유니폼을 입고 공연을 했다. 그의 <infield fly>의 수록곡 달빛역전만루홈런도 LG트윈스를 위한 헌정곡이다.

나는 야구를 일일이 챙겨보는 팬은 아니었지만, 종종 매체를 통해, 주변의 LG팬들을 통해 이야기를 접한다. 올해 한참 성적이 좋아서 LG팬에게 이번에 우승하는 거 아니야?라고 말했다가 부정 탄다고 입 다물라는 면박도 많이 받았다. 그렇게 29년 만에 LG가 우승을 했다고 한다.

달빛요정이 세상에 있었다면 지금 쯤 홍대 어디서 인가 <축배>를 부르며 다 같이 축하공연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

달빛요정님, LG트윈스가 우승을 했데요. 진원님은 LG의 경기를 일기로 기록하고, 우승하면 무료공연도 한다고 했었지요. 항상 스스로에겐 패배자라 노래하면서도 팀을 응원하고 노래할 땐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해 보였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왜 그렇게 행복해 보였는지 알 것 같습니다. 행복의 척도는 돈도 대단한 성공도 아니라 내 삶의 찐 재미에 있었어요.

공연장에서 치킨런 부르다가 네네치킨 배달시켜 주셨던 것 평생 기억합니다. 그 소소한 순간의 이벤트들을 생각하면서 삶을 버텨갑니다.

그곳에서 지금 이곳을 지켜보며 행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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