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고 믿고 싶고 믿을 수 있는 상태
세 번째 겪고 있는 나의 무기력과 우울증이 내가 생각하는 절정에 치달았을 때 스스로 무섭게 느껴지는 점은 중요하던 것들이 더 이상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을 때이다.
사소한 예로는 홈오피스를 하는 날 근무시간 중 메신저 상태가 초록색이 아니고 주황색 또는 오프라인으로 보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던 나였는데 몸과 마음이 퍼져버렸던 지난 목요일과 금요일 이 이틀 동안은 한두 시간은 꼭 중요한 업무를 했던 것을 제외하고 그냥 노트북과 회사 휴대폰을 덮어버렸다.
다행히 팀장도 동료도 불평하지 않았다. 내 상태를 어느 정도 알고 있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면에서는 솔직하게 내 상태를 설명한 게 후회될 일만은 아닌 것 같다. 후회되는 점은 너무 과도하게 그리고 감정적으로 설명했다는 것인데 그것도 여러 번.. 이는 내가 더 이상 전략적으로 예전처럼 머리를 굴릴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도 있고 나와 가장 가깝게 일하는 그 둘에게만큼은 거짓말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쨌든 그리고 주말이 왔다.
친구 집에서 저녁도 같이 해 먹고 무엇보다 미루고 미루던 발코니에 화분도 설치하고 지난주에 퇴근길에 남편과 미리 사 두었던 꽃도 드디어 심었다.
결혼한 지 3년 차 같이 산지는 8년 차 연애한 지는 10년 차인 우리 부부는 작년 여름 처음으로 발코니와 정원이 있는 집으로 이사 왔다. 주택조합 소속인 남편 덕에 시중 월세의 반 값에 좋은 위치에서 살고 있다. 월세가 싸다는 게 이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다. 50%로 일을 줄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내 몸과 마음이 황폐해져 그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게 된 지금 월세에 대한 부담이 적은 것은 정말 다행이고 또 다행이다.
최대한 회사생각을 하지 말아 보자 하면서 꽃을 심었다.
월세가 싸서 다행이다 하면서 꽃을 심었다.
월요일에 상담 예약이 잡혀있으니 상담 선생님과 잘 이야기해서 화요일에 최종 결정을 팀장에게 전달하자 하면서 흙을 꼭꼭 눌렀다.
토요일은 참 기분이 그나마 가장 나은 것 같다.
일과 일에 대한 부담으로 마음이 아팠던 한 주가 어쨌든 끝났고 이제 막 주말이 시작된 하루.
일요일은 내일 다시 시작될 일과 일에 대한 부담에 대한 2차 부담으로 아침 먹을 때부터 나는 기분이 썩 좋은 편이 아니다. 이렇게 적고 나니 참 슬프다.
어디선가 읽었던 글귀가 어렴풋 기억난다.
주말만을 기다리며 주중을 버티며 사는 게 빨리 죽고 싶다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난 주말이 빨리 오기를 원하지만 빨리 죽기는 싫다
우울하지만 죽기는 싫다 그저 이렇게 살고 싶지 않을 뿐.
이런저런 생각으로 주말을 보냈지만 그래도 최대한 과잉사고를 하지 않으려고 순간에 집중하려고 힘들지만 노력했던 시간들이 쌓여 주말 동안 어느 정도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월요일. 겨우 미팅 한 개와 일 하나를 처리하고 다시 퍼져버렸다. 정말 원래 해야 되는 업무시간과 업무량의 반의 반도 못해내고 정말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침대로 기어들어갔다.
그렇게 세 시간을 송장처럼 누워만 있었다.
내가 게으름을 피우는 건가? 그냥 일하기가 싫은 건가?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러기엔 나는 휴대폰을 만지지도 무언가 재미있는 것을 하지도 않으며 그저 침대에 누워 송장처럼 누워만 있었다. 마음은 불편한 채로... 내 머릿속에서는 지난 몇 달간 계속된 증상이 하나 있다.
일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 일에서 쓰였거나 일하는 도중 어렴풋이 들었던 독일어 단어들과 문장들 또는 임원들의 얼굴들이 수시로 머릿속에 수시로 떠오른다 그것도 아주 구체적으로.
그렇게 세 시간을 보내고 다시 일어나 일을 겨우 마무리하고 상담실로 향했다.
그리고 상담실에서 너무나 많이 울었다.
상담 선생님은 우선 내게 2-3개월의 병가를 추천하였다 당장 내일부터 병가를 내고 자기가 소견서를 써주면 (상담해 주시는 분은 심리학석사 전공이다) 전문의가 다시 소견서를 써서 Reha (Rehabilitation)라고 불리는 재활센터에 5-6주 입원할 것을 권장하셨다. 재활센터 자리 잡는데도 한 달 이상이 걸리니 병가가 최소 2달에서 3달 걸릴 것이고 덧붙이면서...
"입원이요? 입원할 단계는 아닌 것 같은데요. 저는 자해나 자살충동도 전혀 없고 그저 더 잘살고 싶어서 좋아하는 게 뭔지도 모른 채 열심히만 살아와서 이렇게 된 거잖아요. 사랑하는 사람을 잃거나 큰 좌절을 겪어서 우울증이 온 것도 아니고 그저 독일에서 독일어로 대기업 다니는 게 너무 힘들고 외로워서 일이 너무 어렵고 엘리트 집단이라 다들 너무 잘나서 그 속에서 가면증후군도 더해져서 우울한 건데... 입원이요?"
선생님은 재활센터가 응급입원센터는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말하는 어떤 사고를 치거나 정말 마음의 병으로 몸이 병이난 경우에는 재활센터가 아닌 응급으로 입원하게 될 거라고...
열띤 토론 끝에 나는 선생님을 논리적으로 설득할 수 있었다. 사실 나도 병가를 길게 내는 것을 고민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것 때문에 팀장에게도 시간을 좀 더 달라고 했던 것이었다. 병가를 내면 일단 한두 달 일에서 벗어날 수 있고 6주 동안은 월급의 100%, 그 이후는 월급의 60인가 70프로를 병돈(Krankengeld)으로 의사가 진단서를 발급하는 한 아픈 기간 내내 받을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지난번에도 잠깐 밝혔듯 전 직장 재직 중 그리고 퇴사 후 병돈을 받아본 경험이 있다.
"병가랑 휴가 섞어서 3주 쉬고 오니 좋았어요. 휴가 동안은 울지도 않았고요. 그런데... 돌아오고 나면 쌓여있는 이메일 100개 읽어내느라 정말 힘들었고 제가 할 수 있는 쉬운 일마저 안 그래도 바쁜 동료와 팀장님께 떠 넘긴 것 같아 마음이 너무 안 좋았어요. 병가를 내면 그 기간 내내도 죄책감에 마음이 편하지도 않을 것 같고, 병가 기간 중 좋아진 들, 다시 복귀하면 상황은 똑같거나 더 악화될 것 같아요. 일 때문에 아픈 거니 일을 줄이면서 일과 같이 살아가는 방법을 일 안 하는 시간에 찾아보려고 노력하고 싶어요. 50% 일하면 50%만 돈을 벌겠지만... 다행히 집세도 싸고요."
답정너가 따로 없다.
그래도 상담선생님이 동의하시지 않으면 나는 의견을 바꾸고 선생님이 제안하시는 방법대로 회사에 보고하고 실행할 생각이 있었다. 답정너 시전하려고 없는 힘 짜내서 상담을 가는 건 아니니까...
그렇게 휴대용 티슈 한 팩을 한 시간 동안 다 쓸 정도로 울며 선생님과 의견을 모았다.
내일 팀장에게 50% 파트타임으로 반년 간, 가능하면 다음 주인 5월부터 당장 하는 걸로 그리고 가능하다면 내가 가장 부담을 받는 개발, 새로운 업무에서는 배제해 달라고 부탁하기로 했다. 자존심 상하지만 지금 당장의 나는 온전한 퍼포먼스가 나지 않는 상태임을 인정하고 가능한 한 쉽고 당장 쳐낼 수 있고 내가 이미 배워서 할 수 있는 업무만 배당해 주기를 부탁하는 것도 상담선생님이 권유하셨다. 개발, 새로운 업무가 이 포지션을 이 포지션답게 만드는 요소임을 나도 잘 알고 있지만... 회사도 나를 잃기 싫으면 나를 도와라. 딱 6개월만. 이라는 마인드를 나는 뻔뻔하지만 너무 힘드니까 어느 순간 자연스레 탑재하게 되었다.
그렇게 상담을 하고 돌아와 하루가 지난 오늘, 나는 팀장과 대면했다.
그러나 Wie geht's dir? 좀 어떠니 하고 묻는 팀장의 첫 질문에 나는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터졌고 기껏 준비하고 요약까지 해 놓은 그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진정하고 5분 뒤에 다시 전화를 드리겠노라 양해를 구하고 회사 가방에 넣어둔 비상약을 다시 삼켰다.
일주일 동안 벌써 세 번째인 비상약이다...